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디젤차 배출가스 저감장치 설치비 '황당한 덤터기'

장재진 2016. 4. 4.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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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차주가 빚처럼 떠안아

중고차 구매자 피해 속출

지난달 29일 자신의 1997년식 디젤 포터 트럭을 폐차하기 위해 경기 김포시 한 폐차장을 찾은 전모(64)씨는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폐차하면 받을 고철값 50만원 중 10만원은 그가 내야 하는 빚이라는 얘기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차를 담보로 금융거래를 한 적이 없었지만 폐차가 급했던 전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10만원을 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돈은 전씨에게 트럭을 중고로 판매한 전 차주인이 차에 미세먼지 배출을 줄이는 장치를 달면서 생긴 비용이었다. 장치 제작사에 전 차주가 내야 할 돈이었지만 명의자가 바뀌면서 빚도 옮겨온 것이었다. 전씨는 3일 “중고차를 살 때 전혀 듣지 못했다. 큰 돈은 아니지만 내가 단 것도 아닌 장치 때문에 생돈을 내는 건 억울하다”고 말했다.

대기 중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10년 넘게 추진해 온 경유차 배출가스 저감장치 부착사업 때문에 중고차 소비자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전씨처럼 저감장치가 달린 차를 중고로 구매한 사람들이 전 차주의 설치비를 대신 갚는 상황이 벌어지면서다. 애초 사업 시행 때 비용 납부 문제를 명확히 하지 않은 환경부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의 배기가스 저감장치 사업은 경유차 배기구에 특수장치를 설치해 미세먼지 배출을 25~80% 이상 줄이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대상은 2005년 이전 생산된 경유차. 비용 90%를 정부가 지원하고 나머지 10%는 차주인이 ‘자부담금’으로 내는 식이었다. 차 크기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자부담금은 통상 10만~30만원 수준이다. 납부 시점은 장치가 필요 없어져 반납을 하게 되는 시점인데 대부분 폐차 때다. 2005년 사업 시행 이후 지난해까지 장치를 단 차량은 모두 67만4,742대로,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만 연간 1,300억원 규모다.

문제는 저감장치를 단 차들이 다른 사람에게 중고로 팔릴 때 자부담금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된다는 점이다. 자동차의 주택 등기부등본 역할을 하는 ‘자동차등록원부’에도 자부담금 내역은 전혀 표시되지 않는다. 나중에 차를 사는 사람들은 이 내용을 모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시간이 흘러 차를 폐차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차주가 자부담금을 내야만 처분이 가능하기 때문에 마지막 차주만 덤터기를 쓰는 셈이다. 자부담금을 받은 폐차장은 자동차환경협회에 자부담금을 송금하고, 협회가 이를 다시 원래 채권자인 장치 제작사들에게 보내고 있다.

결국 차량 거래 시 발생할 자부담금 납부 문제를 생각하지 못한 당국의 실수가 정책 불만을 야기한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임기상 자동차 10년타기 시민연합 대표는 “지금이라도 자동차등록원부에 자부담금 내역을 표시하고, 중고차 거래 시 채무 내역을 반드시 공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민원이 발생하는 부분은 자동차 업계 의견을 수렴하면서 개선 방안을 찾고 있다”고 해명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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