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전 사무총장 "재단 주인은 최순실씨입니다"

2016. 10. 2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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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커버스토리/ 정현식 K스포츠 재단 전 사무총장이 만난 최순실·안종범
“최순실 면접 뒤 안종범이 일 맡아달라고 전화해”
‘회장’이라 불렸던 최순실, “어떤 재단인데” 소리치기도

정현식(63)케이(K)스포츠재단 전 사무총장이 검찰 소환을 앞둔 지난 26일 자택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양주/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정현식 전 케이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은 은퇴한 은행원이다. 이문 남기는 일을 허투루 다뤘다가는 사달이 난다는 것은 30년 경험으로 체득했다. 그는 이상하다 싶을수록 꼼꼼하게 일을 처리했다. 그 덕에 재단의 돈이 최순실씨 소유 더블루케이로 흘러들어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이사장이 공석이었을 때 이사이자 사무총장으로서 재단 자금과 사업을 총괄하는 지위에 있었지만, 정작 회장으로 불리는 최씨의 지시를 받는 허수아비 신세였다.

<한겨레>는 지난 9월초 그에게 처음 연락을 취했다. 인터뷰는 한 달이 넘게 흐른 10월23일에 이뤄졌다. 그에게는 고뇌의 시간이었다. 그는 맘을 굳히고 인터뷰에 나서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조용히 있으려 했는데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결국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사실과 추측을 구분해 말할 만큼 엄밀한 성격이었다.

재단의 주인은 최순실

-처음 최순실씨를 본 게 면접 때였나?

“한 여성이 초면에 아무 말 없이, 내 이력서를 들고서 ‘재무…, 감사를 맡으면 되겠네?’ 이렇게 말했다. 누군지는 몰랐다. 어쨌든 (자리를 결정하니 최씨가) 재단 리더라는 느낌을 받았다. 최씨가 누구인지…, 많이 궁금했다. 당시에 내가 맡을 감사라는 자리가 비상근인지 상근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비상근이라 보수가 없다는 말을 듣고는 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은 한 빌딩 5층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이때가 지난해 12월23일이었다. 재단이 설립되기 20일 전이다. 자신의 자리를 결정하는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치러진 면접이었다. 그저 ‘이 사람이 재단의 주인이구나’라고 직감했다.

-그때 최씨를 처음 본 것인가?

“당시 나보다 먼저 재직하고 있던 김필승 이사한테 연락이 왔다. 누가 보자고 한다는 것이다. 상견례를 하는 자리인 줄 알았다. 면접을 봤던 여성이 누구인지 하도 궁금해서 나중에 김 이사나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저분 누구냐고 물으니 ‘차차 알게 될 거다. 급하게 알 필요 없다’고 하더라. 같이 일할 사람인지 안 할 사람인지 모르지만, 서로 모르고 어떻게 일을 하나 그런 궁금증은 있었다. 다만 내 신상에 대한 검증이 청와대에서 내가 다녔던 은행으로 왔다고 하니, 그렇게(최씨와 청와대가) 연결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이 등장한다. 케이스포츠가 에스케이, 롯데 등 대기업을 통해 돈을 끌어들이려 했던 것과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최씨가 먼저 확인하고, 안 수석이 재차 들여다보는 식으로 채용도 이뤄졌던 것이다.

“안 수석도 감사를 맡아달라고 그랬다. 최 회장과 비슷한 시기에 안 수석에게 바로 전화가 온 것이다. 그래서 저는 양쪽에서 교감이 있나 보다 했다.”

-안 수석은 뭐라고 했나?

“그냥 ‘청와대 안종범입니다. 이번에 새로 생길 재단에 감사를 좀 맡으시죠’라고 했다.”

-본인이 재단과 어떻게 관여가 돼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나?

“전혀. 포털 검색창에 검색해서 안종범이라고 치니까…, 쫙, 나오더라. 대학 과 동문이어서, 친근감을 가진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나도 ‘그렇습니까. 잘 지도해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됐다.”

-최순실씨는 안 수석에 대해 뭐라고 했나?

