[최보식이 만난 사람] "내 마음이 불편한 건 사실.. 대통령 뜻대로 하면 국회는 '通法府'로 전락"

최보식 선임기자 2016. 1.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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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 국회의장] "朴대통령께 미움받는다고?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대통령과 '핫라인' 전화, 지금까지 단 두 번 사용" "현행 국회법에선 내게 직권상정할 권한 없어 대통령도 야당 설득하고 여당에는 재량권 더 줘야"

정의화(68) 국회의장에게 첫 질문을 이렇게 시작했다. 여의도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다.

―국회의장에 당선될 때만 해도 개성(個性)이 없어 보였는데요?

"개성 없지요, 만날 정도(正道)만 찾으니. 자기도 별로 올바르지 않은데…."

―박근혜 대통령이 원하는 쟁점 법안의 직권상정을 거부하며 "내 성(姓)을 바꾸든지"라고 말했지요?

"내 이름이 정의화여서, '나는 정의(正義)화지 불의(不義)화가 아니다'라고 농담을 합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이런 농담이 튀어나올 뻔한 거죠. '내 이름이 정의화인데…'라고 얘기하려다 적절하지 않다 싶어 뒤를 흐렸지요. 그런데 기자들이 '내 성을 바꾸든지'라며 마음대로 쓴 거죠."

―원래 이런 스타일인가요?

"사실 고집이 좀 있습니다. 포은 정몽주의 20대 손(孫)인데, 본인이 옳다는 가치를 잘 안 바꿉니다."

―국회의장이 뉴스의 중심이 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전임 강창희 의장도 있는지 없는지 임기를 마쳤고.

"친박(親朴)도 아닌 내가 압도적인 표차로 국회의장에 당선된 것부터 뉴스였지요. 세월호특별법 통과와 유승민 파동 때도 초점이 됐고…. 희한하게 내게는 일이나 사건이 따라붙어요. 과거에 내가 병원 당직을 서기만 하면 환자가 많았어요(정치권에 들어오기 전 그는 신경외과 의사였음). 내가 가는 음식점에는 그날 손님이 많고요."

―최근 경제인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나에 대해서는 그냥 박근혜 대통령에게 좀 미움받는 국회의장 정도로 아실 거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면서요?

"내가 말한 게 아니고 참석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좀 미움받는 국회의장'이라며 질문을 하더군요."

―대통령의 미움을 받는 게 피부로 느껴집니까?

"아니요. 내가 대통령에 대해 연민(憐憫)의 정을 갖고 있는데 무슨…."

―요즘 스트레스는 받고 있지요?

"법으로 직권상정을 할 수가 없는데, 청와대에서 해달라고 하니까 마음이 불편한 거지요.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내게 직권상정을 요청한 적은 없습니다."

―그게 대통령의 뜻 아니겠습니까?

"뜻이 그런지는 모르나, 대통령이 참모에게 그런 지시를 하진 않았을 겁니다. 현행 국회법으로 직권상정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요. 작년 말 정기국회 끝나기 전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와 '가능한 한 빨리 경제법안을 통과시켜 달라'며 부탁했어요. 그건 나도 같은 마음입니다."

―2년 전 국회의장 당선 인사말을 찾아보니 "박 대통령이 말한 새 대한민국 건설을 적극 지원하고 전화를 드리거나 찾아뵙고 말씀도 드릴 것"이라고 했더군요.

"당선 인사말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국회의장에 출마하면서 '박 대통령이 훗날 정의화 의장과 함께 일한 게 흥복(興福)이었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겠다'고 말했어요. 당선 뒤 청와대에 방문해 대통령과의 핫라인을 갖고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가까이 지내고 싶었던 거죠.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을 통해 전화번호를 받았어요."

―핫라인으로 자주 통화했나요?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다녀온 뒤 인사차 한 번 했습니다. 그 뒤 시진핑 주석이 방한했을 때 전화를 걸었는데 연결되지 않았어요."

―단둘이 만난 적은 있습니까?

"없어요. 공식적으로 여러 사람과 만났지. 지금처럼 이렇게 꼬여 있으면 한번 만나야 하지 않을까요."

이날(1월 8일)은 임시국회가 끝난 날이었다. 그는 "여야(與野)의 반전 합의를 기대했는데 정말 우울한 날"이라고 말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쟁점법안을 직권상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여전합니까?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은 다릅니다. 국회선진화법 85조를 보면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 여야 합의한 경우 등 3가지 말고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못하도록 돼 있습니다. 현행법상 할 수가 없는 거죠. 심지어 할 수 있을 때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북한 수소폭탄 실험과 경제 침체 위기를 맞고 있으니 '국가비상사태'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내 상식으로는 그렇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의장께서는 "직권상정을 하게 되면 국회가 '통법부(通法府)'로 바뀐다"는 말씀도 했지요?

"행정부 수장(대통령)이 해달라는 대로 법을 통과시켜주면 '통법부'가 되는 거죠. 그건 국회의 임무를 방기하는 거죠."

―이보다는 경제를 살릴 법안을 국회에서 깔아뭉개고 있다는 게 더 문제가 아닐까요?

"그렇게 볼 수도 있지요. 깔아뭉갠다는 표현은 그렇지만. 법안 통과는 국회 상임위 등에서 심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겁니다. 법적 요건에 맞지 않는 절차로 통과시킬 경우 그 후유증이 더 큽니다. 아주 나쁜 선례가 됩니다."

―쟁점 법안은 대부분 2년 전에 제출됐습니다. 직권상정에 몰리기 전까지 시간이 많았지 않습니까?

