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이후 박근혜 정부 '재난 자본주의' 극명해져"

유인경 선임기자 입력 2014. 8. 2. 11:36 수정 2014. 8. 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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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경이 만난 사람] < 내릴 수 없는 배 > 펴낸 우석훈 박사

< 88만원 세대 > 라는 책으로 승자독식 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꼬집은 우석훈 박사. 그가 세월호 참사 100일 무렵에 책 < 내릴 수 없는 배 > 를 선보였다. 아직도 해결된 것은 거의 없다.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학생이 차가운 바닷물 속에 잠겨 있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너무 많은 사건과 사고, 억장이 무너지는 일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는 차라리 덮어버리고 싶은 페이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회는 비극을 통해 배우고, 어떤 사회는 재난을 통해 더 망가진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나라의 경제와 정치가 만난 가장 슬픈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우석훈 박사를 만나 세월호 참사의 의미는 뭔지, 그리고 내릴 수 없는 배에 태워진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는지 물었다.

사회학자도 아닌 경제학자가 왜 세월호에 관한 책을 썼습니까.

"저도 세월호 뉴스를 운전하면서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막연히 사망자가 있겠지만 그래도 구조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배를 탄 사람들의 숫자조차 제대로 집계되지 않았다,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 등등의 소식을 접하며 경제학자로서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공산주의 체제를 대표하던 구소련에서 경제가 부패하면서 전략 핵잠수함에 불량부품이 사용돼 일어난 K-19 사건처럼 이 사건도 자본주의 경제가 문제일까, 혹은 시장경제나 신자유주의가 문제인가 등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죄책감도 있었습니다. 그 배의 위험성을 알릴 수 있는 몇 번의 계기가 있었거든요. 경제학자로 배 산업에 관한 관심도 있었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내세웠던 주요 개발계획 중에 크루즈 사업이 있었는데 그 자료를 보면서 국내 페리의 위험을 알게 됐습니다. 또 오랜 친구가 암으로 병상에 있을 때 병문안을 갔더니 인천~제주 페리가 정말 재미있다며 꼭 타보라고 권했어요. 혼자 여행이 아니라 아내, 아이와 함께 갈 여행이라 꼼꼼하게 알아봤더니 정말 문제가 많아 안 탔죠. 진작 그런 위험들을 경고했어야 했다는 자책감도 컸습니다. 또 시민단체의 경우 오래된 곳은 쌍용자동차 문제 등 할 일이 너무 많아 탈진한 상태이고, 신생단체는 노하우가 없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면으로 분석하고 의미있는 작업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라도 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책을 쓰게 됐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엄청난 자료를 찾고, 집필 기간 내내 펑펑 울면서 쓸 만큼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발표를 보고 서였습니다. 배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배에 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게 너무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지적하는 언론도 없더군요. 세월호 유가족이 원하는 것은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입니다. 진상규명은 엄정한 수사를 통해 이뤄지면 되고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대체 왜 그 배에서 사고가 났을까, 왜 그 배는 탑승자 명단도 엉성하고 과적 등등 문제가 많은지를 잘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요. 안전불감증, 관피아, 유병언 가족에 관해 탓하기 전에 배에 관련한 제대로 된 내용을 알려줘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썼습니다."

< 내릴 수 없는 배 > 를 펴낸 우석훈 박사. / 이상훈 선임기자

세월호 참사의 핵심은 뭔가요.

"이 사건은 세월호에서 구조된 학생들도 강조했듯이 교통사고가 아닙니다. 재난 자본주의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대응책이 '재난 자본주의'의 작동을 극명히 보여줍니다. 재난 자본주의는 사람들이 엄청난 재앙에 놀라고 당황할 때, 그 사회 기득권 집단이 자신들이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을 강력히 전개하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전에도 '관피아' 문제를 지적하면서 대책 중 하나로 '5급 공무원 공채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습니다. 공무원 공채를 줄이고 특채를 늘리면,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하겠습니까? 부유층 자녀들이 특채로 5급 공무원이 되겠다는 얘기죠. 세월호 참사와 같은 재난에 좀 더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도 마찬가지로 '개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안전처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이걸 만드는 데만 1년 넘게 걸릴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 나머지 임기를 보내겠다고 볼 수도 있죠.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위기관리센터를 만들어서 국가 재난에 대응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여기서 했습니다. 이걸 이명박 정부 때 없애버렸어요. 사실 세월호 참사 때도 전 국민이 목격한 것처럼, 대형 참사가 터지면 구조 가능한 시간이 매우 짧습니다. 1분, 1초가 너무 중요하거든요. '바다에 뛰어들어서 구조하라'는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최고권력자밖에 없어요. 다른 사람은 돈과 목숨이 달린 일이라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대통령이 바로 의사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데, 왜 이걸 없애고 국가안전처를 만들겠다고 합니까? 결국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떠안기 싫다는 뜻 아닌가요?"

