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전직 비정규직 지회장의 쓸쓸한 죽음

2016. 1. 20.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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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1시40분께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한 고시텔에서 미라처럼 말라가고 있는 주검이 발견됐다.

경남 진해경찰서 관계자는 20일 "고시텔 업주가 시설 소방점검을 하던 도중 방 안에 엎드려 숨져 있는 이씨를 발견했다. 주검은 미라처럼 말라가고 있었으며, 외부 침입이나 자살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 이후 이씨를 목격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점으로 미뤄, 이씨가 혼자 지내다 병사 또는 돌연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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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동료 복직시키고 해고 수용
4년 홀로 막노동 전전하다
고시텔서 숨진 지 두달만에 발견

지난 16일 오후 1시40분께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한 고시텔에서 미라처럼 말라가고 있는 주검이 발견됐다. 경찰은 부검을 통해 두달 전인 지난해 11월 중순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2011년 롯데백화점 창원점 비정규직지회 지회장으로 활동했던 이상구(당시 42살)씨였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1년 12월22일 롯데백화점 창원점의 시설관리를 하던 ㅈ사는 사업을 정리하며 계약직 직원 35명 모두에게 같은 달 31일자로 근로계약 종료 통보서를 보냈다. 사실상 모든 직원에게 해고를 통보한 것이다.

창원고용노동지청은 “ㅈ사가 사업을 정리하면서 직원들에게 근로계약 종료 통보를 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다. 유일한 해결 방안은 사업을 승계하는 업체가 직원 고용도 승계하는 것”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ㅈ사에 이어 시설관리를 맡은 ㅂ사는 민주노총 일반노조 롯데백화점 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 15명을 제외한 비조합원만 재고용했다. 조합원들은 고용 및 단체협약 승계를 촉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은 140일 동안 계속됐고, 이 과정에서 조합원은 10명으로 줄어들었다. 결국 노사는 2012년 5월10일 남은 조합원 10명 가운데 8명의 복직에 합의했다. 모든 책임을 떠안은 이상구 지회장 등 2명은 끝내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당시 이 지회장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투쟁을 계속해 모든 조합원에게 고통을 안길 수 없다”며 정든 직장을 떠났다. 이씨가 떠난 이후 노조도 붕괴됐다.

경남 진해경찰서 관계자는 20일 “고시텔 업주가 시설 소방점검을 하던 도중 방 안에 엎드려 숨져 있는 이씨를 발견했다. 주검은 미라처럼 말라가고 있었으며, 외부 침입이나 자살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 이후 이씨를 목격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점으로 미뤄, 이씨가 혼자 지내다 병사 또는 돌연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경찰과 민주노총 일반노조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씨는 2012년 직장을 떠난 뒤 경남 통영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잠시 일하다, 창원으로 돌아와 막노동을 하며 지냈다. 고시텔 업주는 이씨의 사정을 고려해 보증금 없이 월세만 받고 방을 내줬다. 지난해 말 월세를 받지 못했지만, 이씨가 미안해할까봐 독촉하지 않았다.

이씨가 일감을 구했던 진해구 ㄱ인력사무소 이아무개 대표는 “2012년 말부터 이곳에 와 하루하루 일거리를 구했다. 기술을 배우러 간다며 떠나기도 했으나 몇 달 지나지 않아 되돌아왔다. 처음에는 하루 3000~4000원을 내고 인력사무소 방에서 먹고 자고 하다가, 2014년 고시텔에 방을 얻어 나갔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씨는 평소 어깨가 아파 꾸준히 일하기 어려웠는데, 지난해 9월 일을 하다 이마를 다친 이후 일을 전혀 하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길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일반노조 관계자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냈던 이씨는 최근 2년가량 형제들과도 거의 연락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역시 그와 연락이 끊겨 최근 그의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다른 조합원들을 살리기 위해 책임을 떠안고 직장을 떠났던 그가 이렇게 쓸쓸히 숨졌다는 사실이 너무 허망하다”고 말했다. 이씨의 장례식은 지난 18일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러졌다.

창원/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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