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한창인데, 언제 잘릴지 살얼음판" 서러운 50대

신희은 기자 2015. 9. 14.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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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대한민국 50대-①]조기퇴직에 '소득절벽', 임금피크제는 그림의 떡.. 일용직·영세자영업 몰려

[머니투데이 신희은 기자] [편집자주] 100세 시대, 직장인 대부분은 50대 초중반에 퇴사를 강요받고 있다.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조기 퇴직은 자녀의 취업난과 함께 가계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퇴직연금을 받기까지 10여년 이상 남은 시기, 생계를 위해 자영업 창업에 나서지만 그마저도 수년 내 폐업할 확률이 높다. 흔들리는 50대의 힘겨운 삶을 들여다보고 남은 50년을 준비할 방법을 모색해본다.

[[위기의 대한민국 50대-①]조기퇴직에 '소득절벽', 임금피크제는 그림의 떡… 일용직·영세자영업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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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부장으로 근무하는 박모씨(54)는 요즘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입사 후 승승장구하며 일찌감치 임원이 된 동기는 올해 옷을 벗었다. 박 씨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삐걱하기라도 하면 언제 책임지고 책상을 빼야 할지 모른다.

박씨는 "경기도 어렵고 회사도 뒤숭숭해 언제 무슨 꼬투리를 잡아 대기발령을 내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라며 "50대 관리자급이 점점 사라지는데 어디 재취업했다는 얘기는 거의 못 들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박 씨의 가장 큰 바람은 첫째 아들(27)이 취업하고 둘째 딸(21)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몇 년 만이라도 더 일하는 것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서울시내 30평대 아파트 1채, 중형차 1대가 전부인 박씨가 퇴직하게 되면 연금이 나오는 65세까지 당장 네 식구가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

박씨는 "자식들이 자리 잡으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회사에선 하루하루 눈치가 보인다"며 "집에서도 아들의 취업 얘기를 물어보면 잔소리한다고 할까봐 혼자 속태우다 담배만 는다"고 털어놨다.

#중견기업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최근 퇴직한 이모씨(52)는 중·고등학생 자녀 둘과 아내, 네 식구의 생계를 위해 지난해 서울 종로의 동네 어귀에 작은 커피숍을 열었다. 다니던 회사는 비교적 탄탄했지만 40대 이후부터 제때 승진을 못하면 한직으로 밀려났다 퇴사하는 수순을 밟았다. 버틸 만큼 버텼지만 텅 빈 책상에 일거리조차 주지 않는 현실에 이씨도 결국 두 손을 들었다.

당장 생활비가 끊겼지만 아내도 20년 넘게 전업주부였던 터라, 부부는 커피 창업교육을 받고 퇴직금에 대출을 보태 창업에 나섰다. 자본이 부족해 동네주민을 상대로 연 작은 커피숍은 임대료와 대출원리금을 갚고 나면 한달 벌이가 150만원 남짓. 그나마도 주변에 커피숍들이 계속 들어서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이씨는 "연구직은 40대부터 물갈이가 시작되는 직장이 대부분"이라며 "아이들은 한창 클 때인데 50대에 퇴직해 제대로 된 직장에 재취업하긴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숨을 쉬었다.

대한민국 50대가 흔들리고 있다. 평균 퇴직 연령 50대 초반,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50대가 '소득절벽'이라는 경제적 고통에 직면하고 있다. 이들에게 정년을 연장하는 '임금피크제'는 그림의 떡이다.

자녀 교육과 노부모 부양에 번 돈을 쏟아 붓느라 노후 준비는 부실한데 취업난을 겪는 자녀를 대신해 가장 노릇은 이어가야 한다. 하지만 냉혹한 재취업 시장에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자리는 그동안의 경력과 무관한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 혹은 치킨집·커피숍 등 영세 자영업뿐이다. 가정에서의 소외와 자존감 상실 등 심리적 문제도 심각하다.

◇베이비부머 10명 중 6명 "은퇴준비 못했다"...대출받아 창업해도 생존율 '16.4%'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와 메트라이프생명이 4048명의 베이비부머를 2010년부터 추적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6명(61.1%)이 경제적으로 은퇴 준비가 전혀 안 돼 있거나 미흡하다고 답했다. 저축 또는 투자계획에 다소 차질이 있다는 응답도 15.5%에 달했다.

평균 빚은 4567만원으로 상당수가 주택구입 관련 부채를 지고 있다. 가장 비중이 높은 지출은 자녀교육비(33.5%)로 조사됐다. 건강 상태는 신체와 정신 모두 좋지 않은 '고위험집단'이 2010년 8.4%에서 12.9%로 4.5%p 증가했다.

퇴직금도 '남은 50년'을 위한 종잣돈으로 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전체 사업장 퇴직자의 1인당 평균 퇴직금은 1000만원 안팎이다. 전체 퇴직 근로자 10명 중 8명(84.7%)은 퇴직급여가 1000만원에도 못 미쳤고, 퇴직금이 1억원을 초과하는 근로자는 100명 중 1명(1.4%)에 불과했다. 특히, 50대 퇴직자 33만여명의 1인당 평균퇴직금은 2090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들 50대는 부족한 퇴직금을 대출로 메워 생계형 창업에 뛰어들고 수년 내 폐업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6월말 기준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222조904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98조5056억원보다 12.3% 늘었다. 특히 50대의 대출잔액이 82조4470억원으로 전체의 39.8%에 육박했다. 하지만 최근 10년간(2004년~2013년) 국세청 창업·폐업 현황을 토대로 추정한 자영업자 생존율은 16.4%에 불과했다.

서울의 한 금융회사에 종사하는 김모씨(50)는 "최근 회사에서 1963년생 전후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지만 불경기에 나가서 창업을 해봐야 오래가지 못할 게 뻔하지 않느냐.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초조해 지인에게 소개받은 병원에 다니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50대의 퇴직 후 생계와 심리적 안정을 위한 체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베이비부머 세대 퇴직은 앞당겨지고 자녀 세대 청년층의 취업은 늦어지면서 50대 장년층이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며 "임금피크제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50대 상당수가 영세 자영업, 임시·일용직이 아닌 만족스런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희은 기자 gorg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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