“그냥 안 선생이라고 불렀다.”

안 수석은 일관되게 “최순실을 만난 적이 없다. 모든 것을 걸고 진짜로 모른다”는 말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최씨가 정 전 사무총장을 채용한 직후 보인 모습만 봐도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최씨가 며칠 뒤 다시 연락을 해왔다. 감사는 외부에서 찾아보고 재무를 맡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여기 일해라, 저기 일해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저 청와대에서 나를 검증했다고 하니 뭔가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게 있겠거니…, 이렇게 생각했다.”

-사무총장 업무는 언제부터인가?

“얼마 있다가 결론적으로 사무총장 겸직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 나는 체육전문가는 아니니까 사무총장은 어렵다고 말했다. 나중에 사람을 찾을 때까지만 임시로 하겠다고 수락했다. 얼마 있다가 정동구 이사장(현 태평양아시아협회 회장)이 그만두게 됐다. 그래서 이사장도 공석이고 사무총장도 공석이면 조직이 안 돌아갈 것 같아서 나이가 제일 많다는 단순한 이유로…(사무총장을 하게 됐다).”

-재단 일감을 최씨 소유 블루케이 쪽으로 몰아주려는 움직임은 없었나?

“(최 회장이) 블루케이에 연구용역 과제를 넘기라고 했던 적이 있다. 재단 업무 수행 위해 필요한 과제를 정하면 블루케이가 보고서를 내 연구용역비를 받아가는 식의 구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블루케이에만 맡기면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있는 동안은 블루케이에 한 푼도 안 나갔다.”

-사무총장을 계속 할 생각이었나?

“아니다. 새 이사장이 오거나 체육계 출신 사무총장을 채용할 때까지 임시로 맡겠다, 후속조치를 빨리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90일이 못 돼 정동춘 이사장이 취임했고….”

최씨와 안 수석, 재단 일 직접 챙겨

최씨와 안 수석은 전화를 거는 등 직접 재단 일을 챙겼다. 정 이사장은 지난 1월13일 재단이 발족한 뒤 비상근임에도 매일 출근했다. 업무계획을 내놓고 의욕을 보였다. 최씨가 정 전 이사장에게 못마땅해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최씨가 나에게 전화해 의욕을 보이는 정 이사장에 대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로부터 또 며칠 뒤에 ‘(정 이사장이) 그렇게 하시면 좀 곤란하다’고 나한테 전화가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씨가 정 이사장에게 직접 전화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안다. 그런 다음 안 수석과 정 이사장이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정 이사장은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최씨의 업무 방식은 어땠나?

“말하는 스타일이 꼼꼼하게 자세히 설명은 안 했다. 메시지를 하나 던지면 박(헌영) 과장이 정리해서 기획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업무를 지시하거나 할 때 상상을 하게끔 하는 스타일이랄까. 결단력은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사람을 포용하고 끌어안고 가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 나랑 같이 입사했다가 (최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내보낸 직원도 있다.”

-인사권까지 다 있었던 것인가?

“그럼.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인사권만이 아니었다. 5월 하순께 회장한테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높고 말이 거칠었다. 그 전까지는 말을 굉장히 곱게 했는데 의외였다. ‘안녕하세요’라고 하니, ‘안녕 못해요. 재단을 말아드실려고 그러세요? 태권도 단장 연봉을 왜 그렇게 높게 책정한 겁니까. 이 재단이 어떻게 만들어진 재단인데 어떤 돈이 모였는데 이렇게 많이 쓰려고 합니까’라고 따지더니 ‘독일 출장을 가니, 갔다 와서 보자’고 했다. 나는 용도가 다 됐구나 느끼고는 사표를 썼다.”

-정동춘 이사장 선임에도 최씨가 개입돼 있었다.

“내가 회장에게 연락이 온 김에 그 과정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이사장 후보가 결정된 거 같다’고 하더라. 이름만 알고 자기는 모른다고 하면서, ‘정동춘’이라고 했다. 아는 게 없다니까 없나 보다 했다. 그런데 안 수석에게 연락이 왔다. 정동춘 박사라고.”

