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김구 암살범' 안두희의 추적자 4인
1949년 6월 26일 서울 종로의 경교장(京橋蔣). 총성이 한 발 울렸고,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이날 육군 소위 안두희가 쏜 흉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현장에서 붙잡힌 암살범 안두희는 어떻게 됐을까요? 안두희는 1년 7개월 만에 특사로 풀려났고 석방 뒤에는 진급해 군에 복귀했습니다. 제대한 다음에는 군납 사업을 하며 큰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암살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김구 선생 암살 배후에 대한 조사는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4ㆍ19혁명 이후에 비로소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에서 권력의 비호를 받았던 안두희는 이후에는 공소시효 등을 이유로 법의 처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김구 선생 암살범을 추적한 이는 국가가 아닌 개인들이었습니다. 백범살해진상규명투쟁위원회 간사 김용희는 1961년 추격전 끝에 안두희를 붙잡아 사건의 전말을 녹취한 뒤 그를 검찰에 넘겼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1965년에는 김제 출신 청년 곽태영이 안두희를 찾아내 중상을 입혔지만 그는 극적으로 살아났습니다.
민족정기구현회 회장 권중희는 10년 넘는 추적 끝에 1987년 안두희를 찾아냈고 1992년에는 자백을 받아냈습니다. "김창룡 특무대장의 사주를 받아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했다." "김창룡이 백범은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등 대한민국에 해를 끼칠 사람이므로 제거해야 한다고 나를 세뇌했다." "범행 직후 특무대 영창으로 면회를 온 김창룡으로부터 '안의사 수고했소'라는 칭찬을 들었다."
안두희는 1996년 10월 23일 오전 인천시 중구 자택에서 당시 버스 기사였던 박기서씨가 휘두른 '정의봉'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안두희가 죗값을 받는 데는 47년이 걸렸습니다. 김구 선생 67주기인 26일, 이 시간의 무게와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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