외국에서도 대형 사건이 일어나면 조직개편을 하지 않나요.

"미국도 9·11 테러 이후에 국토안전부에서 재난에 대응하는 쪽으로 행정조직을 개편했다가 2005년 뉴올리언즈를 강타한 태풍 카트리나 이후 다시 백악관이 재난 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어떤 사건이 나면 조직을 만들거나 기념건물부터 만들려는 안일한 생각이 계속 사고들을 일으키는 셈입니다."

우리나라 배, 선박업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사고가 난 근본 원인은 선박산업의 문제입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연안여객의 이윤율이 매우 떨어졌습니다. 우리나라는 고속철도(KTX)와 저가항공이 비슷한 시기에 다 도입됐습니다. 여기에 고유가까지 겹쳤습니다. 승객은 줄고 비용은 늘고, 이윤이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결했느냐 하면, 이명박 정부에서 규제완화라는 명분하에 선박 연령을 늘려주는 쪽으로 해결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선박 제한 연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렸고, 세월호는 일본에서 중고 선박을 사다가 증축한 배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은 우리가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되기 전에는 못 살아도 새 배를 탔거든요. 그런데 이전보다 훨씬 잘 살게 됐는데, 일본이 타다가 버린 배를 타는 나라가 됐어요. 중국도 선박 제한 연령이 28년입니다. 조금만 더 가면 중국이 타다 버린 배를 타는 나라가 되게 생겼어요. 더욱 더 가슴 아픈 것은 단원고 학생들은 배를 탄 것이 아니라, 어른들에 의해 배에 태워져 수장된 것입니다."

고등학생들이 배에 태워지다니요. 어떤 의미인가요.

"단원고는 선박여행을 택한 이유 중 하나로 '저렴한 비용'을 댔습니다. 뱃삯이 비행기삯보다 싸고 숙박비도 하루치를 아낄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납득이 안 됐어요. 저가항공이 널려 있고 대규모 인원이라 숙박비도 얼마든지 줄일 수 있거든요. 제가 알아보니 세월호 비용이 절대 싸지가 않아요. 학생들도 총 33만원의 비용을 지불했을 겁니다. 왜 그랬을까란 의문이 들어 다른 고려사항이 없었는지를 뒤졌고, 그러다 공문을 손에 넣었습니다. 자료를 찾다가 2011년 부산해양항만청과 제주해양관리단이 '페리 산업이 어려우니 수학여행을 보내 달라'고 교육당국 등에 협조공문을 보낸 것을 확인했습니다. 세월호 운임이 편도 7만1000원으로 저가항공과 비교하면 결코 싸지 않다는 점도 확인했습니다. 수학여행 비용 일부가 페리 산업의 생존에 보태진 것이고 국가가 교육이란 이름으로 학생들을 동원해 업계의 이익을 보장해준 셈이죠. 집권 후 '4대강 사업'으로 축소되긴 했지만,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에서 선박업계의 '수익성 보장'은 더 중요한 문제로 여겨졌을지 모릅니다. 돈을 벌어 교육에 쓴다는 상식이 아닌, 교육을 돈 버는 데 쓴다는 비상식의 상징인 사건입니다. 학생들에게 페리 수학여행을 독려한 데는 교육부도 책임을 면키 어렵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교육부 장관을 벌주기는커녕 부총리로 격상시킨다니…."

< 내릴 수 없는 배 > 를 펴낸 우석훈 박사. / 이상훈 선임기자

세월호 참사를 통해 양극화 문제를 제기했던데요.

