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해법. 모든 것을 새롭게 하라(6.끝)] 야근에 골병든 기업들.. 일·가정 양립해야 기업이 산다

최갑천 2016. 7. 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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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문화를 바꿔라야근의 역설상의, 기업인 일과 조사12시간 근무 직원 생산성, 다른 직원들보다 더 낮아CEO의 결단 시급정부의 다양한 정책에도 전근대적 기업문화 여전.. 파격적 소통·조율 절실

기업 문화를 바꿔라
야근의 역설
상의, 기업인 일과 조사
12시간 근무 직원 생산성, 다른 직원들보다 더 낮아
CEO의 결단 시급
정부의 다양한 정책에도 전근대적 기업문화 여전.. 파격적 소통·조율 절실

#. 출근했지만 어제 야근으로 멍하다. 정신을 차리려고 커피 한 잔 하는데 팀장이 마케팅팀 회의에 가자고 한다. 의미 없이 앉아있다 나와서 부랴부랴 어제 못 마친 전무님 보고 준비에 들어갔다. 어느새 오전이 가고 드디어 전무님 보고. 오늘은 얼마나 깨질까. 아니나 다를까 '이게 아니잖아!'라는 불호령과 함께 보고서 작성 방향이 통째로 뒤틀렸다. 팀원들과 잠시 대책회의 하고 외근 다녀온 후 몇 가지 일 처리하니 퇴근시간이다. 하지만 저녁 먹고 와 다시 보고서 작업을 해야 한다. 이번 보고는 얼마나 야근해야 끝날는지.

국내 10대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 대리의 일상이다. 상습적인 야근과 상명하복식 업무지시, 비합리적 평가시스템으로 한국 기업들은 골병이 들고 있다. 저성장 뉴노멀 시대를 맞아 우리 기업들이 병든 조직으로는 저성장의 파고를 이겨낼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후진적이고 구시대적인 기업문화의 근인을 찾아내 기업 운영의 소프트웨어 자체를 송두리째 혁파하지 않고서는 우리 기업들의 찬란한 미래는 장밋빛 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골병든 한국 기업들…'야근' 퇴출 1순위

전자업종 대기업의 A차장은 "아직도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지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결재라인 밟을 때마다 보고서 방향이 뒤집히는 일이 허다하다. 마치 자동차를 조립하고, 결재 단계마다 조립된 차를 다시 분해하고 그걸 재조립하는 일을 반복하는 느낌"이라고 푸념했다.

글로벌 컨설팅그룹인 맥킨지가 올해 초 국내 대·중견기업 1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조직건강도는 가히 충격적이다. 기업의 조직건강도는 조직 경쟁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맥킨지가 1991년 개발한 진단방식이다. 9개 영역, 37개 세부항목으로 나눠 기업문화를 평가하며 지난해까지 글로벌 기업 1800여개사에 적용된 기법이다.

이번 조직건강도 검진 결과 국내 기업의 조직건강은 글로벌 기업에 비교해 '함량 미달'로 나타났다. 조사대상 100개사 중 글로벌 기업보다 약체인 기업은 최하위 수준 52개사를 포함, 77개사였다. 특히 중견기업은 91.3%가 하위 수준으로 평가돼 조직건강이 최악인 상황이다.

맥킨지코리아 관계자는 "한국의 대기업은 글로벌 기업과 견줄 만한 기초체력은 갖추고 있지만 새로운 가치와 문화적 지향점으로 무장한 차별화된 조직 역량을 기르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며 "중소기업의 대부분은 조직을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본적 경영체계를 구축하고 구성원의 동기를 저하시키는 업무상 악습부터 뿌리뽑는 작업이 급선무"라고 분석했다.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한국 기업문화에서 퇴출 1순위로는 야근이 꼽히고 있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직장인 4만명을 대상으로 한국 고유의 기업문화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한 결과 '습관적 야근'이 31점으로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이 같은 비효율적 야근 문화는 비과학적 업무프로세스와 상명하복의 불통 문화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퇴근 전 갑작스러운 업무지시나 불명확한 업무분장으로 한 사람에게 일이 몰리는 경우, 업무지시 과정에서 배경이나 취지에 대한 소통이 부족해 일이 몇 갑절 늘어나는 경우 등 비효율적 야근 사례가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한상의는 이번 조사에서 업무시간과 생산성이 상관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을 얻었다. 8개 기업 45명의 일과를 관찰한 결과 상습적으로 야근하는 A대리는 하루 평균 11시간30분을 근무했고, 나머지 직원들은 하루에 9시간50분 일했다. 그러나 A대리의 생산성은 45%로 다른 직원들(57%)보다 오히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야근을 할수록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른바 '야근의 역설'인 셈이다.

■일·가정 양립, 딴나라 이야기

글로벌 기업일수록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일과 가정의 양립을 존중하는 기업문화가 강하다. 그만큼 유연근무제를 통한 일과 가정의 균형이 기업 생산성에 더 효율적이라는 경영방식이 선진 기업들의 주류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엔 아직도 '그림의 떡'. 최근에야 삼성전자, LG전자 등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율출퇴근제, 남성 육아휴직 보장 등의 선진문화를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기에는 먼 이야기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시간제 근무, 자율출퇴근제, 탄력근무, 재택근무 등 유연근무제를 활용하는 기업이 22%에 그치고 있다. 기업 5곳 가운데 1곳 정도다. 이마저 대기업이 대부분이다. 근로자가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시차출퇴근제 도입률은 12.7%로 미국(81%), 유럽(66%)보다 턱없이 낮다. 시간제도 유럽 기업은 69%가 활용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11.3%에 불과하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재택근무 도입률도 각각 9.2%와 3.0%에 머물고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이 다양한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그나마 제대로 실행되는 곳은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디스플레이업체인 B대기업의 15년차 여성 과장 C씨는 "다섯살 딸을 키우다보니 아침에 출근시간이 빠듯하고 야근도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회사에서 자율출퇴근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눈치가 보여 마음껏 활용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결국 일과 가정의 양립도 기업문화와 시스템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다.

김인석 대한상의 고용노동정책팀장은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심각해 저성장 함정이 예상되는 만큼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고, 출산친화적인 기업환경을 조성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업은 기업문화 선진화와 유연근무제 도입에 적극 나서고 정부는 제도 도입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윗물부터 바꿔라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한국의 전근대적 기업문화의 근본 원인은 비과학적 업무프로세스, 비합리적 평가보상시스템, 리더십 역량 부족과 기업가치관의 공유부재 등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정시퇴근을 유도하기 위한 일제소등, 여성인재 활용을 위한 육아휴직과 보육시설 확대 등으로는 습관적 야근이나 여성근로자의 고충 등 전근대적 기업문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근인별 액션아이템을 마련해 기업문화를 체계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기업문화 혁신을 위해서는 최고경영자(CEO)의 인식과 의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게 공통된 견해다. 이를 위해 대한상의는 주요 기업 CEO들을 위원으로 하는 가칭 '기업문화 선진화포럼'을 운영해 기업 최고위층부터 전근대적 기업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팀장급인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기업문화 개선에 필수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원식 맥킨지코리아 대표는 "대다수 국내기업이 서로를 '꼰대'와 '무개념'으로 바라보는 임원급 세대와 베이이붐 자녀인 Y세대 간 불통으로 조직문화 개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꽉 막힌 기업 내 소통을 해결하려면 팀장급 '낀 세대'의 적극적인 소통과 조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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