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개를 휴가지에 버리고 갔다

강릉·함규원 인턴 기자 2014. 8. 3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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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이 지난 강릉은 한산했다. 비가 오는 스산한 날씨 탓에 해수욕을 즐기는 피서객은 드물었다. 지난 7월 해수욕장 개장 이후 22만 강릉 인구의 30배에 이르는 피서객 670만명이 휴가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사람들이 떠난 휴가지에 남은 생명들이 있다. 주인 잃은 개·고양이 같은 유기 동물이다.

8월18일, 굽이진 산길을 달려 강릉유기동물보호소를 찾았다. 전국의 유기동물보호소는 총 361곳. 강릉유기동물보호소 역시 인근 지역의 유기 동물을 돌보는 여느 보호소 중 한 곳이지만, 여름철 이곳에 모인 동물들은 조금 더 특별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피서지에 버려졌다는 공통점이다. 1320㎡(400평) 규모의 보호소는 피서지에 버려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반려 동물 50여 마리로 북적였다. 실내 견사 앞, 발견 당시 매고 왔던 알록달록한 개 목줄들이 주인을 잃고 주르르 걸려 있었다.

강릉유기동물보호소는 6월에 49마리, 7월에 56마리의 유기 동물을 들였다. 지난해 평균 20여 마리, 올해 상반기 평균 30여 마리에 견주면 크게 늘었다. 기자가 찾아간 날은 적정 마릿수 40마리를 훌쩍 넘겨 56마리(고양이, 토끼 1마리 포함)를 보호하고 있었다. 공간이 부족한 까닭에 세 마리 정도 들어가기 적당한 가로 3m, 세로 2m 견사에 대여섯 마리가 모여 있었다. 보호소의 일손은 상근 직원 두 사람뿐. 유기 동물 접수와 관리를 모두 담당하는 이들은 남들 휴가일 때 더욱 바쁘다.

ⓒ시사IN 이명익

강릉유기동물보호소에 있는 유기견들.

광복절이 낀 '황금연휴'가 끝난 이날은 10분에 한 번꼴로 전화벨이 울렸다. 많게는 하루에 60통 정도 전화를 받는다. 강릉시청에서 유기견 두 마리를 보호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이나 119 구조대가 구조한 유기 동물은 주로 시청 당직실에 옮겨져 보관된다. 오전 10시께 시청에 도착한 강릉유기동물보호소 정병윤 팀장(38)은 교통사고로 외상이 있는 작은 개의 상태부터 살폈다. 밤새 비를 흠뻑 맞아 앙상한 몸이 드러난 잡종견은 제대로 걷지 못하면서도 으르렁거리며 저항했다. 같은 날 구조된 20kg 넘는 대형 잡종견은 의외로 얌전히 케이지(우리)에 들어갔다. 시청 직원은 "엄청 순한데, 이런 개를 왜 버렸지?"라고 중얼거렸다.

버려진 개들은 공통점이 있다. 정 팀장은 "절반 이상이 잡종이다. 늙고 병들고 털이 많이 빠지거나, 지나치게 사납고 덩치가 커서 감당하기 힘든 개들이다"라고 말했다. 주로 CCTV나 블랙박스가 없는 해변, 계곡, 외진 길가에 버려지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 버려졌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정성식 소장(50)은 "집 근처에 버리면 다시 돌아올 수도 있고 눈에 밟히니까 사람들이 반려 동물을 버리기 위해 멀리 나오는 것 같다. 놀이동산에 애들 버리는 심리와 비슷할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잘 놀아줬다는 것으로 죄책감을 줄이려는…"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유기 동물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전산 등록

휴가철에 버려진 개들은 동물병원에서 간단한 검사를 받은 뒤 다른 유기 동물과 마찬가지로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등록된다. 이날 시청에서 데려온 유기견 두 마리는 모두 심장사상충 1기 진단을 받았다. 심장사상충은 심장 안에 사는 기생충이 혈관을 막는 병으로 치사율이 높다. 두 마리는 당장 증상이 심각하지 않아서 특별한 치료 없이 바로 보호소로 보내졌다. 새 주인을 만나기 전까지, 이 동물들이 다시 보호소 밖을 나가기는 쉽지 않다.

ⓒ시사IN 이명익

강릉유기동물보호소의 정성식 소장이 새로 들어온 유기견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있다.

버려진 개들은 낯선 사람이 오면 경계하면서도, 새 주인을 만나고 싶어 부산을 떤다. 낮 12시쯤 강릉시에 사는 전찬일(33)·이현정씨(29) 부부가 유기견을 입양하러 보호소를 찾았다. 배고플 때 짖는 소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개 짖는 소리가 커졌다. 저마다 시선을 끌기 위해 철장 사이로 머리를 내밀거나 꼬리를 흔들며 부부의 손길을 기다렸다.

부부는 인터넷을 통해 보호 중인 유기 동물 목록을 확인할 수 있는 동물보호관리시스템(http://www.animal.go.kr)에서 한 살짜리 몰티즈를 찜해놓고 보호소를 찾았지만, "몰티즈는 분리불안이 심해서 키우기 어려울 수 있다"라는 정 팀장의 조언을 듣고 이들은 4개월 된 잡종견을 택했다. 장염도 이겨낸 건강한 녀석이다. 흰 수건을 두르고 부부의 품에 아기처럼 폭 안긴 강아지는 자기 자리를 찾았다는 듯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보호소 경비견 삼식이를 제외한 다른 유기견들은 이름이 없다. 정 팀장은 "이름을 붙여주면 살리고 싶어져서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유기 동물 중 절반은 1년 안에 안락사하거나 자연사로 생을 마감했다. 10.3%만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갔고, 28.1%가 새 주인을 만났다. 동물보호법에 따라 공고한 지 10일이 지나도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유기 동물은 소유권이 지자체로 넘어가 안락사시킬 수 있다. 정 소장은 "올해 우리 보호소는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전염병을 앓는 등 회생할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만 안락사를 시행했다. 하지만 휴가 온 피서객이 버린 유기견이 지금처럼 계속 쏟아져 들어오면, 앞으로는 장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반려 동물을 주인에게 쉽게 돌려주기 위해 동물등록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실적이 저조할 뿐 아니라 외장형 장치나 인식표를 떼어내면 주인을 알기 어렵다. 서울호서전문학교 애완동물학부 류춘열 교수는 "반려 동물에 주인 정보가 담긴 내장형 마이크로칩을 의무화하면, 휴가지에 버려지는 개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릉시청의 한 관계자는 "외지인이 반려 동물을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일부러 버리고 떠나기 때문에 사람들 개개인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특별한 대책을 세우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김나라 간사는 "반려 동물을 피서지에 유기하는 건 동물 처지에서는 생전 와보지 못한 낯선 외지에 버려진다는 점에서 더 잔인한 일 같다. 반려 동물을 쉽게 사고 버리는 소비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자리 잡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

전찬일·이현정 부부(오른쪽)는 강릉유기동물보호소에서 유기견을 입양했다.

강릉·함규원 인턴 기자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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