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기후변화 논의 잊은 정치권, 더위 먹었나?

입력 2016. 8. 1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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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인한 폭염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2020년 폭염지옥의 시나리오에 따른 사회경제적 추산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기후변화에 대한 아무런 정치적 논의도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대표에게 주는 취임 선물이었을까. 8월 11일 박근혜 대통령은 산업자원통상부에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할 것을 지시했다. “민생 문제만큼은 야당의 시각으로 접근할 것”이라던 이정현 대표는 취임 첫날 청와대와 오찬회동을 하자마자 야당의 의제였던 ‘누진제 개선’을 낚아채갔다.

박근혜 대통령의 결정으로 폭염 아래 들끓었던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은 일단 가라앉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격적인 ‘20% 전기요금 인하’가 누진제 논란의 끝으로 보기는 어렵다. 누진제 논란의 출발에는 두 가지 키워드가 있다. 폭염과 형평성이다. 위협적인 더위 속에서 에어컨을 쉽게 켤 수 없었던 시민들에게 산업용 전기와 가정용 전기의 차별은 공분을 자아냈다. 올해의 폭염은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폭염은 반복되는 문제가 될 것으로 예견된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누진제 논란’은 기후변화가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이며, 이는 곧 ‘형평성 문제’이자 ‘계층 문제’임을 체감한 시민들의 일차적인 반응이었다.

폭염이 계속된 9일 서울 후암동의 쪽방촌에서 한 거주자가 선풍기를 틀어놓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신지예 녹색당 정책위원은 누진제 논란의 이면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폭염과 무더위 속에서 에어컨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쪽방촌 노인들은 더운 바람 나는 선풍기조차 전기요금이 아까워 호사로 보이고, 실외 온도에 가깝게 치솟는 원룸 촌의 청년들은 에어컨이 나오는 카페를 전전한다. 게다가 폭염에 실외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에어컨은 고사하고 구급차가 더 가깝고 오히려 에어컨을 설치하는 노동자들은 높은 난간에 매달리다 추락한다. 폭염과 무더위의 영향과 대처수단이 계층별로 상이한 것이다.”

제도권 내 정당에서는 ‘누진제 폐지 여부’만이 주요 정치적 쟁점으로 불거졌지만, 원외정당인 녹색당과 시민사회에서는 ‘누진제 논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정치적 쟁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기후변화로 누가 피해를 볼 것이냐는 환경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누진제를 기회로 새로운 정치적 시각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폭염이 심각해지면, 유럽 도시들에서는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고 에너지를 전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에너지는 교통, 먹거리 등 모든 것과 연계돼 있다. 이를 어떻게 바꿀 건지 모색하는 게 정부와 지자체의 핵심적 역할이다. 우리는 폭염을 제어할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대신 정치·경제·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방안을 생각해 봐야 한다.” 강은주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은 산업용 전기에 대한 할인을 ‘형평성 문제’를 넘어 기후변화를 강화하는 악순환의 관점에서 재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상업용 전기는 심야전기 등 다양한 형태의 할인이 들어가는데 이를 없애는 게 맞다. 심야에도 발전소를 가동해야 효율적이라며 심야전기를 할인해주고 그러다 보니 3교대 노동, 24시간 할인마트 등 야간노동이 심해진다. 그러다 보면 또 전기가 필요하다고 발전소를 짓고 화력발전소의 증가로 온실가스는 증가하는… 악순환이다.”

누진제 논란으로 실감한 ‘계층 문제’

‘누진제 논란’으로 기후변화와 취약계층 문제, 현 경제시스템에 대한 문제 등 논의를 시작해야 할 다양한 정치적 쟁점들이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4200억원의 예산으로 누진제 논란을 봉합하면서 논의를 차단해 버렸다. 정부는 야당이 주장하고 있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태희 산업부 차관은 “전반적인 요금체계에 대한 개편방안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시사했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이 기업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경제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성장 일변도의 경제시스템이 기후변화를 야기했고 기후변화로 발생한 폭염이 누진제 논란을 불러왔지만, 한국 정치는 이를 정치쟁점화하지 못하고 다시 문제의 최초 원인인 ‘경제성장 논리’로 흡수해버렸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재난을 예견하는 정부의 지표와 학계의 논의는 많이 발표됐다. 국민안전처 산하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한 달간의 폭염지옥’ 시나리오를 게재했다. 불과 4년 후인 2020년 한 달간 폭염이 지속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4주차에 걸친 가상 시나리오를 세웠다. 1주차 봄부터 이어졌던 가뭄을 지나 이른 여름 폭염특보가 발효된다. 때이른 무더위로 폭염은 계속되고 2주차에 첫 사망자가 발생한다. 3주차에는 온열질환자가 폭증하면서 농업의 피해, 전력난, 불쾌지수로 인한 범죄 등 사건·사고가 급증한다. 4주차에는 초과 사망자 수가 1만여명에 이르고 경제는 침체되고 치안의 위기가 발생하고 사회갈등은 격화된다.