최씨가 직접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재단 이사장 선임에 청와대도 개입돼 있었다는 증언인 것이다.

-최씨와 연락은 자주 주고받았나?

“자주는 아니고, 현안이 있을 때 하루 한 번 정도 했다.”

다섯달 만에 알게 된 회장의 정체, 최순실

정 전 총장의 휴대전화에 최순실씨의 이름은 ‘회장’으로 기록돼 있었다.

-최씨 딸 정유라씨에 대해 들어본 바는 없나?

“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솔직히 5월까지 회장이 누군지도 몰랐으니까. 김필승 이사가 4, 5월에 나한테 두세 번 물어봤다. ‘총장님, 아직도 (회장이) 누군지 몰라요?’라고. 내가 모른다고 하니 힌트를 주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나는 정말 몰랐다.”

당시 김 이사는 엄지를 척 추켜올렸다. 그래도 정 전 총장이 이해를 못하자, 이번에는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 말을 타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저는 정말 몰랐다. 그런 행동을 하길래, 이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전 검찰에 김 이사가 출석하면서 최순실씨를 전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봤다. 미안하지만 나도 처음에는 외부에 그렇게 말했다.”

-최씨가 독일어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

“그건 모르겠다.”

-독일에서 유아교육을 공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최 회장은 자기 신상에 대해서는 일체 얘기하지 않았다.”

-최씨가 누구인지는 어떻게 알게 됐나?

“김 이사가 먼저, 아직도 회장이 누군지 모르냐고 물어봤다. ‘본인이 얘기를 안 하니 난 모른다’고 말했다. 무슨 계기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사진 하나가 떴는데, 뭔가 감이 이상해서, 어? 이 사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마장에서 찍힌 사진이었다.”

정 전 총장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 최씨는 재단의 인사·기획·재무 등 주요 업무를 모두 챙겼다. 이 과정에서 안 수석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안 수석과 통화는 얼마나 자주 했나?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한 것 같다. 주로 에스케이, 롯데 등 자금 조달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고, 그 외에 무슨 특이사항이 있는지를 점검했다. 특히 대통령 아프리카 순방 때는 아이디어를 점검하기도 했다.”

케이스포츠재단은 ‘케이스피릿’이라는 태권도 시범단을 급조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참가했다. 대통령 순방단에 실력을 공인받지 못한 공연팀이 참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최씨는 안 수석과 의견을 같이하면서 이심전심으로 청와대의 힘을 느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씨의 입에서 ‘박근혜’나 ‘대통령’, 하물며 대통령을 뜻하는 ‘브이아이피’라는 단어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냥 주어가 빠진 문장을 말했다. ‘이런 쪽으로 말씀하셨다’ 이런 식으로. ‘그러니 당신들이 알아서 해라’라고 말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우리 같은 실무자들은 주어가 없어도 ‘그런가 보다’ 하고 일을 했다.”

-브이아이피(대통령)의 뜻이구나, 이렇게 받아들였던 건가?

“그렇게 해석했다.”

최씨는 사실 누구의 뜻임을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재단의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누군가를 언급한 것은 안 수석이었다. 안 수석은 주어를 직접 언급하고 때론 강조했다.

“안 수석은 말을 할 때 ‘브이아이피 관심사항인데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 수석과 만난 적은 없나?

“1월달에 만났다. 재단이 꾸려진 지 얼마 안 돼서였다.”

-누구 소개로 만났나?

“회장(최순실)이 ‘가서 한번 인사를 하시죠’라고 했다. 플라자호텔 비즈니스룸에서 만났다.”

안 수석은 정 전 총장의 휴대전화에 ‘안선생’으로 기록돼 있다.

“(재단을 그만두게 될 즈음) 처음에는 안 수석이…, 쉽게 말씀드리자면, 내 편이 돼줄 거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그만둔 직후에 한 번 통화를 했다. 안 수석이 그동안 수고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살다 보면 갚아드릴 날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이었다. 그래서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안 수석이 나 때문에 다른 부담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정 총장 출근도 전에 인테리어 맡아준 미르 사무부총장

-미르 재단과 관계는 어떠했나?

