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부양의무제', 이대로 괜찮나

2014. 3. 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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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명옥 기자]

(실제 예1)

뇌병변 장애 1급으로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인 대구의 최OO씨는 최근 주민 센터에서 정부보조금 삭감 통지서를 받았다. 삭감 이유가 기가 막혔다. 94년생 대학교 1학년 아들의 아르바이트 수입 때문이라는 것.

소식을 전해들은 최씨의 누나는 "대한민국은 참 대단한 나라다, 최저 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로 고소득(비꼬는 말임)을 올리던 내 착한 조카는 곧 아픈 아버지를 두고 대단한 나라를 지키러 군대를 간다, 군대도 안 가고 자식들 군대도 안 보내면서 경제민주화 복지국가를 외치던 정치인들은 다 어디 갔나, 그저 '삭감'란에 체크된 문서 한 장으로 생활에 곤란을 겪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상식을 지닌 사회나 공무원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노했다.

(실제 예2)

충북 청주의 조OO씨는 2003년 이혼 후 정부보조금 46만 6천 원(생계비 43만 6천 원, 장애수당 3만 원)으로 10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혼자 살았다. 조씨는 지난 달 연락을 끊고 사는 아들(40세)의 재산이 기준보다 많다는 이유로 수급자 탈락 통보를 받았다.

동사무소를 방문한 조씨는 오래 전 아들과 소식을 끊고 살았다며 구제 절차를 기다리다 지난달 12일 방안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세상을 등졌다.

(실제 예3)

경남 남해군 윤모씨(64세)는 딸들이 부양 능력이 있다고 판명되어 수급자에서 탈락했다.

무료였던 요양시설 비용 80만 원을 딸들이 부담해야 하는 압박감에 윤씨는 지난달 1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실제 예4)

울산 북구 신천동 거주 윤모(46·남)씨는 연락조차 안 되던 아버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 했다.

우울증 증세를 보이며 생활고를 비관하던 윤씨눈 지난 5일 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 놓고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긴급복지예산 대폭 삭감

함께 목숨을 끊은 세 모녀는 스스로 사회구성원의 지위를 포기한 게 아니다. 사회가 그들을 밀어냈다.

ⓒ sxc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긴급복지예산은 2013년 971억 원에서 2014년 499억 원으로 전년대비 51%가 대폭 삭감됐다. 절반이 넘게 삭감된 예산 때문에 3만 7천여 명이 부정수급자로 분류되어 수급자에서 탈락됐다. 최씨의 경우처럼 어이없고 비상식적인 이유로 수급액이 삭감되기도 했다.

수급 탈락과 삭감 여부는 대부분 부양의무자 노동능력 여부와 소득 발생 여부로 판단한다. 약자의 울타리가 되어줘야 할 가족이 '부양의무제'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덫'이 되어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부양의무제'란 수급자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등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부양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가족이 책임지고 노동능력이 없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제도이다. 이론상 합리적이고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 공동의 책임을 수급자 가족에게 전가시키는 꼼수다.

먼저 세 모녀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세 모녀 중, 어머니의 부양 의무자는 두 딸, 두 딸의 부양 의무자는 어머니가 된다. 어머니는 예순 한 살, 두 딸은 삼십 대다. 가장이던 어머니가 다치기 전까지 장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니 나이와 겉모습으로 보면 세 명 모두 노동 능력어 보인다. 실질 가장이던 어머니가 팔이 부러져 노동 능력을 잃었더라도 어머니는 부양의무자인 딸로 인해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딸은 거의 노동 능력이 없었다.

기혼에 자녀가 있는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이때는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모두가 부양의무자가 된다. 실제로 자녀가 성인이라도 부양 능력이 없는 학생이고 배우자가 알코올 중독이나 질병으로 실질적 노동능력이 없어도 부양의무자가 있는 것으로 분류돼 수급대상자가 되지 못한다. 때문에 위의 최씨 경우처럼 이제 막 성년이 된 자녀에게 아르바이트 소득이 발생하면 수급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차상위 계층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부양의무제는 단순히 나이와 물리적인 형태로 노동능력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실제와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세 모녀의 경우, 현행 복지 기준에 따르면 세 사람 모두 노동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어 서로를 부양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세 사람 모두 노동 능력이 없어 사회가 제도를 통해 보호해줘야 했다.

이제 이런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부양의무제는 폐지해야만 한다. 폐지할 수 없다면 전적이고 다각적인 방법으로 실질 부양 능력 여부를 판단해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죽음으로 내몰리는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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