그러나 정부가 ‘지옥’이라고 예견한 이 시나리오에 걸맞은 실효성 있는 정책이나 기후변화 완화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눈에 띄지 않는다. 세계 각 정부의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기후변화 완화’와 ‘기후변화 적응’이다. ‘기후변화 완화’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미래의 기후변화도를 완화시키는 것이다. 전지구적 협력이 필요한 문제다. 기후변화 적응은 말 그대로 기후에 대한 적응을 뜻한다. 각국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약속은 하고 있지만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는 대기 중에 오래 머물며 지속적으로 기후변화를 일으킨다. 기후변화 적응은 이미 일어난 기후변화로 인한 생물다양성 감소, 재난·감염병·질병 발생 증가 등과 같은 위험을 최소화하고 이를 최대한 기회로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정부의 정책은 ‘기후변화 적응’에 방점이 찍혀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 피해부담 및 사회·경제적 영향 평가 관련 연구’로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비용을 추산한 정해관 성균관대 의대 교수는 기후변화 문제는 “결국 삶의 패턴을 바꾸는 문제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팝콘 기계에 넣고 가열을 시작하면 처음에는 몇 개만 터진다. 처음 터져나오는 팝콘은 껍질이 얇든가 금이 가 있다. 이 팝콘만 치워버리면 괜찮을까. 아니다. 단지 미리 터지는 것뿐이다. 나머지는 안 터질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머지도 일제히 터져나온다. 터진 팝콘을 빨리 옮기는 것을 넘어서 밑에 불을 꺼야 한다. 적응정책만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정부의 ‘완화 정책’은 후퇴하고 있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는 ‘국가 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립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명박 정부가 제시했던 것보다 더 늘었다. 이는 국제사회가 합의한 ‘후퇴금지의 원칙’을 어긴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책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나오미 클라인·2014)는 ‘공포감’이 ‘기후변화’에 대한 대안을 찾아낼 주요한 동력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사는 이 행성이 하루하루 활력을 잃어가면서 파멸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공포감. 이 감정을 가지고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이러한 공포감이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공포감이야말로 세계가 파멸로 치닫고 있다는 참혹한 현실에 직면해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기후변화가 야기할 ‘폭염 지옥’의 공포는 이야기하지만, 공포 이후의 ‘합리적인 반응’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폭염지옥 시나리오에 대한 정책은 없어

정책의제 설정이론 중 ‘체제이론’은 ‘체제의 문지기’들이 체제의 과중한 부담을 피하기 위하여 소수의 사회문제만을 정책문제로 채택하는 것을 말한다. ‘체제의 문지기’란 공식적 정치제도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대통령, 고위 관료, 국회의원 등을 뜻한다. 핵심적인 ‘체제의 문지기’라고 할 수 있는 정부·여당에게 ‘경제성장’만이 공포감에 대한 유일한 반응인 셈이다.

정책의제에서 기후변화 의제를 배제하는 것은 국회도 마찬가지다. ‘누진제 논란’에서 여야는 ‘폐지 여부’에만 집중했지 ‘기후변화’로 인한 계층 격차, 형평성, 온실가스 감축 등의 논의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러한 무관심은 사실 반복적이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유일한 법안인 기후변화건강관리법안도 19대 국회 때 발의되었다가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서 폐기됐다. 새누리당 민현주 의원이 대표발의한 해당 법안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기후변화와 건강영향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최근 국내에서도 규명되고 있어 향후 기후변화가 본격적으로 심해지면 그로 인해 국민의 건강피해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됨에 따라 건강적응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필요성이 있어 기후변화에 따른 건강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건강적응정책과 취약계층 중심의 건강피해 관리 강화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임.” 그러나 법안은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19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자동 폐기됐다.

