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기초생활수급자 규정 '문턱' 높다

2014. 3. 1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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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송파구 세 모녀 자살로 본 실태, 복지 사각지대 없게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해야

2월 26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반지하에서 박모씨와 그의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가 현금 70만원이 든 봉투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라는 메모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남편이 죽은 후 식당일로 생계를 꾸리던 박모씨는 한 달 전 팔을 다쳐 식당일을 그만둬야 했다.

세 모녀의 자살사건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충격파는 정치권에도 미쳤다. 민주당 한정애 대변인은 국회에서 이 사건에 대해 브리핑하던 도중 눈물을 쏟기도 했다. 급기야 대통령의 발언으로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3월 4일 국무회의에서 "이분들이 기초수급자 신청을 했거나 관할 구청이나 주민센터에서 상황을 알았더라면 정부의 긴급 복지지원제도를 통해 여러 지원을 받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정말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지난 2월 임시국회와 관련해 "가장 시급했던 '복지 3법'이 처리되지 못해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세 모녀가 자살하면서 집주인에게 남긴 메모. | 경향신문

복지3법 통과돼도 세 모녀 혜택 못받아

박 대통령이 말한 복지 3법은 기초연금법, 기초생활보장법, 장애인연금법이다. 현재 복지법으로도 세 모녀가 혜택을 받을 수 없을 뿐더러 복지 3법이 통과되어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빈곤사회연대는 논평을 통해 "기초생활수급, 긴급지원 신청을 했어도 (세 모녀는 대상자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남윤인순 의원은 "(박 대통령의 발언은) 현재 복지제도의 허술함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마치 제도는 잘 되어 있는데 알려지지 않아서 문제'라는 잘못된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현 제도에서 송파구 세 모녀는 기초생활수급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세 모녀가 수급 신청을 했어도 혜택을 볼 수 없다. 현재의 기준에 의하면 송파구 세 모녀는 모두 근로능력자다.

어머니 박씨는 61세로 근로가능 연령층이다. 65세가 되어야 근로 무능력 판정을 받을 수 있다. 첫째딸의 경우 고혈압과 당뇨가 심했지만 근로능력이 일상적으로 제약되는 상태로 볼 수 없다. 또한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도 못한 큰딸이 병원의 진단서를 발급받아 적극적으로 근로능력이 없음을 증명하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둘째딸은 신용불량자로 근로무능력 사유가 되지 않는다.

정부가 정한 기준에 따르면 세 모녀의 추정소득은 180만원 정도이다. 근로능력자 1인당 최대 추정소득은 62만5000원이기 때문이다. 3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132만9118원이다. 세 모녀의 추정소득이 3인 가구 최저생계비보다 많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다.

세 모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긴급복지 지원을 받을 수도 없다. '중한 질병 또는 부상을 당한 경우'에 해당할 수 있으나 어머니인 박모씨가 팔을 다쳤기 때문에 이 경우는 중한 부상으로 보기 힘들다.

세 모녀가 수급을 받을 수 있는 복지제도는 국민연금 유족연금이 유일했다. 남윤인순 의원은 "세 모녀는 2005년 10월부터 매달 21만6330원의 유족연금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말한 복지 3법 중 이들 세 모녀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법은 기초생활보장법이다. 하지만 2월 국회에서 정부와 여당이 통과시키려고 하는 법안은 세 모녀의 혜택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새누리당 유재중 의원이 발의한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일괄적으로 지급되던 지원금을 수급자의 필요에 따라 생계·주거·의료·교육 등의 급여로 분리해 지급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야당 측은 이 법안이 박근혜 정부의 뜻을 대부분 담고 있기 때문에 '청부 법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연락 두절된 가족 때문에 수급대상 탈락

정부와 여당은 이 법안을 2월 국회에 통과시켜 올 10월부터 맞춤형 개별 급여로 전환할 계획이었지만 기초연금법을 둘러싼 여야 갈등으로 통과되지 못했다.

유재중 의원이 발의한 이 법은 지난 2월 국회 보건복지위의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됐다. 야당인 민주당은 이 맞춤형 개별 급여가 어떤 면에서는 대상자의 폭을 넓히는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 면에서는 보건복지부가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급여를 국토부·교육부 등으로 복지사업을 이관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급자들에게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측면 때문에 어정쩡한 입장을 보였다.

이 법이 그대로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송파구 세 모녀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거의 없다. 빈곤사회연대의 분석에 의하면 '세 모녀의 근로능력 평가·추정 소득이 여전히 살아 있고 그렇게 간주된 이들의 소득은 정부의 급여 선정 기준 이상이기 때문에' 여전히 지원받지 못한다.

단 중위소득 43%를 기준으로 하는 주거급여의 경우 세 가구가 살고 있는 50만원 월세를 기준으로 할 경우 매월 1만원밖에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 빈곤사회연대의 주장이다.

이것도 본인이 적극적으로 신청해야 가능한 금액이다. 빈곤사회연대는 논평을 통해 이 제도는 '기존 제도를 쪼개 질 낮은 급여를 여러 명에게 흩뿌리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시민단체는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서는 우선 기초생활수급자 규정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급신청자의 부양의무자에게 재산이 있거나 일할 능력이 있으면 기초생활 수급비를 삭감하거나 수급권을 박탈한다.

빈곤층은 약 410만명에 이른다. 이 중 약 117만명이 부양의무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여 기초생활 수급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최근 정부의 행정전산망이 강화됨으로써 가족과 오래 전부터 연락이 두절됐음에도 불구하고 수급대상자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김잔디 간사는 "사회복지사로 일할 때 어떤 분이 친자가 아닌데 호적에 잠깐 올라간 것 때문에 수급을 받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면서 "이분의 경우 해당 관청에서 친자가 아닌 것을 증명하는 유전자 검사를 해서 제출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 간사는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대상자를 발굴하고 기존 대상자를 관리하는 데에만 신경을 써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부정수급자를 색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관련해 현재 보건복지위에 계류된 법안은 모두 23개다. 이 중 남윤인순 의원이 발의해 법안소위에 상정된 개정안은 부양의무자의 조건을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선정에서 부양의무자를 1촌의 직계혈족으로 한정하고 부양의무자 규정은 보장비용 징수요건만으로 활용하고, 부양의무자를 수급권자 선정 조건에서는 제외하도록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참여연대 김잔디 간사는 "결국 문제는 복지예산"이라면서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자를 늘리려면 예산이 뒷받침돼야 가능한데 예산에 맞추다 보니 수급 탈락 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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