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로 전락한 학교비정규직..운전기사부터 밥순이까지

정봄 기자 2015. 8. 23.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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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괴롭힘 '톱' 교육공무직의 비애.."내부고발 보호장치 절실"

[머니투데이 정봄 기자] [직장 괴롭힘 '톱' 교육공무직의 비애…"내부고발 보호장치 절실"]

"학교라는 곳이 굉장히 폐쇄적이라 마치 인도의 카스트제도가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아요. 계급사회죠. 비정규직은 그 중 제일 하층민이구요."

직장내 괴롭힘 문제가 심상치 않게 불거져 나오고 있다. 지난 6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국내 업종별 직장 괴롭힘 실태조사'에 따르면 교육 공무직 중 25.3%가 직장내 괴롭힘을 당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교육, 일반서비스, 금융, 공공행정 등 8개 분야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에 머니투데이 모두다인재는 이달 초 경기도 내 학교 비정규직(교육 공무직) 5명과 간담회를 갖고 학교 내 괴롭힘에 대한 실태를 들어봤다.

간담회에는 최현정(가명·중학교 과학실무사), 이지혜(가명·중학교 행정실무사), 오보은(가명·중학교 행정실무사), 정가람(가명·중학교 사서), 한명희(가명·초등학교 행정실무사) 등이 참여했다.

◇차량 기사에서부터 밥 차리기까지…"노예로 산다"

교육공무직들의 사적 업무(차 심부름, 접대 등)에 대한 불만은 극에 달해 있었다. 교사의 행정업무 절감 정책을 위해 행정실무사, 과학실무사 등이 배정됐지만 실제 배정된 업무 외에 '곁가지'로 시키는 일이 너무 많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여영국 경남도의원이 지난 13일 발표한 '교무행정업무전담팀 운영 관련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과중한 업무 1순위가 '사적 심부름'이었다.

최현정(이하 최) : (정규직 교사가) 교육청으로 출장을 가야 하니 태워달라고 하더군요. '과학 수업이 있어서 못 갑니다'라고 했더니 (수업은) 본인이 알아서 할 테니 무조건 가자는 거예요. 그래서 출장을 갈 때마다 제 차로 운전해서 '모셔' 갔어요. 교육청에서 업무 보고 있는 동안, 저는 밑에서 계속 대기하고 있어야 하죠. 그러고 본인은 출장비를 받는데, 저는 출장비 한 푼 안 주더라구요.

한명희(이하 한) : 교장, 교감들이 손님 접대 시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 별별 사람들 접대를 다 하더라구요. 저는 행정실무사이고 접대는 업무분장에도 안 들어가 있는데 말이죠.

최 : 봄에는 물에 벚꽃을 띄우고, 가을에는 단풍을 띄워요. 별의 별 플레이팅(요리 장식)을 다해서 접대하도록 해요. 특히 여성 교장이 심한 경우가 많지요. 일반 교사들도 커피 심부름 시키는 건 똑같은데, 제가 자리에 없으면 방송까지 해서 불러 커피를 타오라고 시키더라구요.

다른 교육공무직들도 모두 공감했다. 업무 외의 차 심부름은 그들에게는 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최 : 방학 때마다 밥을 지어서 교장실까지 갖다 바쳐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어요. 쌀 씻고 밥솥에 올려서 매일 만들어 바치는 거죠. 방학 때만 되면 행정실에 밥솥이 늘 나와 있어요.

한: 자기 아들 결혼을 했는데 감사 편지를 써야 한다고 출력을 해달라고 해서 200장인가 해서 갖다 줬어요. 그랬더니 접는 방법을 알려주고 주소까지 주면서 다 출력해 잘라서 붙이라는 거에요.

오보은(이하 오) : 우리도 (감사 편지 접기 등) 많이 했어요. 앵두가 열리면 교장 선생님이 해마다 과실주를 담아서 갖다 달라고 해요. 봄에는 매실액기스를 담고, 가을에는 유자차를 담아야 하죠.

최: 우리를 학교의 노비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주인이 시키는 건 무조건 해야 하는 거죠. 과학실무사인데 화장실 청소까지 시키더군요.

이지혜 : 1, 2년 전에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었어요. 외부 연수를 떠났는데 부장급 교사가 숙소까지 따라와서 뒤에서 끌어 안더라구요. 교사들이 그걸 봤는데도 아무도 대처를 안 했습니다. 직장내 성희롱이 가장 약한 사람에게 발생한다는 말을 실감했어요.

◇대가를 바라지 말라는 학교들

다양한 교육 프로젝트 운영에 교육공무직들도 동원된다. 하지만 성과급 제도가 운영되는 교사들과 달리, 교육공무직에게 떨어지는 '수고비'는 전무하다.

정가람(이하 정) : 장독대 사업이라는 것을 최근 하고 있어요. 장독대가 무엇인지 아이들에게 알려준다는 취지죠. 그런데 장독대 사업이라는 걸 만들어 놓기만 했지, 누가 어떻게 담당할 것인지는 전혀 정하지 않은 겁니다. 학생들이 배우는 거라면 교사나 다른 담당자가 해야 하는 업무인데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실무사들에게 넘어가요. 별도의 보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죠. 그것 때문에 겨울만 되면 김장을 담그고 교장 자택 김장까지 해야 해요.

최: 열심히 일하면 대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는 거죠.

정: 상여금이 거의 없어요. 최근에는 명절 휴가비가 일부 나오지만 예전에는 교사들은 받아도 교육공무직은 고작해야 식용유 같은 것을 받을 뿐이었죠. 식비도 아직 못받고 있는 비정규직들이 수두룩합니다.

◇개선해 달라는 요구에 돌아온 것은 '왕따 처우'

최: 어떤 실장을 만나느냐에 따라 문제 상황에 따른 대처 방안도 달라요. 점점 행정실장들의 진급이 다른 직종보다 빨라지고 있어요. 경력은 기껏해야 6년 정도로, 학교 관리자급인 교장, 교감을 상대할 수가 없죠.

오: 특수 교육지도사 선생님 한 분이 계셨는데, 방과후 시간 근무에 대한 시급을 쳐달라고 교장에게 요청한 적이 있었답니다. 다른 교사들은 2만5000원을 받는 강사료를 본인은 시급 6170원만이라도 줬으면 좋겠다고 한 것인데, 그쪽에서 거부를 했어요. 그 선생님이 본인 업무에 대한 일만 하겠다고 대응하자, 1년째 아무 업무도 안 준다고 하네요. 유령 인간처럼 학교만 다니는 거죠.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업무가 늘어나니 조직에서 열외시키고 싫어하게 됐고요.

정: 교육청에서 내빈 접대, 허드렛일 같은 걸 교육공무직에게 시키지 말라고 공문이 내려 왔어요. 하지만 학교 측에서는 콧방귀도 안뀌죠. 잘 되고 있는지, 안 되는지 거짓말로 보고를 하면 알 수가 없습니다. 내부고발자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제도개선이 필요해요.

정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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