환경과 관련한 의제는 국회에서 좀처럼 정치적 쟁점으로 점화되지 않았다. 강은주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은 19대 국회 때 국회 의원실 정책비서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19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평가와 20대 국회를 위한 제언’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강 연구원은 “기본적으로 환경노동위원회 상임위는 노동전문가가 중심이 되어 구성돼 있다. 비인기 상임위다. 야당의 장하나 의원 같은 초선 비례의원이 개인적 관심 등을 덧붙여 상임위에 배정되는데, 개별 의원들이 다 하기에는 전문적 의제라 다루기 어렵고 보좌진 구성도 잘 안 된다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19대 국회 환경분야 가결법안의 특징을 ‘쟁점 없음’으로 분석했다. 특별한 쟁점 없이 위원장 대안으로 가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단순 법령 정비를 통한 실적 쌓기도 가결법안의 3분의 1이나 됐다. 19대 때 환노위에서 가결된 법안의 70%가 환경부 소관 법률이었다. 이는 여야를 막론하고 환경에 대해 특별한 입장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별한 입장이 없었다는 것은 환경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나아가지 않았음을 말한다. 환경문제는 정치논리에 번번이 밀렸다. 강 연구원은 19대 국회 임기 중 특히 2013~2014년을 ‘경제정책에 밀린 환경정책’이라고 명명했다.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취약성에 대한 평가, 그리고 이에 대한 부처의 대처능력이 지적됐지만, 이 시기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성장 중심의 정책이 탄력을 받으면서 환경 관련 의제가 의제활동에서 국정감사 시기를 제외하면 사라지기 시작했다. 주요 현안이나 이해갈등을 다루기는 하였으나 대체로 문제를 지적하고 드러내는 것에 집중하여 근본적 변화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웠으며, 정부·여당의 경제·투자 국정 정책에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위원장은 “미국 대선에서 기후변화는 상당히 큰 이슈 중 하나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는 화석연료 산업의 이해관계를 정확히 대변하고 있고, 온실가스 감축정책도 파기하겠다고 나섰다.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온실가스 감축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월스트리트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지 미지수다. 버니 샌더스는 클린턴보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한국의 심각한 문제는 기후변화가 정치권에서 논란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유럽의 웬만한 도시 홈페이지에 가보면 기후변화와 관련된 정책이 지자체의 주요 정책으로 나온다. 최소한 시의 핵심 정책 다섯 번째 안에는 들어간다. 산업구조, 경제활동,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하는 문제인 만큼 한국 사회도 그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정치적 쟁점들은 제도권 정치 안에서 논의되지 못하고 제도정치 바깥에서만 논의되고 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녹색평론> 7·8월호 권두언에서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정치의 중요성을 말한다. “자본주의의 어리석은 탐욕에 맞서고, 기후변화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다수 민중의 삶을 보호하고 자연세계를 보존하는 데 필수적인 것은 ‘합리적인 정치’이다. 그리고 현 단계에서 합리적인 정치란 온전한 의미의 민주정치뿐이다. 민주주의야말로 유일한 대안이다.” 기본소득도 하나의 대안으로 이야기된다. 기본소득을 통해 일의 개념이 달라진다면 기후변화를 불러온 경제성장 일변도의 삶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던 중요한 일들이 떳떳한 지위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종전과 달리 사회적 약자와 공동체의 건강·자연을 돌보고 보살피는 노력들이 적극적으로 장려되고, 그 결과 우리의 삶은 보다 풍요로워지고 우리가 사는 사회는 보다 인간적인 사회로 바뀌게 될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제도정치권 내에 수렴될 수 없는 급진적인 논의들에 불과할까.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에서 역설하는 일부 아이디어들, 예컨대 국민 기본소득 보장이나 무역법률 개정, 세계의 광범위한 지역을 채취활동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원주민 권리의 인정도 지금은 터무니없이 급진적인 것으로 취급되고 있지만, 어쩌면 몇 년 뒤에는 합리적인 아이디어, 심지어는 지구를 살리기 위한 필수적인 아이디어로 평가받게 될지도 모른다.”

폭염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기후변화에 따른 형평성 문제, 계층 격차 문제로 제2·제3의 누진제 논란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건강재난안전처는 2020년 폭염지옥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추산되는 끔찍한 공포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파국을 예견하면서도 기후변화에 대한 아무런 정치적 논의도 점화시키지 못하는 한국 정치야말로 어떤 급진성보다 터무니없는지도 모른다.

기후변화로 인한 2030년 건강비용은 최대 35조원
기후변화 적응은 말 그대로 기후에 대한 적응을 뜻한다. 정부는 기후변화적응센터를 만들고 2011년부터 5개년 단위로 기후변화 적응계획을 세워서 시행하고 있다. 장재연 아주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로 기후변화 적응정책이 있지만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높은 단계, 중간 단계, 낮은 단계 모두가 총체적인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위험성을 지적하는 학계의 연구는 기후변화의 적응이 시급함을 말해준다. 2014년 정해관 성균관대 의대 교수가 발표한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피해 부담 및 사회·경제적 영향평가 관련 연구’에 따르면, 2030년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비용은 27조6000억~35조7000억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정해관 교수는 이 또한 보수적으로 잡은 최소한의 수치라고 말했다. “체온이 1도만 올라가도 몸은 당장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폭염으로 인한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 사망이 급격하게 늘게 된다. 건강은 외부효과가 크다. 순수 건강효과만 따질 게 아니라 그걸로 인해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적 손실이 생기는 것은 추산한 비용에서 감안이 안 됐다. 사회적 조건도 그렇다. 우리나라가가 지금 같은 경제 수준을 유지하고 의료 접근성, 응급의료체계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전제 하에서다. 만약 노령화가 심해지고 경제가 안 좋아지고 의료체계가 잘 안 돌아간다면 이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이 들 것이다.”



