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 "변할 것 같으면 미련없이 정치계 떠날것"

입력 2016. 2. 9. 13:46 수정 2016. 2. 1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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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르포
표창원과의 1박2일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은 정치개혁의 아이콘이 될 수 있을까. 그는 이제 정치권 안으로 들어가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개혁하는 일정을 시작했다. 표창원 위원이 지난달 27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리는 토크콘서트에 참석하기 전 분장을 받고 있다. 허재현 기자

▶ ‘정치인들은 다 똑같아. 뽑아주기 전에는 굽신굽신하다 뽑아주면 코빼기도 안 보여!’ 정치 불신이 심한 국민들이 자주하는 말입니다. 정치인이 되면 대체 왜 다들 똑같이 변하는 걸까요? 표창원 전 경찰대학 교수가 더불어민주당에 지난해 말 입당했습니다. 표 전 교수는 정치권 바깥에서 우리 사회와 정치에 대해 여러 쓴소리를 해왔습니다. 그런 그가 정치권안의 모습을 한달여간 관찰해본 소감은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인터뷰 요청을 하고 1박2일간 그의 일정을 함께했습니다.

정치라는 말의 어원을 돌이켜 본다. 영어로 정치는 폴리틱스(politics)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도시국가)에서 따온 말이다. 폴리스 주민들은 공평하게 나라 운영에 참여했다. 일상의 작은 영역 또한 정치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삶과 정치가 따로 분리되지 않았다.

우리 시대의 정치는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해외 누리꾼들은 정치를 이렇게 비꼰다. ‘poly’는 많다는 뜻이고 ‘ticks’는 피 빨아먹는 진드기이니, 정치란 ‘피 빨아먹는 진드기 집단’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정치가 일상의 영역이란 생각은 희미해졌다. 한국 사회의 정서도 냉소다. 지난 19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은 54.2%에 그쳤다. 국민 절반이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대체 정치인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고 국민은 생각한다.

정치권 바깥에서 우리 사회와 정치에 대해 쓴소리를 해온 표창원 전 경찰대학 교수가 지난해 12월 말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그가 한달여간 살펴본 ‘정치의 세계’는 어땠을까. 그의 일상과 최근의 고민을 살피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터뷰가 예정된 지난달 27일 그는 갑자기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 중 한 명으로 발표됐다.

이날 아침 기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표 전 교수의 목소리가 좀 다급했다. “아무래도 일정을 변경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급히 국회로 돌아가고 있어요. 김종인 위원장이 제가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해서…. 우리는 김포공항에서 오후 3시 이후 만납시다.” 이날 오전 만나기로 한 약속은 오후로 변경됐다.

“총알받이 되는 거 아니야?”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은 오후 3시 비대위 회의가 끝나자마자 택시를 불러 다른 비대위원들과 함께 김포공항으로 왔다. 이날 저녁 부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토크콘서트가 예정돼 있었다. 표 위원은 이날 콘서트의 주요 강연자였다.

오후 3시30분 공항 3층 12번 게이트 앞 간이 커피숍에서 표 위원이 동료들과 함께 오후 4시 출발 예정인 비행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표 위원에게 비대위원 발탁을 축하한다며 인사를 건넸다. “글쎄요. 축하받을 일인가요. 이거 총알받이 되는 거 아니야?” 동료들이 그의 농담에 함께 웃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김병기 전 국가정보원 인사처장이 표 위원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는 표 위원의 고민을 듣고 있었다. “제가 범죄문제 전문가잖아요. 억울하다고 페이스북으로 메시지 보내오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변호사와 상담하라고 해도 그 사람들은 못 믿겠다는 거죠. 만약 제가 국회의원이 되면 더 많이 찾아올 텐데, 그게 걱정이에요. 현실에서는 제약이 많을 텐데.” 김병기 전 처장은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20대 여성이 표창원 비대위원을 알아보고 “어디 가세요?”라고 물었다. 표 위원은 어디를 가도 불쑥 인사를 건네는 시민들을 만난다. 흡사 연예인 같은 인기다. “부산에 가요!” 신사복 차림의 표 위원이 작은 배낭을 등에 메고 비행기로 연결된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본격적인 대화는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50여분 동안 진행됐다. 그는 이코노미석 중간에 앉았다.

-요즘 잠은 몇시간 주무세요?

“많이 바쁘네요. 어제 4시간 정도 잤어요. 그저께는 5시간 정도?”

-갑자기 비상대책위원으로 발표됐어요.

“전혀 예상 못한 일이었어요. 오늘 아침에 간선도로 타고 김포공항으로 가고 있었는데 김종인 위원장이 전화를 해와 중앙위원회의 참석하라고 했어요. 제가 드라마 한가운데 있는 거 같아요.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이 자꾸 벌어지니.”

