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는 이제 안전한 일터가 되었을까

2016. 6. 2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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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 SK하이닉스검증위 활동 그 후

<한겨레> ‘하이닉스 비극’ 첫 보도
2014년 하이닉스검증위 출범
지난달 백서 펴내고 활동 종료해
지원보상위, 135건 피해사례 접수
5월부터 보상금 지급…53건 집행

2세질환 보상 포함 등 진전 많아
취재 응한 피해자들도 신청 마쳐
신규 ‘직업병 의심환자’ 나오고
가스누출 사고 끊이지 않는 등
산업안전보건에 더 투자해야

에스케이(SK)하이닉스 산업보건검증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반도체 작업장과 직업병 의심질환의 인과관계에 대해 입증하기 어렵다”면서도 회사 쪽에 포괄적 지원·보상안과 127개에 이르는 산업안전보건 개선안을 제안했고 하이닉스는 이를 전격 수용했다. 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D램을 생산하는 경기도 이천공장의 내부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2014년 7월 <한겨레>가 ‘하이닉스 직업병 문제’를 최초 보도한 직후, 하이닉스는 곧바로 실태조사와 보상에 나설 뜻을 알려 왔습니다. 신문 보도부터 검증위 구성까지 석달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이닉스의 신속하고 기민한 대응은 삼성전자의 태도와 견주게 됩니다. ‘반올림’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삼성 반도체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며 262일째(25일 현재)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이닉스를 비롯해 반도체 공장이 안전하고 행복한 일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검증위 활동 이후를 취재했습니다.

“‘반도체 직업병’ 사안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직업병의 인과관계 규명이라는 과학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갈등 또는 제도의 취약성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로도 볼 수 있습니다. 검증위원회는 이런 성격을 감안하여 과학적 사실관계 규명이라는 논쟁 안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적 문제를 풀어나가는 노력을 동시에 기울였습니다.”

지난달 31일, 에스케이(SK)하이닉스산업보건검증위원회(검증위)가 펴낸 백서에서 위원장인 장재연 아주대 교수(예방의학교실)는 검증위 활동의 의의를 이렇게 자평했다. 백서 발간을 끝으로 활동을 마무리한 검증위는 2014년 하이닉스 반도체 작업장 노동자들의 백혈병 등 발병 현황과 작업환경 실태 등을 최초 보도한 <한겨레> 심층리포트(7월28일치 1·4·5면, 8월4일치 1·4면 ‘또 하나의 비극, 하이닉스’)를 계기로 출범했다. 하이닉스의 지원 아래 독립된 외부 전문가들로 팀을 구성한 검증위는 그해 10월부터 1년여간 작업환경 측정과 화학물질 관리실태 평가, 역학조사 등을 벌였다.

지난해 11월, 검증위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반도체 작업장과 직업병 의심질환의 인과관계에 대해 입증하기 어렵다”면서도 회사 쪽에 포괄적 지원·보상안과 127개에 이르는 산업안전보건 개선안을 제안했고, 하이닉스는 이를 전격 수용했다. 언론의 문제 제기→회사의 대책 마련→외부 검증시스템 도입→보상안 및 산업보건과제 이행이라는 새로운 직업병 문제 해결 모델을 제시한 하이닉스는 검증위 활동 이후 ‘안전한 일터’가 되었을까?

지난해 11월25일 오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에스케이(SK)하이닉스 산업보건검증위원회 실태검증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장재연 위원장이 반도체 작업장과 발병 간 인과관계 여부 등에 대해 발표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019년까지 3년 동안 접수

2년 전 <한겨레>는 1995년부터 2014년까지 하이닉스에서 일하거나 일했던 노동자 가운데 최소 17명이 백혈병 등 림프조절기계 질환으로 숨졌고, 1995년부터 2010년까지 28명의 노동자가 림프조절기계 암 진단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림프조혈기계 질환의 사망·발병자 비율에서 하이닉스가 삼성전자에 뒤지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백혈병, 비호지킨 림프종 등 피를 만드는 뼛속 조직인 조혈 모세포가 정상적인 분화를 하지 못해 생기는 질병군인 림프조절기계 질환은 대표적인 ‘반도체 직업병’으로 불린다.

<한겨레> 보도에서 확인된 최소 45명에 이르는 전·현직 노동자들은 그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을까? 하이닉스는 올 1월, 검증위의 권고대로 독립기구인 ‘지원보상위원회’(www.ohscc.org)를 꾸려 반도체 직업병 의심 사례에 대한 신청을 받았다. 1차 접수기간인 1월25일부터 4월30일까지 약 3개월 동안 89건의 사례가 접수됐다. 이후 23일 현재까지 총 135건의 접수가 이뤄졌다. 질병으로 보면 갑상선암이 50건으로 가장 많았고 자연유산이 26건, 유방암이 12건으로 뒤를 이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다음으로 백혈병 8건, 비호지킨 림프종 8건, 위암 8건, 폐암 등 기타 질병 16건의 질병이 접수됐다.

