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끝까지 싸우세요 제자들이 있잖아요"

심재철 2015. 12. 2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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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성동학교에서 쫓겨난 기유정, 마대호 두 교사 이야기

[오마이뉴스심재철 기자]

 수화로 진행을 맡은 제자의 손짓에 활짝 웃으며 답하는 마대호, 기유정 교사
ⓒ 심재철
촛불처럼 사람들이 따뜻하게 모여들었다. 그런데 조용했다. 간혹 구호를 외치기도 했지만 그것도 수화가 먼저였다. 24년이나 교사로 일한 나는 '학교'라는 낱말을 수화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처음 알았다. 두 손을 펴서 손끝이 위로, 손등이 밖으로 향하게 한 다음, 얼굴 앞에 세워 한 번 당기는 동작이었다. 부끄럽기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인천 부평구에 있는 성동학교(청각, 언어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는 특수학교) 앞에서 23일 오후 6시부터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53일 전 이 학교에서 억울하게 쫓겨난 기유정, 마대호 선생님의 복직을 소리없이 외치기 위해서였다.

 제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수화로 전하는 마대호 교사
ⓒ 심재철
21년이나 이 아이들 곁에서 웃고 울었던 기유정 교사와 10년의 청춘을 학생들과 함께 보낸 마대호 교사는 지난 10월 31일 학교로부터 일방적인 파면 통보를 받고 더 이상 교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가슴 아파하는 제자들과 연대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두 교사의 교단 복귀를 간절히 바라는 촛불을 든 것이다.

수 년 전부터 성동학교의 한 교사가 일으킨 문제(학생을 상대로 한 재물 손괴 및 강제 추행)와 학교 운영 비리에 대한 학부모의 문제 제기를 바탕으로 당시 인천시의회 교육위원회 노현경 (전)의원이 특별감사를 청구하였고 이에 따라 인천시교육청의 특별 감사와 검찰의 기소가 이어진 바 있다.

이후 '기관 경고, 교장-교감 경고, 시정 조치, 일부 무혐의' 등으로 비교적 가볍게 볼 수 있는 행정 조치가 내려졌지만 학교 재단(사회복지법인 성원)에서는 이를 반성하고 자정의 기회로 삼기보다는 내부 고발자를 찾겠다고 하면서 두 교사를 허위 사실 유포 등의 이유를 들어 파면 징계하기에 이르렀다.

두 교사와 전교조 인천지부,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등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징계 만류와 철회를 요청했지만 학교 측은 대답이 없는 상태다.

 제자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주는 기유정 교사
ⓒ 심재철
"기유정 선생님, 마대호 선생님 끝까지 싸우세요. 저희가 선생님 편이에요. 힘내세요."

촛불 문화제가 시작하기 직전에 두 선생님의 제자들로 보이는 학생들 여럿이 모여들어 날바닥에 꿇어앉아 뭔가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두 선생님을 향한 응원의 말들이 따뜻하게 담긴 것이다.

"마대호샘, 기유정샘 ★ 담임 선생님 편입니다. 화이팅! 포기하지 마시고요. 영원히!!"
"마대호 선생님, 기유정 성생님. 우리들은 언제나 선생님 곁에 있습니다. 힘내세요!!"

이 문화제는 시작부터 끝까지 두 선생님과 제자들이 이끌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시민사회단체 대표자 소개나 투쟁사, 연대사도 없었다. 전교조 인천지부장 출신의 박홍순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장도 차도로 내려와서 보행자들의 안전 보행을 도와줄 뿐이었다. 오롯이 두 선생님과 그 제자들이 꾸민 자리인 셈이다.

 [기다립니다]라는 책을 들고 나와 제자들과 수화로 소통하는 기유정 교사
ⓒ 심재철
마대호 교사는 이렇게 많은 제자들이 모여줄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듯 감사의 뜻을 손짓말과 입말로 동시에 전했다.

기유정 교사는 왼손에 <나는 기다립니다>라는 책을 들고 나와서 제자들과의 수업 기억을 떠올렸다. "선생님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한 제자가 작은 소리로 "희망!"이라고 대답했다. 이들이 여기에 모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기유정 교사도 제자들의 뜨거운 응원에 "여러분 곁으로 반드시 돌아가는 그 날을 기다립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졸업한 제자들과 현재 재학중인 학생들의 편지와 응원 메시지가 수화로 펼쳐졌다. 참가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숨죽이고 지켜보면서 마음으로 그 소리를 들었다. 두 달째 월급도 없이 버티고 있는 두 교사가 제자들을 위해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줄 때는 박수조차 칠 수 없었다.

문화제 끝으로 기유정 교사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는 노래를 수화로 이끌었다. 손가락, 손바닥, 손등, 주먹, 팔 모양으로 전해지는 노랫말 하나하나가 더 똑똑하게 가슴에 와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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