"배와 비행기의 문제에서도 양극화가 확인되더군요. 인천공항은 세계 공항 서비스 평가에서 9년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비행기와 연안 선박의 '안전'을 비교해보면 우리 사회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양극화'의 또 다른 측면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배경뿐 아니라 참사 이후로도 '양극화'는 계속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제기된 의문 중 하나가 '서울 강남 고등학교 학생들이 피해자였다면 구조작업이 이렇게 엉망으로 진행됐을까'입니다. 괜한 억측이 아닙니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수학여행 실태를 좀 들여다보니 서울 강남지역의 학교들은 비행기를 이용하더라구요. 또 강남지역에서 최근 일어난 재난이 2011년 우면산 산사태였습니다. 당시 인근 호텔이 피해자들에게 빵을 무료로 주고 방도 최저가로 제공해줬어요. 세월호 유가족들은 어떤가요. 체육관에서 난민처럼 지냈습니다. 팽목항에서 유가족들이 수용됐던 진도체육관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 국립 남도국악원이 있어요. 숙박시설이 갖춰진 이 곳에 누가 묵었나요? 현지 파견된 공무원, 경찰, 일부 기자들이 묵었습니다. 이게 양극화의 단면이 아닌가요."

세월호 같은 참사가 재발되지 않으려면 어떤 방안이 있을까요. 벌써 인천~제주 간 항로가 폐쇄돼 물류난이 심각하다는 기사가 나오더군요.

"우리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가 가장 슬프게 만난' 사건인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무슨 생각으로 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박근혜 대통령 말대로 '국가개조'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저는 그 첫 단추로 '연안여객의 완전공영제'를 제안합니다. 스코틀랜드, 캐나다 등이 '안전'을 위해 연안여객 공영제를 도입한 나라들이죠. 연안여객 산업규모를 보니까 선박회사의 부채까지 포함하면 1조원, 부채를 제하면 4000억원 정도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현재 운항이 중단된 세월호 노선인 인천에서 제주만 시범적으로 운행한다고 하면, 연간 50억원 정도면 됩니다. 이 노선은 청해진이 독점적으로 운항하던 것입니다. 여긴 현재 운항하고 있는 회사가 없으니, 관련된 4개 지자체(서울, 경기, 인천, 제주)가 같이 운항하면 어떨까요. 여기에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하면, 적어도 배의 '안전' 문제는 개선될 것 같습니다."

여객선의 '공영제'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민영화' 문제와 정확히 반대로 가자는 주장인데요.

"세월호 참사는 민간의 실패를 보여줍니다. 선박과 관련해 정부가 관리하던 영역을 민간으로 떠넘길 경우 얼마나 위험한 일이 벌어지는지, '재난 자본주의' 시스템이 작동해 만들어진 구조가 어떻게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지 보여준 셈이죠. 세월호 참사를 해결하고 치유하는 문제는 매우 장기적 과제입니다. 그 시작은 '내릴 수 없는 배'에 태워진 우리 모두가 이 위험한 배를 정박하고 내리려는 노력을 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부모 입장에서 '이제 다시 우리 아이들을 배에 태워도 좋다'는 마음이 들 때까지 정부, 선박업계, 심지어 교육기관까지 배에 관련한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유병언씨는 사망했지만 그 자녀들로부터 환수한 돈으로 유가족 보상이나 연안여객 공영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건 배의 안전이나 선박사업과는 전혀 무관한 문제입니다. 섬에서 사는 분들이나 어떤 이유건 반드시 배를 타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도 안전하게 배를 탈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 내릴 수 없는 배에 탔다는 이 불안감부터 해소해야 합니다. 저는 유병언씨 자녀들을 공개 수배한 포스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 정도 돈을 유용했다고 전단지가 만들어진다면, 우리나라 재벌 2·3세들은 모두 벽보에 사진이 도배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카뮈의 < 페스트 > 로 시작되는 이 책은 우리 선박업만이 아니라 재난 자본주의와 관련된 사안들을 의미있으면서도 쉽게 풀이했다. 그런데 정작 우 박사의 다른 책들에 비해 잘 안 팔린단다. 말로는 "세월호, 절대 안 잊겠다"를 강조하지만 정작 우리는 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게 아닐까. 외면하다가 더 큰 상처를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닌데 말이다.

<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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