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특사, 독도 언급시 미소만 지을 것"..'최순실 파일' 들여다보니

2016. 10. 2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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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최순실 파일’에 외교·국방 등 기밀문건 수두룩
아베 특사단에 “위안부 개별 언급 삼가” 지침
실제 만남 전 최씨 PC에 먼저… 국정개입 의혹

2013년 1월4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특사단을 접견하는 등 당선인 사무실에서 첫 공식 행보에 들어갔다. 박 당선인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대통령 당선인 집무실에서 누카가 후쿠시로 한일의원연맹 간사장 등 자민당 의원 3명,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 등 특사단의 예방을 받았다. 국회사진기자단

최순실씨의 컴퓨터에서 외교·국방 등 기밀문건이 여럿 발견되면서 최씨가 민감한 국내외 현안까지 챙겼다는 의혹이 거세지고 있다.

‘최순실 파일’에 있는 청와대 관련 문서( ▷관련기사 보기 [뉴스AS] 최순실은 어떻게 대통령을 ‘기획’했나 ) 중에는, ‘아베 신조 총리 특사단 접견 자료’ ‘호주 총리 통화 참고자료’ 등의 외교 관련 문서가 다수 포함돼 있다. <중앙일보>는 26일치 지면을 통해 ‘아베 신조 총리 특사단 접견 자료’라는 제목의 파일이 “실제 접견 시각인 오후 2시보다 9시간 가량 앞선 오전 4시52분 최씨의 PC에 저장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 자료는 아베 신조 총리 특사단을 맞이하며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사단은 지난 2013년 1월4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있는 당선인 집무실을 방문했다. 인수위가 꾸려지기 전 박 대통령이 치른 당선 뒤 첫 공식 일정이었다. 아베 총리는 누카가 후쿠시로 전 일본 재무상을 포함한 특사단을 파견해 ‘친서’를 전달했다. 2012년 12월 일본 총선을 통해 집권한 아베 총리는 당시 내각에 독도·위안부 문제 등에 극우적 색채를 드러낸 인사들을 기용했다. 자연히 한국 내의 여론은 나빴다. 일본으로서도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이래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었다. 경색된 한·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 박근혜 정부의 첫 외교 실험대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서에서는 독도·위안부 문제에 대해 박 대통령(당선인)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지의 내용도 담겨 있었다. “일측이 독도의 날 행사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추진하지 않는 방향으로 검토 입장임을 언급할 시 불언급(미소로서 답함)”으로 대응하라고 적혀 있었다. “독도 문제가 정상 간 면담시 거론되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음”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되도록 독도에 대한 언급 자체를 피하라는 얘기다.

독도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경우의 대처법도 적혀 있다. “불가피할 경우 독도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하지 않고 양국 간 역사 문제로 인해 양국 관계의 기본 틀이 훼손되지 않도록 일본 측이 현명하고 분별 있게 행동하기 바람” 이라는 주문이다. 독도 얘기가 나오더라도 “독도”라는 단어를 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측이 기피하는 사안으로 선제 언급 가능성이 희박함”이라고 문건에 쓰여 있다. “개별 사안에 대한 언급보다는 큰 틀에서 역사에 대한 일측의 올바른 인식이 양국 관계 발전의 기본이라고 언급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설명도 있다.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앞 가로수에 ‘나와라 최순실’이라고 적힌 펼침막이 걸려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와 같은 외교 행사에서 국가원수의 대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룬 문서는 중요한 극비 문서다. 사전에 노출될 경우 우리 쪽의 대응이나 외교 전략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부 실무진 차원에서 행동 조언을 담은 국가 기밀 자료가 어떻게 해서 일개 개인의 컴퓨터에, 그것도 실제 만남 전에 저장될 수 있었는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 통화 참고’ 문서에는 호주의 첫 여성 총리로 화제가 됐던 길라드 총리와 박 대통령이 통화에서 나눠야 할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12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호주가 비난 성명을 발표한 것에 감사를 표시하라는 조언이 담겨 있다. 이 문서는 실제 전화통화가 이뤄지기 15시간여 전인 2012년 12월29일 오전 1시44분 최씨의 피시에 최종 저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과의 비밀접촉 등 민감한 극비사항도 최씨의 파일 속에서 발견됐다. ‘청와대 회동’이라는 문서에는 ‘외교안보현안’ 으로 “최근 군이 북한 국방위원회와 3차례 비밀 접촉이 있었다고 함”이라는 대목이 있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는 남북대화를 공식적으로 중단했다. 그러나 2012년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우리 정부가 비밀리에 접촉을 가졌다는 것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극비 사항이었다. 이 사실을 최씨 쪽에서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 문건이 최씨의 컴퓨터에 저장된 시각은 2012년 12월28일 오전 4시56분으로, 실제 청와대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만남이 이뤄지기 10시간 전이었다. 이런 대외비 문서들이 최씨의 파일 속에 포함됐다는 것은, 민감한 외교·대북 문제에 최씨가 개입했다는 정황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최씨가 개성공단 폐쇄 등 굵직한 대외정책에 관여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대통령을 위한 자문회의 성격의 비선 모임을 최씨가 주도했다고 <한겨레>와의 인터뷰 (▷관련기사 [단독] “최순실, 정호성이 매일 가져온 대통령 자료로 비선모임”) 에서 털어놓았다. 모임의 주제는 “10%는 미르·케이스포츠 재단과 관련한 일이지만 나머지 90%는 개성공단 폐쇄 등 정부 정책과 관련된 게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외교관도, 공직자도 아닌 일개 비선들의 모임에서 중대한 국가 외교안보 정책이 좌우됐다는 이야기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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