지난 5월부터는 첫 지원보상금 지급도 이뤄지고 있다. 135건의 총 접수 건수 가운데 104건에 대해 보상 결정이 이뤄졌고 그중 53건에 대해 보상금이 지급됐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나머지 50여건에 대해서 곧 보상금 지급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검증위는 앞서 전·현직 임직원은 물론 협력사 직원까지 포괄적으로 보상하는 내용의 지원금 체계를 마련하면서 이에 대한 기준으로 다음의 3원칙을 세웠다. 첫째, 인과관계에 구속받지 않고 폭넓은 상관성에 기반을 두는 ‘인과관계 유보의 원칙’, 둘째, 노동자의 치료와 일상 유지에 필요한 기본 수준을 지원하는 ‘필요에 기반을 둔 지원의 원칙’, 셋째, 정당하고 합리적인 차이를 인정하는 ‘공평의 원칙’이 그것. 보상금액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검증위 보고서를 보면 암의 경우 지원금액은 산재사망유족일시금을 기준으로 하되, 그 기준소득은 2015년 생산직 10년 근무 평균 임금으로 산정하도록 했다. 백혈병의 경우 1억원대의 보상금이 지급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접수는 △1999년 10월 현대전자와 엘지(LG)반도체의 흡수합병 이후에 최소 1년 이상 근무한 이력이 확인되는 임직원 △재직 중에 자연유산 등 생식질환이 발병한 임직원 △2세 기형 등 자녀질환은 부모 중 1인이 임신 3개월 전부터 출생 사이에 제조사업장에서 상시적으로 근무한 사실이 있고 19살이 되기 전에 발병한 자녀 등을 대상으로 2019년까지 앞으로 3년 동안 이뤄질 예정이다.

▶▶‘하이닉스 반도체의 비극’ 기사 전체보기

특히 반도체 노동자의 2세까지 보상 대상에 포함한 것은 <한겨레>가 2014년 반도체 노동자들의 불임과 유산, 기형아 출산 등 생식독성 문제를 최초 보도(11월13일치 1·4·5면, 11월14일치 1·4·5면 ‘반도체 노동자 2세의 비극’)한 데 따른 것으로 반도체 직업병 인식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당시 기사에는 삼성반도체 여성 노동자 2세들의 기형 사례와 더불어 하이닉스 사례도 포함됐다. 구미사업장에서 엔지니어와 오퍼레이터로 일한 장아무개(40)씨 부부의 아들(11)은 요도관 기형과 물고기 같은 입 모양을 보이는 거구증을 갖고 태어났다. 아이에겐 왼쪽 관자놀이뼈도 없었다. 국외 연구결과를 보면, 장씨와 아내와 주로 다뤘다는 솔벤트류 유기화합물은 2세의 선천기형, 특히 구강·소화기·비뇨기계 기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온다. 이천 사업장에서 예방정비(PM) 업무를 하는 아빠 박아무개씨와 오퍼레이터 엄마 사이에 태어난 아들(3)은 선천성 면역결핍증을 안고 태어났다. 당시 신생아였던 아이는 3주에 한 번씩 면역글로불린 주사를 맞아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한겨레>가 취재 과정에서 파악한 다른 피해자들도 잇따라 신청을 하고 있다. 하이닉스 이천사업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2008년 11월 악성림프종으로 숨진 정철모씨의 부인 장영은(48)씨와, 하이닉스와 매그나칩(하이닉스 비메모리 사업부가 분리된 업체)에서 일하다 2011년 5월 만성 골수단핵구성 백혈병으로 숨진 김진기(당시 38살·14년차)씨의 부인 임진숙씨도 보상지원 신청을 마쳤다.

그러나 2세 질환을 앓고 있는 두 가족은 신청을 하지 않았다. 장씨는 아들의 선천성 기형이 아닌 2009년부터 자신이 앓고 있는 갑상선암에 대해서 먼저 보상지원 신청을 했다. 박씨도 아이의 희귀성 질환에 대해 보상지원 신청을 하지 않기로 했다. 보상이 이뤄질지도 회의적이고 자회사(에스케이하이닉스ENG) 직원인 까닭에 괜한 불이익을 받지 않을지 걱정했다고 한다.

2014년 하이닉스반도체 작업장 노동자들의 백혈병 등 발병 현황을 최초 보도한 <한겨레> 심층리포트(7월28일치) 1면.

검증위도 못 막은 반도체 직업병?

두려운 마음에 신청을 꺼리는 자회사 직원은 박씨만이 아니다. 박씨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최아무개(29)씨는 지난 4월 받은 특수건강검진에서 림프조혈기계질환의 일종인 재생불량성(무형성) 빈혈 진단을 받았다. 재생불량성 빈혈은 골수 손상으로 조혈 기능에 장애가 생겨 백혈구, 혈소판 등이 감소하는 질병이다. 방사선과 벤젠 등의 노출이 발병 원인으로 추정된다. 2012년과 2013년 근로복지공단은 재생불량성 빈혈로 사망한 삼성반도체 최아무개(당시 32살)씨 등에게 잇따라 산재 인정을 한 바 있다.

