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자영업자가 봉인 세상, '헬한국' / 이의진

2015. 8. 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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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홍대, 이태원, 연남동, 서촌, 상수동 등은 요즘 뜨는 동네, 즉 '핫플레이스'로 지칭된다. 각종 음식점, 커피숍, 소품가게 등 다양하고 개성 있는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동네상권이 형성된 곳이다. 주말 이 지역은 사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골목골목을 메우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손님들이 많으면 가게 주인들은 많은 돈을 벌어 행복한 비명을 지를까?

현실은 정반대다. 뜨는 동네 자영업자들은 장사가 잘돼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치솟는 임대료 때문에 절망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 다른 지역 상권의 자영업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필자는 2011년에 카페를 창업했으나 작년에 폐업을 했다. 실제 자영업자로서 살아보니 임대료뿐만 아니라 각종 세금, 재료비, 인건비까지, 3000원짜리 커피로는 감당이 안 됐다. 처음에는 그럴듯하게 매출이 나오기는 했으나, 카페를 차리고 불과 4~5개월 만에 주변에 카페가 4개가 더 생겼다.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손님이 없는 날에는 겨우 15잔을 팔아보기도 했다. 나중에는 알바 없이 하루 12시간 이상을 혼자서 카페 운영을 했다. 그래도 수중에 들어오는 소득은 직장생활을 할 때의 임금보다도 못한 수준이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분기, 한국 자영업자의 수는 546만명이다. 그중에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397만명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업주 한명이 모든 장사를 책임지고 있는 형태일 것이며, 실제 소득은 저소득일 것이다. 게다가 노동시간은 12시간을 넘기기 일쑤이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다.

직원을 두고 있는 가게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지인 중 홍대에서 카페를 운영했던 분이 '월 임대료가 500만원이고, 직원들 임금도 줘야 하는데 한달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무섭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월 임대료만 500만원이라니 아무리 유동인구가 많은 홍대라지만 도대체 커피를 몇 잔이나 팔아야 임대료를 낼 수 있다는 것인지 놀라워했던 적이 있다.

이렇듯 소위 '뜨는 동네'에서 장사를 하는 영세업자들은 치솟는 임대료에 등골이 휘고, 점점 밀고 들어오는 대형 프랜차이즈들 때문에 더욱 설 곳이 없어지는 상황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은 재개발, 재건축을 이유로 가게를 비워달라고 하는 건물주들의 통보다. 가게가 잘되면 계약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재계약이 아니라 건물주의 자녀가 가게를 오픈할 거라며 자리를 비워달라고 하는 경우까지 있다.

우리나라에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있다. 그동안 권리금은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어서 위와 같은 상황에서 거리로 나앉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올해 5월에 법 개정을 통해 권리금 회수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되었다. 하지만 백화점, 복합쇼핑몰 등 대규모(면적 3000㎡ 이상) 점포 또는 준대규모 점포 일부를 예외로 규정해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장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서민 임차인이 대다수인 전통시장 상가가 배제되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일본은 법을 통해 계약 때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외에는 계약 해지를 할 수 없도록 한다. 또 계약기간이 끝나도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철거도 건축물 노후화로 인한 경우로 한정한다. 법원은 사유가 정당한지, 건물주가 임차인에게 영업 손실에 적절한 보상을 하는지를 심사한다. 영국과 프랑스도 건물주의 사정으로 계약을 갱신하지 못하게 되면 임차인에게 고액의 보상금을 줘야 한다. 임대료를 올릴 때도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이제 내년 4월이면 총선이다. 총선 때마다 각 후보들의 공약으로 뉴타운을 내세움으로써 재개발, 재건축이 난무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 가운데 최전선에서 지옥을 맛보는 것은 다름 아닌 영세업자들이다. 우리는 용산참사를 통해 그 실상을 똑똑히 보았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심각해져 가는 이런 상황에서 임차인을 보호하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제대로 된 법이 제도화되어야 하며, 임차인들의 목소리를 담아 의정활동을 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당선되길 바란다. 비례대표 의원 취지가 각 분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그 가운데 약 550만명의 소상공인들을 대변해줄 수 있는 몇 명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의진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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