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성폭행 사건, 생존자 빼고 모두 재앙 수준

강인규 입력 2016. 6. 1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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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 학부모 주민 집단성폭행 사건이 드러낸 한국 사회의 총체적 문제점
검찰 송치되는 학부모 주민 집단 성폭행 피의자들

[오마이뉴스 글:강인규, 편집:손지은]

어떻게 이렇게 터무니없이 빗나갈 수 있을까?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고, 대개가 이글거리며 타는 불화살들이었으나, 하나같이 과녁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처음에는 사수들이 실력이 없어 그런가 했다. 하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과녁을 피해가는 꼴을 보니, 일부러 엉뚱한 쪽으로 쏘는 게 아니냐는 기막힌 생각까지 들었다.

학부모 주민 집단성폭행이 공론화 되기 시작한 지 약 2주가 지났다. 사건은 5월 22일에 일어났고, 피해자가 당일에 신고했으나, 범인이 구속된 것은 6월 4일이었다. 사건이 접수된 지 거의 보름이 지나서야 범인들이 구속된 것이다.

전남 목포의 방송사가 6월 2일 사건을 처음 보도했으나, 대다수 언론은 구속 이후부터 집중적으로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관계기관의 '대책'도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단계가 '재앙' 수준이었다. 공권력의 수사에서부터 언론의 보도 행태, 그리고 당국의 대처 방식까지, 이 모든 과정이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었다.

제대로 대처한 사람은 오직 생존자뿐

사건에 제대로 대처한 주체는 오직 생존자뿐이었다. 그는 범행 사실을 파악한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증거물을 완벽히 보존해 넘겨주었다. 특히 유전자(DNA) 채취가 끝나기 전까지 목욕을 미루는 등 침착하게 대응한 덕분에 수사와 재판을 위한 가장 중요한 물증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국에 사는 여성들이라면 누구도 성폭력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의 성범죄율이 세계적으로 매우 높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학부모 주민 집단성폭행 사건의 생존자와 측근은 성범죄에 대처하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를 제시해 주었다.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한 생존자와, 곁에서 용기를 북돋우며 사건을 공론화한 남자친구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한국에서는 흔히 '피해자(victim)'라는 말을 쓰지만, 이 수동적인 명칭은 범죄와 적극적으로 맞서싸우는 능동적 주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성폭력을 포함해 어떤 범죄 상황에서도 목숨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므로 '생존자'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불행히도, 한국의 성범죄 문제는 하루 아침에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뒤에 제시될 구체적 통계와 사례가 말해주듯, 한국 남성들 사이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폭력적 인식이 뿌리 깊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법을 집행하는 경찰, 검찰, 법원과 법을 만드는 의원들, 정책을 입안하는 정부기관 종사자들, 그리고 사회 여론을 이끄는 언론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2013년에는 검찰총장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김학의 법무부 차관이 특수강간 혐의로 입건되었다. 비록 '증거부족'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기는 했으나, 단 차례의 소환도 없이 수사를 종결한 검찰에 대해 '봐주기 수사'라는 비난이 높았다. 2014년에는 검사장과 법무부 장관을 역임하고 국회의장까지 지낸 박희태 새누리당 상임고문이 강제추행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기소된 후에도 "싫은 표정을 지었으면 그랬겠느냐"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왜곡된 성의식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성인권 의식의 부재가 개인적인 일탈 차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컨대 2014년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은 채용정보사이트에 성차별적 '면접요령'을 보란 듯 게시했다. "성희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성에 대해 가벼운 말 정도라면 신경 쓰지 않겠고, 농담으로 잘 받아칠 정도의 여유도 필요하다"고 써놓은 것이다.