"국회의장은 뭘 하고 있느냐 말하는데…, 여야 지도부를 중재시키려고 9번이나 미팅했어요. 열흘 전에는 이들과 7시간 꼬박 회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결정권이 없고 중재 권한밖에 없어요."

―결국 국회에서 해결해줘야 하는 것이지요. 의장께서는 그 법안들이 시급하지 않다고 봅니까?

"꼭 필요하지요. 다만 국회에서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하는데, 이러면 청와대와 나 사이를 싸움 붙이게 되는데…. 정부에서 말하는 경제활성화법 29개 중 27개는 이미 통과됐어요. 남은 건 기업활력제고특별법(기업이 인수·합병 등 사업 재편을 쉽게 함)과 서비스산업발전법(교육과 의료 등 기존 공공서비스를 서비스산업으로 규정)입니다. 그동안 논의를 했다가 야당에서 '재벌이 악용할 소지가 있다'며 못 받겠다고 브레이크를 건 겁니다. 테러방지법의 경우에는 주체인 국정원에 대한 불신이 있어 그렇고요."

―대통령이 국회를 향해 공격했을 때 어떠했습니까? 실제 대다수 국민은 국회를 더 불신하고 있습니다.

"국회의 책임이 크죠. 하지만 정부의 언론 플레이도 많이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정부는 '노사정 대타협으로 청년 일자리가 얼마나 늘어나고…' 같은 공익광고를 냅니다. 하지만 '근로자 파견 기간이나 직종' 조항은 노사정에서 타결된 게 아닙니다. 마치 다 합의가 된 것처럼 떠들며 노동개혁법을 통과 안 시킨다고 나를 몰아세웁니다. 내가 미치지요."

―국회에서 번번이 발목이 잡히는 대통령 입장도 생각해봤습니까?

"그렇지만 직권상정에 관한 한 법을 따를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교착됐을 때는 대통령이나 해당 장관들도 움직여야 합니다. 반대 의원들을 설득하든지, 아니면 제출한 법안을 보완하거나 여당에 협상 재량권을 더 주든지. 사실 법안마다 한두 개 조항 말고는 거의 근접해 있습니다."

―국회의장실로 항의나 비난 전화가 빗발치지 않습니까?

"전화가 많이 오지요. 나도 사람이니까 부담이 있지요. 원만하게 가야 하는데 억지로 다른 쪽으로 가라니까요."

―청와대 신년 인사회에서 이병기 비서실장에게 '법적으로 직권상정을 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면서요?

"대통령께 전하라고 한 얘기지요. '선거법(선거구 획정안)과는 완전히 별개의 사안이니 연계할 수가 없다'고도 했어요."

―청와대에서는 "정 의장이 '이미지 정치'를 하고 있다. 민생 법안을 우선 처리해달라고 했지 선거법과 연계시켜달라고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지요?

"전날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가 '두 법안은 패키지로 가야 한다'고 했고, 그전에 현기환 정무수석이 찾아와 직권상정을 요청했기에 말한 겁니다. 사실 이런 얘기는 나라에 도움이 안 돼요."

―의장께서 민생법안은 두고 선거법만 직권상정하겠다고 한 것도 빌미를 줬지요.

"총선이 석 달 앞인데 선거구 공백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았어요. 의회민주주의의 기반이 무너지는 비상사태입니다."

―청와대 정무수석이 "국회의원 밥그릇에만 관심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지요?

"레벨이 있는데 정무수석과 다툴 수 없지요. 그걸로 의원 개개인에게 이익이 되면 그런 비판을 듣겠는데, 이는 의회민주주의 체제에서 국가 밥그릇을 챙기는 겁니다."

―여당이 청와대 지시를 받아 쟁점 법안과 연계시키려고 선거법을 합의해주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더군요?

"과거에는 가끔 그랬지만, 지금은 여야 지도부끼리 법안을 주고받는 '거래형 정치'가 일상화됐어요.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된 뒤로 '법안 끼워 팔기'가 다반사입니다. 지도부가 위에서 그런 결정을 하면 의원들은 '거수기(擧手機)'가 되는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의장께서는 '국회선진화법' 통과 때(2012년) 강하게 반대했다면서요?

"내가 국회의장 대행 시절인데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수결 원칙을 흔들고 있다. 국회 기능이 마비돼 식물 국회로 전락할 수 있다'며 반대했지요."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 대통령은 어떤 입장이었습니까?

"기자회견 날 아침에 내가 전화를 걸어 '이 법이 통과되면 대통령이 돼도 국회의 조력을 받기 쉽지 않다'고 말했어요. 무엇이 문제냐고 묻기에,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회선진화법을 주도하는 황우여 원내대표에게 얘기를 들어보고 잘 판단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대통령은 찬성으로 돌았어요. 내가 선진화법 통과를 선언하면서 '이제부터 식물 국회가 안 되려면 대화와 타협밖에 없다'고 말했어요."

―19대 국회는 역대 최악(最惡)의 평가를 받았지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불명예스럽죠. 내가 15대 국회에서 들어왔는데, 사실 16대 때부터 '개판'이라는 소리를 들어 왔어요."

―국회의 문제는 어디서 비롯되고 있다고 봅니까?

"여야가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해야 하는데, 여당이 독식하지 말고 야당에 나눠주고…. 모든 문제가 여기서 비롯되죠. 그런데 오늘 인터뷰가 평지풍파를 일으켜 사퇴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임기가 넉 달 남았군요. 그 뒤 어떤 계획이 있습니까?

"국회의원은 끝입니다. 여생을 어떻게 지낼 것인가를 생각 중입니다. 내게는 굉장히 중요한 결정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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