“김필승 이사가 미르재단과 비교해 만든 급여표를 보여줬다. 케이스포츠보다 거기가 (급여가) 높게 책정이 됐더라. 그래서 회장한테 ‘비슷하게 맞추자’고 이야기했더니, ‘거기랑 왜 비교하느냐. 관심 끊으라’고 했다.”

최순실씨는 ‘완전한 내부자’가 아닌 정 전 사무총장이 미르와 케이스포츠재단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는 것을 경계했지만 그에게도 자연스럽게 미르 사람들과 마주할 기회가 생겨났다.

-미르 사람들과의 교류는 없었나?

“제가 처음 부임해서 사무실에 나가니까 케이스포츠 사무실 내부 인테리어하는 작업을 김성현 미르 사무부총장이 도와주고 있었다. 김씨는 최 회장의 신임을 단단히 얻고 있는 것 같았다. 체육 행사 관련해서 우리가 하는 이야기에 대해 김씨가 바로 억셉트(수용)를 하지 않고 똑 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면, 회장 쪽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했던 기억이 있다.”

정 전 총장은 “당연히 미르재단 역시 케이스포츠재단처럼 회장의 관리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도 “거기에 대해 (당시에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케이스포츠재단에 참여하게 됐나. 연고나 인연이 있었나?

“전부터 누구를 알아 재단에 들어가게 된 것은 아니다. 금융계에서 30년 넘게 일했다. 크게 공고를 한 형태는 아니었지만 알음알음해서 이력서를 내고 들어가게 됐다. 사실 체육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감사나 재무 쪽 일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야기하기 구차하지만 먹고살자고 늦게 직장을 잡고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어떤 생각을 하며 케이스포츠재단 일을 했나?

“정동춘 이사장이 처음 오던 날 ‘2000명 넘는 운동기능회복센터(CRC)의 고객을 포기하고 오면 손해가 되는 일 아니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정 이사장이 ‘국가에서 하는 일이니 긍지를 가지고 왔다’고 답하더라. 나도 그랬다. (처음 왔을 때는) 뭣도 모르고 정관 등을 보면 좋았고 나이가 들어 의미있는 일을 한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에스케이 건은 어떻게 진행됐나, 이미 얘기가 다 돼 있었나?

“다 돼 있었다기보다는 최씨가 ‘이야기가 됐으니 들어보라’ 그랬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그랬다). 사실 1월4일 올림픽파크텔에서 있었던 집행부 최초 상견례에서 보니 별로 할 게 없을 정도로 세팅이 다 돼 있었다(에스케이 건도 마찬가지였다).”

-에스케이가 재단에 30억원으로 역제안한 뒤 결렬이 됐는데.

“최 회장이 그냥 놔두라고. 느낌이 안 좋으니까 그랬던 것인지, 확실치는 않다.”

에스케이가 협의 과정에서 불발돼 미수에 그쳤다면 롯데는 기수다. 롯데는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과 관련해 건설비 명목으로 70억원을 받았다. 며칠 뒤 돌려줬지만 받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롯데 반환 배경은?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을 위해) 하남 부지 매입 명목으로 받았는데 부지 매입이 지지부진했다. 그래서 최 회장한테 사업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졌으니, 돈을 돌려주는 게 낫지 않냐고 말했다. 그랬더니 최 회장이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나는 직원들에게 평소에도 우리 사업 목적과 일치하지 않는 돈은 10원도 지출하지 못한다고 몇 차례나 얘기했다. 나중에 이 말이 어떤 경로로든 전달됐을 것으로 본다. 최 회장한테. 이것도 제가 그만둔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만 해본다.”

롯데의 70억원 반환은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다. 부지 매입에 문제가 생겨서라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지만, 당시 검찰은 재단이 돈을 돌려준 지 10여일 뒤인 6월10일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인 것 또한 그 배경으로 작용하지 않았느냐 하는 시각이다.