 대구남부경찰서가 지난 3월 20일 데이트폭력 근절을 내세우며 경찰관과 일반 여성들과의 미팅 이벤트를 했다가 여성단체의 비난을 받았다. 사진은 남부경찰서가 SNS에 미팅이벤트를 홍보하려고 올렸다가 누리꾼의 비난으로 삭제한 게시물.
ⓒ 페이스북 갈무리
2016년에는 대구 남부경찰서가 '데이트폭력 반대'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젊은 여성들을 향해 아예 자신들과 사귀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페이스북에 "데이트폭력 근절을 위해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의 젊은 경찰관들과의 만남을 준비했다"며, "든든한 경찰오빠가 지켜줄께!!!"라고 썼다.

이처럼 제도화된 성인권 의식 부재는 학부모 주민 집단성폭행 사건에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공론화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사회의 문제

 언론에 보도된 정부의 학부모 주민 집단 성폭행 사건 대책.
ⓒ 연합뉴스 TV
문제는 수사 단계에서부터 불거졌다. 전남 목포 경찰서가 성폭행 혐의자 3명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를 검찰이 거부한 것이다. 이후 논란이 되자, 검찰은 피의자가 "도주 및 증거인멸 등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고,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에 출석을 잘하고 성실히 조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성폭행은 증거인멸의 위험이 매우 클 뿐 아니라, 추가 범행이나 재범 가능성이 매우 높은 흉악범죄다. 실제로 가해자 중 일부는 범행을 저지르고 달아난 뒤 새벽 2시경 현장을 다시 찾아갔다. 추가 범행이나 증거 인멸 등이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크고, 그 과정에서 생존자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공범들이 구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모 사실을 부인하는 등 증거조작을 위해 '입맞추기'를 시도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후 영장실질심사를 한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은 "사안이 중대하고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의 태도가 지극히 안일하고 무책임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검찰이 세월호 추모 행사 등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에는 번개같이 영장을 청구해 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피의자들이 구속된 직후부터는 언론의 몰상식한 보도가 터져나왔다. 여론이 들끓자 사과하기는 했으나, <헤럴드경제>는 "만취한 20대 여교사 몸 속 세 명의 정액"이라는, 언론으로서의 자격을 의심케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문제는 흉악범죄를 선정적 눈요깃거리로 만드는 상업주의만이 아니다. 이 보도에는 피해자를 인격체가 아닌 성적 대상물로 보는 가해자의 시각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으며, '만취'라는 표현으로 보도를 시작함으로써 책임을 생존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다른 언론사들 역시 문제의 핵심을 간과하거나 엉뚱한 곳에 원인을 돌렸다. 예컨대 <매일경제>는 "집단성폭행 이면에 깔린 '폐쇄적 공동체'의 집단범죄"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사건의 근본적 원인"을 "섬 마을의 폐쇄성"에서 찾았다. <뉴데일리>와 <노컷뉴스> 등도 제목에 '악마의 섬'이라는 표현을 넣어 보도했고, <문화방송>과 <세계일보>를 비롯한 다수의 언론은 '단독거주 관사'를 문제 삼았다.

최근 발표된 조사에 따르면, 한국 여교사의 70%가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경험했다. 이들 대다수는 '섬,' '오지', '단독거주 관사'와 아무 관련 없는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가해자들 1위는 교장, 교감 등 학교 관리자들이었다. 교장이나 교감 직위에 섬 출신을 특별 우대하는 게 아니라면, '섬마을의 폐쇄성'은 한국에 만연한 성범죄와 아무 관련이 없다.

비록 <헤럴드경제>만큼 논란이 되지는 않았을 망정, 대다수 언론이 이런 몰상식한 보도로 일관했다.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니 관계당국이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을 수는 없었다. 신안군의회는 여교사 숙소를 "좀더 안전한 2층에 배정한다"는 대안을 제시했고, 교육부는 "여교사 도서벽지 신규발령을 자제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특정 지역'이 문제라고?