기후변화 적응은 사실 2003년부터 논의돼 왔다. 장재연 교수는 2003년에 환경부로부터 ‘한반도 기후변화 영향평가 및 적응 프로그램 마련’이라는 연구를 위탁받아 연구를 시작했다. 이후 관련 연구를 계속해온 장 교수는 2008년 ‘기후변화건강포럼’을 창립했다. 장 교수는 기후변화 적응에 대한 정부의 관심도가 낮고 대책도 미비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어쩌다 더운 날 사람들이 죽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기후변화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점점 심해질 것이기 때문에 보건복지부에 국가적인 목표를 세우고 분야별로 정부가 할 일에 대해 체계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2008년 만들어진 기후변화TF는 여전히 임시단위인 TF로 만들어져 있다. 오늘 기온이 올라가서 병원에 사람이 많이 실려 오면 다음날 강력조치를 해서 온열질환자나 사망자를 줄이는 시스템이 마련됐어야 하는데 현재 그게 무너졌다. 미국 시카고에서 어느 해 폭염으로 사망자가 급증하자 대책을 세웠고, 그 결과 같은 폭염이 오더라도 사망자는 6분의 1로 줄었다.” 올해 온열질환자가 급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기후변화 적응정책을 내세우지만, 여전히 폭염에 더 많이 사람들이 쓰러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면 말로만 대책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2011~2015년 기후변화 적응계획에 대한 평가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피해 저감대책의 다양화 및 활성화를 구현”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 기후변화행동연구소는 2010년,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종로구 돈의동의 쪽방촌 노인들을 대상으로 ‘폭염이 서울시 쪽방촌 독거노인에게 미치는 건강영향 조사’를 실시했다.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쪽방촌의 평균온도는 33~34도였고, 38도를 넘어서는 곳도 있었다. 2명의 쪽방촌 독거노인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폭염 시 행동 인지 여부 및 방문간호사 등 폭염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60%가 ‘모른다’고 답했다. 폭염 시 지역사회 간호사 방문과 관련해서도 60%가 모른다고 답했다. 폭염 시 행동요령 인지 여부는 25%가 모른다고 답했다. 이는 2010년보다 나아진 수치이지만 여전히 ‘기후변화 적응’의 체감도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쪽방촌 독거노인’은 2007년부터 폭염 취약계층으로 알려져 왔다. 정부는 그 외에 다른 취약계층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이에 대한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핫대구’ 폭염 속 지자체의 대응은? www.hotdaegu.com. 대구에서 열리는 제1회 대구 국제폭염대응포럼 홈페이지 주소다. 대구시가 후원하고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 국립기상과학원, 기후변화건강포럼 등이 주관한다. 한국에서 가장 더운 도시 대구에서 오는 18~19일 양일간 열리는 이 포럼에서는 폭염 건강피해 예방 및 저감 정책, 폭염 대응과 지속가능발전 목표, 폭염과 쿨산업, 폭염대응 시민참여 프로그램 등의 행사가 개최될 예정이다. 오용석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은 포럼의 핵심을 ‘시민참여’로 꼽았다. “대구가 갖고 있는 문제점인 폭염에 집중했다. 종합적으로 도시 단위에서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이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인식 개선이 함께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정책 결정자와 이해관계자의 참여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이해하고 인식한 후 관련되는 정책을 요구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시민들이 같이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포커스를 맞췄다.” 대구의 폭염은 두 가지가 중첩돼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전반적 온도 상승의 문제와 도시화·밀집화로 인한 도시 열섬현상이 가중되는 문제다. 이번 포럼에서는 후자에 초점을 맞춰 도시계획이나 도로계획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논의한다. “도시에 무분별한 주택건축 정책으로 바람이 이동하는 길이 막혀 바람이 불지 않고 열이 정체되는 현상이 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는 대형자동차 회사가 있어 대기오염이 심각했다. 이 도시는 바람길을 조성하고 가로수를 심어 대기오염을 상당히 개선해 도심 온도를 낮췄다. 이러한 사례가 대구에 반영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논의를 할 예정이다.” 오 처장은 “폭염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강도의 위기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저소득층 취약계층들에게 먼저 위기로 다가오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특화한 정책적 지원과 사회적 돌봄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논의도 이번 포럼에서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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