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도 못 건졌는데..세월호 특조위 내년 예산 '0원'

박종오 2016. 9. 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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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정부가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내년도 예산을 한 푼도 책정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내 선체 인양 가능성조차 불투명한 상황에서 ‘세금 도둑’ 몰이에까지 발목이 잡히면서 세월호 침몰의 원인과 책임 규명 등 진상은 미궁에 빠질 판이다.

◇세월호 특조위 예산 ‘올해 62억원→내년 0원’

△이달 1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3차 청문회가 개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획재정부가 지난 2일 국회에 제출한 2017년도 예산안을 보면 정부가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에 편성한 예산은 올해 61억 7191만 1000원에서 내년에는 0원으로 전액 삭감됐다.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는 “특조위 활동 기간이 올해로 끝나 사업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애초 정부는 특조위의 올해 예산도 상반기분만 반영했다. 지난해 1월 1일부터 시행한 ‘세월호 진상규명법’상 조사 활동 기간이 특조위 구성일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나간 지난 6월 30일 종료됐다는 이유에서다. 법은 이후 3개월 간(9월 30일까지)을 종합 보고서 및 백서 작성 기간으로 두고 있다. 이 동안에는 위원장·부위원장 등 상임위원 5명의 인건비만 지급하므로 상반기에서 쓰고 남은 예산을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이에 따라 현재 특조위 활동은 사실상 무력화한 상태다. 정부와 여당의 비협조 등으로 아직 진상 규명에 이르지 못했지만, 더는 돈도 조사할 권한도 없기 때문이다. 앞서 이달 초 열린 특조위 청문회에는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석균 전 해경청장 등 핵심 증인이 대거 불참했다. 한때 최대 98명(정원 120명)이었던 특조위 직원은 지금은 63명(별정직 공무원 46명·파견 공무원 17명)으로 쪼그라들었다.

◇특조위 “활동기간 내년 2월까지” vs 정부 “이미 종료”



특조위는 정부에 “활동 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특조위는 지난 7월부터 상임위원 월급을 전액 반납하고 그달 27일부터는 직원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릴레이 단식을 하고 있다.

나름의 근거도 있다. 특조위 조사 활동을 위한 예산이 정부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것은 작년 8월 4일이다. 위원회가 본격 출범한 이때부터 1년 6개월이 지난 내년 2월 3일까지가 적법한 활동 기간이라는 것이 특조위 주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특조위가 지난 6월 요청한 하반기 예산 104억원을 배정하길 거부했다. 조사 활동 시작 시점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다. 특조위 관계자는 “정부 논리대로라면 연초부터 활동 기간을 1년으로 정한 위원회의 경우 예산을 12월에 지급해도 한 달만 활동해야 한다”며 “과거 ‘과거사 정리위원회’ 등도 이런 식으로 운영한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세월호 진상 규명의 핵심인 선체 인양이 이르면 연말, 늦으면 내년에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특조위의 활동 기간 연장 및 추가 예산 배정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6월 23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특조위가 해체해도 선체 인양 후 3개월간은 선체 조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고 했다. 여야 3당도 지난달 “세월호 선체 조사 활동을 계속하되 조사 기간, 조사 주체 등은 협의해서 정한다”고 합의했었다.

야당은 “조사 주체는 특조위가 당연히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달 말 특조위 해체 전 활동 기간 연장을 위한 ‘세월호 진상규명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해당 법 개정안은 박주민·위성곤(더불어민주당)·유성엽(국민의당) 의원이 발의한 상태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더민주 간사인 이개호 의원실 관계자는 “22일 오후 농해수위 전체회의를 열고 여당과 협상하는 등 전력을 다해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라며 “법안이 통과돼 활동 기간이 연장되면 예비비를 써서라도 내년 예산을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태 해수부 세월호인양추진단 부단장은 “여야 3당이 합의하면 예산 문제를 포함해 조사 활동을 이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선체 인양 후 보고서 다시 써야…“혈세 낭비 우려 커”

전문가들은 정부가 특조위 활동을 강제 중단시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세월호 진상규명법’이라는 특별법을 제정한 취지 자체가 참사 발생 원인과 책임 소재의 진상을 밝히자는 데 있다. 특조위 조사가 더디고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면 보완을 통해 효율을 높일 일이지, 활동을 관두라고 압박할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정부 논리대로 이달 말까지 참사 종합 보고서와 백서를 작성하면 선체 조사 후 이를 재작성해야 하는 또 다른 예산 낭비를 초래할 가능성도 크다.

세월호 특조위에 참가했던 한 민간 안전 전문가는 “예산이 끊기니 여름에 에어컨도 못 틀고 일하는 등 직원들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고, 파견 나온 공무원들은 마치 위원회가 일을 못 하게 하려고 간 사람처럼 사이가 안 좋더라”며 “정부가 특조위를 완전히 파괴했다”고 잘라 말했다.

그가 거꾸로 물었다.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이 뭔가?” 기자는 “정확히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 전문가는 “원인을 아무도 모른다. 정부가 합리적 의심에 대답을 안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의혹을 가진 사람들이 풀 방법이 없으니 아이가 다쳤는데 슬퍼하기 앞서 화를 낸다. 정부가 국민 슬픔을 덜어주지 못하면 최소한 화는 나지 않게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이번 지진 때도 그렇듯 매번 사람들이 화를 내고 있다. 이러면 사고가 날 때마다 정부와 국민이 이간이 붙어 재난 관리를 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박종오 (pjo2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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