여기서 그 지겨운 지역 이데올로기를 꺼내는 사람들도 있다. 학부모 주민 집단성폭행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유사 사건을 보자. 20대 남성 3명이 스웨덴 여성에게 접근해 '한국의 클럽 문화를 소개해주겠다'며 만취하게 만든 뒤에 집단성폭행한 것이다. 이들은 범행을 자랑하기 위해 '인증샷'까지 찍었다. 내가 알기로, 사건이 일어난 '홍대 앞'은 섬도 아니고, 문제의 특정 지역에 위치해 있지도 않다.

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성범죄 발생 건수가 가장 높은 지역 1위는 서울이고, 2위는 경기도다. 서울의 발생 건수는 압도적이다. 인구수 대비를 보아도 1위는 서울이고, 그 다음이 부산, 광주, 인천 등으로 이어진다.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한국인이 산다'는 점과, 인구밀도가 다른 도시들보다 높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성폭행은 지역과 상관 없는 한국사회의 문제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폭력적 남성성의 문제다.

성폭행을 부추기는 폭력적 남성문화의 역사는 질기고 뿌리깊다. 2004년 밀양 집단성폭행 사건을 보자. 10대인 고등학생 수십 명이 여중생 한 명을 1년 넘게 집단성폭행한 이 사건은 학부모 주민 집단성폭행 사건이나 홍대 사건, 그리고 불법 성인사이트 '소라넷'에서 벌어진 집단성폭행 사건들과 본질적으로 같다. 가해자들은 협박하거나 여자의 정신을 잃게 만든 뒤 집단으로 성폭행하고, 불특정 다수를 범행에 '초대'하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이들에게 여성은 판단력도, 감정도, 존엄도 없는 '성기'에 불과했다.

동물학자 프란스 드 발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영장류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본능적으로 타고 난다고 말했다. 공감 능력이란 다른 이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는 것으로, 이런 능력이 결여된 사람을 '소시오패스'라고 부른다. 한국의 폭력적 남성문화는 자연적 공감 능력을 차단함으로써 '문화적 소시오패스'를 만들어낸다.

물론, 다수의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 취급반대론'을 꺼내들 것이다. 그런 남자들은 예외적이거나 소수일 것이고, 적어도 '나는 다르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나는 다르다'고?

 고려대에 붙은 '카톡 성폭력' 고발 대자보를 보는 학생들
ⓒ 연합뉴스tv 갈무리
현재 고려대학교 남학생들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주고 받은 대화가 공개돼 큰 논란을 낳고 있다. 남학생들이 특정 선후배 여학생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OO는 누가 먹었냐", "새내기 새로배움터(새터)에 이쁜애 있으면 샷으로 (술을) 먹이고 쿵떡쿵" 따위의 대화를 나눈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런 폭력적 사고를 히히덕거리며 농담으로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편안하게' 여기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일상화된 폭력은 외국 여성을 '백마'나 '흑마'라는 이름으로 성적 대상화하거나, 의식을 잃은 여성을 '초대남'들과 집단으로 성폭행하는 '소라넷' 범죄 뒤에 자리잡고 있다. 고대 카카오톡 사건을 '고대' 전체나 해당 학생들을 비난하며 끝낸다면,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소중한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그들이 주고 받은 대화 가운데 적잖은 부분이 한국 남성 다수의 '일상적 언어'에 가깝기 때문이다.

독일 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평범한 시민들로부터 '사악함'을 발견해 냈다. 독일의 '선량한' 다수 국민을 나치 만행의 공모자로 만든 것은 '비판적 사고의 부재'였다. 한국 남성들이 나고 자라면서 체득한 폭력적인 성의식을 깨닫고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까지나 성폭행범의 공모자일 수밖에 없다.

이번 학부모 주민 집단성폭행 사건 생존자의 현명한 대처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점은, 수치스러워할 이는 가해자이지 피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느 경우에도 성폭력의 책임은 가해자에게 있으며, 강간은 '섹스'도 '성관계'도 아닌, 그저 성기를 이용한 폭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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