최순실씨의 일꾼들

재단과 블루케이에서 누군가는 밤을 새우며 ‘최 회장의 뜻’을 기획했고, 누군가는 오랜 기간 최 회장을 보좌하며 ‘충성’을 증명했다. ‘더 큰 자리를 약속받은 것 같은 사람’, ‘최 회장의 눈 밖에 나 내쳐진 사람’,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는 사람’들이 케이스포츠재단과 최 회장 언저리에서 서성였다. 특히 한국체육대학 출신 3인방(고영태, 박헌영, 노승일)은 각자의 캐릭터대로 최회장의 심복 역할을 했다.

-최순실씨의 최측근으로 고영태씨가 주목받고 있다. 만난 적이 있나?

“(최씨 개인 회사인) 더블루케이 사람인 건 알았지만 정식으로 인사한 적은 없다. 블루케이 사무실에서 회의를 할 때 몇 번 본 정도다. 뻣뻣한 사람이라는 인상이었다. 직장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사람을 보면 감이 오는데, 나와는 나이도 20년 넘게 차이가 나고 공감이 될 만한 부분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소위 시니어(나이 든 사람)를 배려한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냥 운동했던 친구구나 생각했는데, 최근 기사를 보면서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됐다.”

고씨는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펜싱 금메달리스트다. 최씨 소유 더블루케이에서 상무를 했고, 최씨가 독일에 세운 페이퍼컴퍼니 더블루케이에 이사로 등재된 인물이다. 그가 운영한 가방업체 빌로밀로는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들고 다니면서 유명세를 탔다. 그는 최근 최씨와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와 함께 일한 조아무개(57) 더블루케이 전 대표는 “(고씨는) 정상적인 경우와 달리 제안을 하는 ‘을’ 입장인 우리가 ‘갑’이라는 기본적인 생각이 있었다”며 “최 회장의 지시로 한 대기업 임원을 만난 자리에서 일이 잘 안 풀리자 고씨가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당황스러운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박헌영 과장은 더블루케이와 케이스포츠재단 일을 어느 정도 비율로 맡았나?

“박 과장과 노승일 부장은 더블루케이를 (더) 자주 갔다. 매일은 아닌 거 같은데 거의 일주일에 3~4일 이상, 한 4일 정도는 가서 일했던 것 같다. 두 사람, 특히 박 과장이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이런 걸 해야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최 회장은 나에게 ‘박 과장이 낸 아이디어가 좋으니 한번 추진해보시지요’ 하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박 과장이 머리가 좋고 영리하다. 기획을 잘했다. 그래서 일을 많이 맡긴 것 같다.”

최 회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많은 일을 떠맡은 탓에 정 전 사무총장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직원도 박 과장이다. 독일에 있는 최순실씨 소유의 비덱을 앞세워 에스케이에 한 80억원(<한겨레> 10월27일치 1면), 롯데에 70억원을 요구(<한겨레> 10월28일치 1면)하는 자리에 서류를 만들어 나온 이도 박 과장이었다.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이 총출동한 더블루케이와 스위스 누슬리사의 협정체결 아이디어(<한겨레> 10월28일치 1·4면)도 박 과장의 머리에서 나왔다. ‘최 회장의 뜻’을 기획한 인물이었던 셈이다. 케이스포츠 직원인 그의 서류 작업은 주로 더블루케이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그 밖에 기억나는 인물은?

“노승일 부장의 경우 최 회장과는 오랜 관계로 보였다. 최소한 3년 이상인 것 같지만 정확히는 모르겠다. 최 회장이 일반적으로 사람을 끌어안고 포용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저와 같이 입사한 직원 가운데 나간 직원들도 있었다. 좋다고 일을 시키더니 어느 날 갑자기 내보냈다. 정동춘 이사장은 일도 열심히 하고 매사에 굉장히 긍정적이고, 회장한테 야단맞고 해도 ‘큰일 하려면 그 정도는 괜찮다’고 하기도 하고.”

하어영 방준호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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