2013년 12월에 입사한 최씨는 박씨와 같은 예방정비 업무를 했다. 입사 3년차인 20대의 건장한 청년이 희귀병에 걸린 것이다. 올해 들어 하이닉스에서 림프조혈기계 질환자가 추가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장난 스크러버(유해가스 배출 정화장치)를 수리할 때 집중적으로 유해가스에 노출되는 예방정비 업무는 고위험 작업군에 속한다. 그와 가까운 한 동료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회사에 괜히 찍히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망설이길래 ‘치료비라도 받아야 되지 않겠냐’고 설득해 신청을 하기로 했다”며 “현재는 2개월째 병가를 내고 통원치료를 하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하이닉스 관계자는 “불이익은 전혀 없다. 신청을 하면 심의를 거쳐 보상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2년 동안 무급휴직이 가능하고 그 뒤 본인이 원하면 복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재직자의 경우 회사의 건강검진을 통해 발병 사실이 확인되면 자동적으로 보상 신청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한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반올림)의 공유정옥 박사(산업보건의)는 “회사로부터 독립적인 기구라 하더라도 직원들은 아무래도 회사 눈치를 보게 될 수밖에 없다. 자회사나 협력사의 경우는 더 심할 것으로 본다. 보상 대상 질병으로 확정되면 자동신청이 되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해볼 때”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최씨가 일을 배우기 시작한 시기는 <한겨레> 보도 이후 회사가 최고 수준의 산업안전보건을 약속하고 검증위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시기와 고스란히 겹친다. 회사 쪽에서는 “발병 원인에 대해 면밀한 역학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검증위 활동기간 중이던 지난해에도 이천사업장에서 가스 누출 등 두 건의 안전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4월에는 이천 신축공장 배기 스크러버에 압축공기가 아닌 질소를 사용해 스크러버 내부에서 작업하던 하이닉스 협력사 직원 3명이 질식·사망하는 일도 벌어졌다. 당시 압축공기가 아닌 질소를 사용한 것이 합당했는지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 12월 수원지검 여주지청은 하이닉스와 협력사 법인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고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하이닉스 상무 김아무개씨 등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사고는 올해도 있었다. 지난달 23일 밤, 하이닉스 청주공장 4층 클린룸에서 질소가 누출돼 작업하던 노동자들이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해 일부가 병원에 실려가는 소동이 빚어졌다. 잦은 사고는 검증위를 통해 최고의 산업안전관리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하이닉스의 의지를 무색하게 했다.

진상조사의 궁극적인 목적이 재발 방지가 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방만이 사후보상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백 가지 유해화학물질이 다량으로 사용되는 반도체산업의 특성상 재발 방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결국 화학물질 관리로 귀결된다. 검증위가 전체 127개 개선안 가운데 절반에 이르는 66개 과제를 화학물질 및 작업환경 분야에 집중한 이유다. 하이닉스는 “127개의 개선안 중 6월 말 현재 총 72개 과제를 달성해 57%의 진척률을 보이고 있다. 내년까지 100% 달성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재 관련 대응은 삼성과 똑같아”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청주사업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비호지킨 림프종에 걸린 김아무개씨는 지난해 5월 산재 신청을 했다. 백혈병과 더불어 반도체 노동자들에게 발병 빈도가 높은 비호지킨 림프종은 종양이 온몸에 나타날 수 있고 어디로 진행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악성 림프종으로 불린다. 지난 21일, 김씨는 보건복지부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산보연) 소속 연구원과 법률 대리인인 이종란 노무사(반올림 상임활동가)와 함께 산재 현장조사의 일환으로 청주사업장을 찾았다. 김씨가 예전에 근무했던 라인의 작업환경을 측정해 유해물질 노출 여부를 가늠하기 위함이었다. 양쪽 귀와 코, 왼쪽 눈으로 림프종이 재발해 청력과 후각, 왼쪽 시력까지 잃은 김씨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가스누출 지점을 찾기 어려워 회사 쪽에 이 노무사의 참관을 요청했다. 회사는 법률대리인의 현장조사 입회 관련 법규가 없다며 이 노무사의 동행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노무사는 2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현장 동행을 거부한 게 지난해 10월에 이어 두번째다. 산재로 악명이 높은 한국타이어도 노무사의 입회를 허용한다. 피해 노동자들에게 보상을 해준다는 하이닉스지만 산재와 관련한 대응은 삼성전자와 같이 치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이닉스 쪽은 “반올림 대표 격인 인물이라 현장에서 부담스러워했던 것 같다”고 했다. 하이닉스가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보건 모범 기업’이 되는 길은 생각보다 멀리 있는 걸까.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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