-정치인이 된 한달 동안 목표했던 것은 다 이뤘나요?

“할 수 있는 건 다 한 거 같아요. 제가 당에 들어오고 나서 다들 야당이 달라지겠다는 희망을 품는 것 같아요.”

-당 외부 영입 인사가 비대위원으로 깜짝 발표되는 건 신선하게 느껴지면서도 검증되지 않은 신인 정치인에 대한 안팎의 우려도 있어요.

“씁쓸하고 슬픈 겁니다. 제가 영국에 있었을 때(표창원 위원은 1993년 영국 엑서터대학교로 유학을 가 경찰학과 범죄학을 전공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노동당 대표가 되는 사람들은 청년 때부터 정치를 해온 사람들이었어요. 우리 정치문화가 바뀌어야 해요.”

-‘친노 패권’이라는 말을 둘러싼 논란은 안에서 실제 어떻게 보이던가요?

“친노라는 명칭이 왜 부정적으로 사용되는지 이해가 안 돼요. 아마 패권이란 주장을 하고 싶어 친노를 갖다 붙인 것 같은데 제가 밖에서 볼 때와 안에서 볼 때의 차이를 별로 못 느끼고 있어요. 인적 혁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인적 혁신의 대상이 되니까 친노 패권이나 인적 혁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 같아요. 제대로 된 용어는 (친노) 주류-비주류인 것 같습니다.”

-비대위원이 되시니 말조심을 하시는 것 아닌가요?

“표현상 절제하는 것은 맞죠. 하지만 제 말의 내용을 숨기지는 않아요.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물론 제가 한달 안에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애초 당에 문제제기 하던 분들은 당을 이미 떠난 상태였습니다. 저는 중앙에서 당의 비상시국을 끌고 가는 분들만 보고 말씀드린 것이란 한계는 분명 있습니다.”

정치권 바깥에서 정치 비판하다
정치권 안으로 들어간 표창원
더민주 비대위원까지 되었다
현실 제약 속에 정치개혁 꿈
꾸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종편 앵커에 돌직구 발언 화제
“방송사 가다 질문지 받았는데
제작진에게 사전 경고하고 갔어요
논리 없고 편견에 찬 질문 하면
오류 깨달으라고 역질문 던져요”

지난달 1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사람의 힘 콘퍼런스’에서 표창원 비대위원이 더민주당 로고가 찍힌 선거 홍보물품 등을 선보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만약 내가 변한다면

비행기의 소음을 이기고 표 비대위원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부산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주차장에는 부산의 더불어민주당원이 승합차를 대기하고 표 위원 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토크콘서트 장소인 해운대 벡스코(BEXCO)로 이동했다.

차로 이동 중에 표 위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 왜 이렇게 우울해?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엄마랑 영화도 보고 해. 아빠는 며칠 또 못 볼 거 같다. 푹 쉬어.” 표 위원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하다 전화를 끊는다. 중학교 1학년 아들과의 통화였다.

“제 아들이 축구를 해요. 제주 전지훈련 마치고 용인 집에 왔는데 제가 없어서 전화했나봐요.” 범죄학자인 표 위원은 자녀들에게 따뜻한 아빠가 되려 노력한다. 표 위원의 아버지는 그를 마치 군인처럼 엄격하게 키웠다고 한다. “존경받는 아빠가 아니라 사랑받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표 위원의 손가락은 휴대전화 자판 위에서 분주하다. “내일 일정을 조율하고 있어요. 아이구. 미치겠어요. 일정들이 회의, 회의, 회의….” 표 위원이 비명을 지르는 사이 차는 토크콘서트 장소에 도착했다. 2000여 청중 앞에서 표 위원이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시작했다.

“누군가는 제게 묻습니다. 친노 패권이 당에서 문제 아니냐. 저는 묻습니다. 친노 패권이 뭐죠? 저는 문재인 좋아합니다. 그게 문제인가요? 저는 제 아내를 사랑합니다. 그게 문제인가요? 대체 뭣 때문에 문재인을 비난하지요? 그가 누구를 때렸습니까? 세월호 유족을 모욕했습니까? 그가 역사를 왜곡했나요?”

강연장에 모인 청중들은 열광하며 박수를 쳤다. 밤 9시 콘서트를 마치자마자 표 위원은 곧바로 열차를 이용해 서울로 떠났다. 내일 아침 그는 김종인 위원장과 함께 현충원 참배를 해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도 참배할 것인지 묻자 그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전달받지 못했어요.”

28일 아침 약간의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박영선, 표창원 비대위원 등이 이날 오전 8시 서울 동작구 흑석동 현충원 앞마당에 모였다. 김 위원장을 필두로 현충탑 앞 참배를 10여분간 진행했다. 표 위원은 이것이 끝인 줄 알고 자신의 차량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날 오후 2시 전남 광주 문화방송 토론회 일정이 있어 급히 용산역으로 차를 몰았다.

