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CF 발주에 보답" 차은택, 장차관 자리를 '사은품'으로 활용

정제혁 기자 2016. 10. 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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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은인들’ 문체부·청와대에 발탁
ㆍ차씨 인맥, 문화정책 핵심 꿰차
ㆍ유관단체 인사에도 영향 행사

현 정부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는 차은택씨(47)가 광고계 ‘선배’인 송성각씨(58)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앉히려다 여의치 않자 한국콘텐츠진흥원장에 앉혔다는 증언은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차씨의 인사농단이 어느 지경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증언이 사실이라면 차씨 등이 부처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장차관 자리를 과거 도움을 준 사람에게 베푸는 ‘답례품’ ‘사은품’ 정도로 여겼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송씨 지인 ㄱ씨의 28일 증언은 매우 구체적이다. ㄱ씨에 따르면, 두 사람은 2014년 5월 수도권 한 골프장에서 골프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송씨는 난데없이 “나 문체부 장관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리둥절해진 ㄱ씨가 “무슨 얘기냐”고 묻자 송씨가 “차은택 있잖아. 내가 차은택 조감독 시절에 CF도 주고 애니콜 광고물도 줘서 나를 은인으로 생각하는데, 걔가 나한테 보답한다고 문체부 장관 시켜준다고 했어. 이력서 달라고 해서 이력서 줬어”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송씨는 2005년 제일기획 제작본부장을 지냈는데, 이때 영상감독인 차씨에게 삼성 휴대전화 ‘애니콜’ 광고 등을 발주했다고 한다. 가수 이효리씨가 출연한 애니콜 광고는 시쳇말로 ‘대박’을 쳤다. 이후 차씨는 스타 영상감독으로 승승장구했다. 당시의 고마움을 잊지 않은 차씨가 그 보답으로 “문체부 장관 자리를 주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송씨와 ㄱ씨는 같은 해 6월 말쯤 또 둘만의 골프모임을 가졌다. 그날 송씨는 “송사 문제가 있어서 장관은 안될 것 같다. 인사청문회가 없는 차관으로 낮추자고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팬텀엔터테인먼트그룹 이사로 있던 송씨는 사기 건으로 송사에 휘말렸는데, 인사청문회 때 이것이 문제가 될 것 같자 청문회를 거치지 않는 ‘차관급’으로 격을 낮추자고 차씨가 제안했다는 것이다.

2014년 12월 송씨는 차관급인 한국콘텐츠진흥원장에 취임했다. 당시 송씨의 원장 임명을 두고 광고계 안팎에서 뒷말이 나왔다. 제일기획 출신 한 광고인은 “송씨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력을 가진 신화적인 광고인도 원장에 응모했는데 송씨에게 밀렸다는 소문이 돌았다”면서 “그 정도 자리에 갈 만한 사람이 아닌데 원장이 되는 것을 보고 다들 ‘배경이 있나보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송씨를 앉히려다 무산된 문체부 장관 자리에는 김종덕 전 홍익대 영상대학원장이 임명됐다. 김 전 장관은 송씨가 ㄱ씨에게 “장관은 힘들 것 같다”고 말한 지 두 달쯤 지난 2014년 8월 취임했다. 김 전 장관은 차씨와 홍익대 영상대학원 사제지간이다. 김 전 장관이 ‘영상인’ 대표를 지낼 때 차씨가 그 밑에서 영상감독으로 일한 인연도 있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김 전 장관을 ‘깜짝 발탁’한 것을 놓고 차씨와 그 윗선인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찌감치 제기됐다. 차씨 외삼촌인 김상률 숙명여대 교수가 2014년 11월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임명된 것과 맞물려 의혹은 증폭됐다. 국가 문화정책을 총괄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 장차관 자리를 차씨 인맥이 다 꿰찬 것이다.

문체부 소속 뉴욕문화원장, 파리문화원장에 광고인 출신이 이례적으로 임용된 것을 같은 맥락에서 읽는 시각도 있다.

<정제혁 기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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