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발언 "국정원장이 보수단체 창구 단일화 제안"

이재진 기자 입력 2016. 5. 1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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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청와대-국정원 ‘일타쌍피’ 서정갑 폭로… 보수단체 알력다툼 과정에서 정권에 직격탄

[미디어오늘 이재진 기자]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이 시사저널과 인터뷰에서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정원장 재직 시절 보수단체장을 초대해 오찬 자리를 갖고 돈을 지원해주는 창구를 단일화하라고 했다고 폭탄 발언을 내놨다. 발언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장이 직접 보수단체의 돈줄을 챙겼다는 것이고 보수단체의 집회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현재 이병기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의혹이 확산되면 국정운영에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서정갑 본부장은 지난 5월 5일 시사저널과 인터뷰(10일자 보도)에서 원세훈 국정원장이 법정구속이 된 때인 지난해 2월 동아일보와 문화일보에 원세훈 전 원장을 옹호하고 재판부 판결을 비난하는 의견 광고를 게시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의견 광고를 낸 날인 2월 12일 국정원으로부터 오찬을 갖자는 연락이 왔고 이 자리에 이병기 국정원장과 직원, 초청자로 자신과 애국단체총협의회, 재향경우회 등 10여개 단체가 참석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이병기 비서실장이 우파 진영이 하나로 뭉쳤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서 본부장은 이에 대해 "이 양반이 하는 얘기가 돈 지원해 주는 창구를 하나로 해야 쉽게 그 창구에다 (돈을) 넣는다는 거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서 본부장은 사실상 이병기 비서실장이 단일화 창구로 애국단체총협의회를 지목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보수단체 관계자도 "공개가 되는 국가 보조금이 전부가 아니다. 창구 단일화라는 것은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에 돈을 준 것처럼 다른 루트를 통해 들어오는 돈을 하나의 단체를 통해 받겠다는 뜻이다. 주목해야할 것은 창구 단일화를 국정원장이 직접 요구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갑 본부장의 폭로는 파장이 크다. 보수단체의 뒷배에 국정원이 있고, 현재에도 이 같은 공작 정치를 벌일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서정갑 본부장의 발언은 보수단체 사이 벌어졌던 기득권을 둘러싼 신경전이 4. 13 총선 이후 본격 터져 나온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어버이연합 돈줄 및 청와대 집회 개최 지시 의혹도 최초 탈북자단체들간 국고보조금 횡령 문제를 놓고 갈등을 벌인 가운데 내부 인물이 폭로하면서 터져나온 것이다. 서정갑 본부장의 폭로도 서 본부장이 있는 국민행동본부와 애국단체총협의회 이상훈 상임의장 사이 기싸움이 벌어지면서 서 본부장이 '폭탄'을 터뜨린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서 본부장과 이상훈 상임의장은 재향군인회 회장 선거를 두고 한달전까지만해도 서로 실명 비판하며 싸움을 벌였다.

지난 회장선거에서 당선된 조남풍 회장이 선거 과정에서 금품관련 비리 혐의로 구속되면서 올해 4월 15일 회장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국가보훈처는 선거에 출마한 세명의 후보가 조남풍 회장과 똑같이 금품을 뿌린 의혹을 받아 검찰에 고발됐다며 후보 자격을 박탈하고 선거를 연기하려는 조치를 취하려고 했다.

이에 서정갑 본부장은 지난달 8일 성명을 통해 국가보훈처가 취하려는 조치는 비 육사출신의 재향군인회 회장의 당선을 막기 위해 육사 출신들의 공세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에 고발된 세명의 후보자가 비육사 출신이고, 나머지 두명의 후보가 육사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보훈처장의 향군선거 개입으로 인하여 군내의 육사비 육사출신간의 갈등이 사회로 진출한 예비역까지 일파만파로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서 본부장은 이 같은 내용으로 일간지에 광고까지 게재했다. 

그러자 국방부 장관을 지낸 뒤 재향군인회 회장을 역임했던 애국총협의회 이상훈 상임의장은 서정갑 본부장을 지목해 지난달 21일 "대한민국 국군을 망치려는 자가 더 이상 애국운동 탈을 써서는 안된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상임의장은 "깨끗하고 청렴한 인사가 회장으로 선출되어 향군을 개혁하기를 바라는 대다수 향군회원들의 여망을 반영하여 후보자들과 일부 대의원들의 의혹이 밝혀질 때까지 선거를 연기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라며 "군 내의 지방별, 출신별, 계급별 갈등을 조장하는 언행은 군의 단결을 와해시켜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이적(利敵)행위로 금기(禁忌)사항"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서 본부장을 이적 행위를 한 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 상임의장은 "국민행동본부장 서정갑씨는 ROTC 출신으로 군의 전투병과가 아닌 행정인사를 다루는 부관병과 출신으로 군에서 금기시 되고 있는 파벌 조장성 발언은 이적행위와 같다는 것을 잘 알 것"이라며 "정치인이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언행을 하면 정계를 떠나야 한다. 국민행동본부장 서정갑씨는 자신을 애국운동가로 착각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애국진영에서 떠나야 한다"고 비판했다.