아침 10시 용산역을 출발하는 케이티엑스를 탔다. 오전 11시25분께 익산역을 지나갈 때쯤 한 통신사 기자가 표 위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뭐라고요?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고요? 저는 그런 일정을 몰랐는데….” 기자는 표 위원이 의도적으로 박 전 대통령 참배를 거부한 것인지 확인하려고 전화를 해온 것이었다.

표 위원이 전화를 끊고 한숨을 쉬었다. “결국은….” 이어 표 위원이 말했다. “저는 참 씁쓸해요. 전직 대통령을 참배하는 문제를 두고 우리 사회가 둘로 갈라졌어요. 참배를 해도 말이 나오고, 안 해도 말이 나오지요.” 때마침 열차는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었다. 사방이 어두워졌다. 표 위원과 대화를 계속 나누었다.

-정당 조직 안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니 좀 달라 보이는 게 있나요?

“제가 워낙 당과 정치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많아서 그런가요. 아직까지는 긍정적인 모습들이 많이 보여요. 당직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해요. 제가 학계, 기업 등 여러 곳에 참여해봤지만 이곳 사람들만큼 이것저것 재는 것 없이 조직을 위해 뛰어다니는 모습을 못 봤어요. 사적 이해관계에 의한 편가르기나 왜곡 이런 것 등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정치를 시작하는 순간 초심을 잃고 사람들이 변하곤 합니다.

“상당 부분 사실인 듯해요. 다른 분들 왜 변하는지 이해가 됩니다.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정치하기 전 쌓아온 명성을 정치하다가 잃게 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 느낌을 받아요. 안철수 의원도 정치하기 전 모든 것을 다 가졌던 분입니다. 사업의 성공과 명성 등을 뒤로하고 정치권에 들어왔는데 여기서 지면 모든 게 무너진다는 두려움이 무리수나 악수를 두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저도 이런 부분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제가 변할 거 같으면 미련 없이 정치계를 떠날 겁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좀 지켜보니 어떤가요?

“회의 자리에서만 주로 봤어요. 저를 처음 볼 때 ‘생각보다 과격해 보이지 않네’ 하시더라고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 말 같아요. 생각이 깊은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사려도 깊고…. 김종인 위원장은 학자로서 국가의 앞날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전두환 정권 때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참여는 했지만 자문 정도의 역할로 알아요. 권력의 곁자리에 서려고 이곳저곳 옮겨다닌 것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깨어야 할 알

지난해 12월30일 표 위원은 한 종합편성 채널 앵커와 ‘돌직구 논쟁’을 벌였다. ‘문재인 의원 지역구 사무실에서 벌어진 인질극에 문 의원의 책임도 있지 않냐’는 앵커의 질문에 표 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면도칼 테러를 당했던 것도 박근혜 후보의 잘못인가’라고 반박하며 앵커를 당황하게 했다.

-요즘 방송 출연 하시면 ‘사이다 돌직구 발언’으로 관심을 받던데요.

“방송사 가는 차 안에서 질문지를 받았는데 (방송사가) 야권에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더군요. 제가 이 질문의 문제점이 뭔지 방송에서 제대로 알려주겠다며 제작진에게 사전 경고하고 갔어요. 제작진이 그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는데 제가 강행했습니다. 저는 논리가 없고 편견에 기초한 질문을 해오면 스스로 오류를 깨닫게 하려고 역질문을 던져요. 학교에서 강의할 때도 그랬고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는 알을 깨고 태어나는 새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깨트리지 않으면 부화할 수 없다. 표 위원은 영국 유학 때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을 한번 겪었다. 그는 영국의 사회와 제도를 관찰하며 국가의 녹을 받아 살던 평범한 경찰에서 민주주의와 국가를 함께 고민하는 합리적 보수의 경찰로 거듭났다. 표 위원은 이제 두번째 알을 깨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영국 다녀온 뒤에는 늘 알을 깨는 과정인 것 같아요. 경찰대학 교수를 그만둘 때도 그렇고. 지금은 제게 더불어민주당이 깨어야 할 알이죠. 저는 정치와 관계없다고 생각하고 살던 사람이었는데 나와 다른 생각 가진 분들과 소통을 시작한 것이죠. 저는 자리에 연연하는 정치는 하고 싶지 않아요. 조직에 부담이 된다면 언제든 그만둘 겁니다. 어떤 계파 없이도 잘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죠. 그게 안 되면 물러날 겁니다. 근데 제 성격 자체가 쉽게 물러나는 스타일은 아니어서.(웃음)”

부산 광주/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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