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원, '세로드립' 이승만 비판 시 작가 고소..손배 소송도

유현욱 2016. 5. 2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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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소 당해문학계 "문학 풍자에 법적 잣대 부적절"비판법조계 "업무방해 여지 있지만 처벌 가능성 낮아"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제1회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 시 공모전’에서 이른바 ‘세로드립’ 논란으로 입상이 취소된 ‘우남찬가’. 이 시의 각 행 첫 글자를 따 세로로 읽으면 “한반도분열 친일인사고용민족반역자 한강다리폭파 국민버린도망자 망명정부건국 보도연맹학살”이라는 글귀나 나타난다. 연합뉴스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지난 3월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제1회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 시 공모전’에 이 전 대통령의 행적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작품을 출품했다 입상 취소된 장모(23)·이모(18)씨가 민·형사상 고소를 당했다.

24일 서울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자유경제원은 “고의로 공모전을 방해해 손해를 끼쳤다”며 사기와 업무방해, 정보통신법상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장씨와 이씨를 고소했다. 자유경제원은 또 장씨를 상대로 공모전 개최비용에 대한 위자료 5000만원과 업무지출금 699만 6090원 등 총 5699만 6090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앞서 자유경제원은 장씨와 이씨의 시를 각각 입선작과 최우수작 중 하나로 선정했지만, 언론 보도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이른바 ‘세로드립’ 논란이 일자 입상을 취소했다.

자유경제원이 문제 삼은 장씨 등의 시는 가로로 읽으면 이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각 행의 첫 글자만 따 세로로 읽으면 이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장씨의 작품 ‘우남찬가’를 세로로 읽으면 ‘한반도분열 친일인사고용민족반역자 한강다리폭파 국민버린도망자 망명정부건국 보도연맹학살’이 되고, 이씨의 영문시 ‘To the Promised Land’에는 ‘NIGAGARA HAWAII’(니가가라 하와이)라는 글귀가 숨어 있다. 논란이 일자 자유경제원은 “대회 취지에 반한 글을 악의적으로 응모한 일부 수상작 입상을 취소하고 법적 조처를 포함해 강력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장씨는 이에 대해 “가로로 읽으면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세로로 읽으면 과오를 비판하는 ‘어크로스틱’(acrostic·각 행의 첫 글자를 아래로 연결하면 특정한 어구가 되게 쓴 시나 글) 또는 ‘세로 드립’이라는 문학적 장치의 미학을 살린 예술작품”이라고 강조했다. 또 “심사위원들의 판단 미숙으로 발생한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주최 측에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 도움을 요청했고 민변 측은 사건 수임 여부를 검토 중이다.

문학계는 자유경제원 측의 조처를 두고 “문학풍자의 영역에 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문학평론가인 정과리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공적 인물인 이 전 대통령을 문학적으로 풍자할 수 있다. 아마추어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학과 교수는 “이 전 대통령을 기리는 시를 공모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지만 이 역시 표현의 자유인 것처럼 비판의 자유도 인정해야 하는데 법적으로 풀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공모전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복거일 작가 역시 “이길 수 없는 싸움에 고소를 했다”며 “자유주의는 너그러움인데 조롱거리가 됐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너그럽게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는 업무방해 혐의를 제외한 사기·명예훼손 등의 혐의 처벌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이승우 법무법인 법승 대표변호사는 “행사 자체가 망가졌기 때문에 업무방해가 될 여지가 있다”는 있다고 내다봤다. 양지열 법무법인 가율 대표변호사는 “사기나 정보통신법상 명예훼손 혐의의 경우 (처벌)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학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은 여럿이다. 우남찬가를 대각선으로 읽으면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할 것”이라며 “해석 방식을 놓친 주최 측의 실수가 있기에 검찰이 무혐의 처분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유현욱 (fourleaf@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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