서정갑 본부장은 이 상임의장의 성명에 발끈했다. 시사저널 보도가 나오기 하루 전인 9일 서 본부장은 성명을 통해 "참고로 조남풍(前 향군회장·국군보안사령관)은 2015년 7월31일 '보훈처 제대군인지원국장 초청 간담회'에서 이상훈 의장님을 직접 언급하며 '그분은 내가 정보기관장을 했다고 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지극히 사상적으로도 좌우가 불분명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더해 서 본부장은 애국총단체협의회 박아무개씨가 공금 1억원을 개인통장으로 이체시킨 혐의로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언급하면서 "이렇게 정의롭지 못한자가 애국운동을 한다니 가소롭습니다. 이런 장성(해병대)출신은 장군단의 명예를 위해 사회정의 차원에서 가중처벌 하여 사회와 격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 사진=국민행동본부 홈페이지


그러면서 서 본부장은 "좌파 정권 하에서 내란선동죄, 쿠테타선동죄 등으로 온갖 박해를 받아가며 애국활동을 해온 국민행동본부를 이적단체로 매도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금번 애총의 성명에 대해서는 의장님 명의로 사과하지 않으시면 법적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보수 우익인사끼리 서로의 정체성을 의심하며 헐뜯으면서 감정싸움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서정갑 본부장이 애국총단체협의회를 지목해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보수단체 돈줄의 단일화 창구로 삼으려고 했다는 폭로도 두 단체 사이 알력 다툼이 분열상을 보이면서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병기 전 국정원장과 보수단체장과 회동이 1년이 흘렀다는 점, 최근 어버이연합 사태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서 본부장은 충분히 애국단체총협의회 뿐 아니라 청와대까지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발언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기득권을 둘러싼 보수 우파의 분열상이 정권에 치명타를 가하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서 본부장의 폭로는 예상보다 심각하다. 이병기 비서실장은 CBS와 통화에서 회동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돈줄 단일화 창구 의혹에 대해 "터무니없는 소리에 대응하고 싶지 않다"며 적극 의혹 차단에 나섰다. 

하지만 이병기 비서실장이 대응하지 않겠다고 해서 간단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우선, 국정원과 보수단체의 정례적인 모임이 있었는지, 이 같은 모임의 성격은 무엇인지부터 해명이 돼야 한다. 국민행동본부는 정권 비판적인 세력의 처벌을 주장하는 과격한 단체로 알려져 있다. 국정원이 서정갑 본부장을 오찬 모임에 무슨 목적으로 초대했는지부터 물음표가 붙게 된다. 

서 본부장의 폭로는 국정원이 보수단체 단일화 창구를 만드라고 한 것이 핵심 의혹이다. 그렇다면 기존에 단일화 창구를 마련하지 못해 각 단체별로 국정원이 자금을 지원해왔다는 의혹도 나올 수밖에 없다. 

당장 국민행동본부가 일간지 광고 비용을 어디서 마련했는지부터 의혹을 낳고 있다. 국민행동본부는 지난 2006년부터 일간지에 광고를 게재하는 형식으로 매달 한번 꼴로 소위 ‘광고 투쟁’을 해왔다. 

광고는 정권을 옹호하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일례로 지난 2014년 1월 2일 국민행동본부는 "다수결을 포기하고 좌익에 굴복, 국정원을 김정은에게 상납한 황우여 세력을 몰아내자"라는 제목으로 조선일보에 광고를 게재했다. 국민행동본부는 "황우여 대표는, 애국자들의 간곡한 반대를 무시, 국회선진화법(사실은 후진화법)을 통과시켜 자진해서 다수당의 자격을 포기한 자"라며 "다수결 원칙을 무너뜨려 헌정질서를 혼란에 빠뜨린 황우여는, 국민들의 주권행사(선거)를 무효로 만든 한국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비난했고 철도파업을 중재했던 당시 김무성 의원에 대해서도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김무성 등 개념없는 국회의원들은 선동-난동집단에 탈출구뿐 아니라 피난처를 제공, 국해(國害)를 자행한 꼴"이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광고 문구로 넣었다. 

이밖에 5. 24 조치 해제와 이산가족 상봉을 주장했던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해서는 "문재인 대표는 북한의 대변인인가"라는 광고를 게재했고,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웠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유승민은 계급투쟁론자인가.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옮겨라"라는 내용의 광고를 냈다.

국민행동본부의 일간지 광고는 한번 게재하는데 수백만원부터 수천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개인 후원금을 모아 정기적으로 광고 비용을 충당하기가 쉽지 않다. 

답은 기부금에 있었다. 국세청 법정지정 기부금단체 기부금 공개내역에 따르면 국민행동본부는 지난 2014년 기부금단체로 지정돼 그해 모두 7천여만원의 돈을 지원받았다. 그리고 월마다 작게는 100만원부터 크게는 2천여만원까지 조선, 동아, 중앙, 문화일보에 일간지 광고비로 7천여만원을 모두 지출했다. 국민행동본부는 지난해에도 모두 1억4천5백여만원을 기부금 단체 지원금으로 받고, 월마다 80만원에서 3천여만원까지 모두 '국민계도 광고비'라는 명목으로 일간지 광고비에 사용했다. 

국정원에 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집권 여당 인사까지도 칼날을 들이대고 정권 비판적인 세력은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성 광고 비용을 누구로부터 받았는지 알 수 없는 기부금단체 지원금으로 쓴 것이다. 서정갑 본부장은 시사저널 인터뷰 이후 접촉을 피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발언의 진위와 기부금 수입 출처를 묻기 위해 수차례 서 본부장과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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