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백남기, 서울대병원 사망진단서 그리고 부검

조동찬 기자 2016. 9. 2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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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기, 서울대병원 사망진단서 그리고 부검
 
혜화 역에 내려 서울대병원 기자실에 가려면 파란 천막을 지나쳐야만 한다. 많은 사람이 모여 길을 지나가기 어려운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 걷는데 방해를 받지는 않았다. 가끔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을 접할 때면 대학시절 성당 교리교사의 추억이 떠오르긴 했지만, 별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천막 옆 보도블록을 걸어왔다.

백남기 씨가 사망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물 대포 영상이 또 SNS의 메인 페이지에 올라온다. 평화로운 장례식에 왜 수백 명의 경찰 병력이 감시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LA 타임즈 기자가 제기했다는 것도 스마트 폰 알림 창에 뜬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나의 일이 아니다. 난 의학전문기자니까.

"일상을 배제한 의학이 의미 있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이미 오래 전에 묻어 두었다. 그런데, 서울대병원이 발부한 사망진단서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거센 논란이 일어난다. 부검을 두고도 검찰과 유가족의 논쟁이 치열하다. 사망진단서와 부검이라면 의학적인 영역이다. 정치적 성향과는 상관없이 내게도 취재의 권리와 의무가 있다.
 
● 사망 진단서의 해석 차이
 
한 언론이 보도한 백남기 씨의 사망 진단서에는 선행 사인이 ‘외상성 뇌출혈(급성 경막하출혈)’, 중간선행사인은 ‘급성신부전증’, 직접적인 사인은 ‘심폐기능 정지’라고 기록돼 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이철성 경찰청장은 “백 씨가 애초 병원에 이송될 때는 ‘지주막하 출혈’로 기록돼 있으나 주치의가 밝힌 사인은 ‘급성신부전으로 인한 심정지사’”라는 말을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했다고 한다. 백남기 씨가 물 대포에 맞은 충격으로 사망한 것이 아닐 수 있으며, 원래 심장과 폐질환이 있고 그 질병이 악화돼 사망한 것일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서울의대 법의학과 이윤성 교수는 “사망의 종류는 직접적인 사인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선행 사인으로 결정해야 한다”며 “사망진단서에 선행 사인이 ‘외상성 뇌출혈’이라고 쓰여 있다면, 외상성 뇌출혈에 의한 사망”이라고 잘라 말한다. 외상성 뇌출혈이 회복되지 않아 급성 신부전을 일으켰고, 그것이 결국 심장과 호흡을 정지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사망진단서를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사망진단서의 법의학적 해석은 백남기 씨가 외부 충격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 백남기 '병사'…서울대병원의 역사적 오점 될 수 있다
 
나는 백남기 씨의 사망진단서를 입수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사망진단서도 개인의료정보라 서울대병원에 요구할 수 없었고, 백남기 씨 가족 중 아는 사람이 없었다. 확인할 수 있는 건 언론에 공개된 것뿐이다.

한 언론 매체가 백남기 씨의 사망진단서 일부라며 공개한 사진을 보면, 사망의 원인을 표기하는 칸에 ①병사 ② 외인사 ③ 기타 및 불상 세 가지 항목이 있는데, ‘병사’에 체크가 되어 있다. 백남기 씨의 죽음이 병사라는 것이다. 신경외과 의사 일을 하면, 많은 사망진단서를 작성하게 되는데, 나는 선행 사인을 ‘외상성 뇌출혈’로 기록한 사망자에게 ‘병사’에 체크한 일이 단 한번도 없었다.

이에 대해 이윤성 교수는 “경막하 출혈(subdural hematoma)은 질병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으나, 백남기 씨의 경우는 외상의 근거가 명확하고, 또 두개골 골절이 함께 있다. 이럴 경우 ‘외인사’로 기록하는 게 맞고, 적어도 ‘기타 및 불상’ 에 표기했어야 했다”며 외상성 출혈과 병사는 서로 충돌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병사’로 표기한 서울대병원의 진단서는 잘못됐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은 국내 최고 권위의 법의학 교수를 보유하고도 자문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외상성 뇌출혈’을 선행사인 칸에 기록해 두고도 병사로 표기한 건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걸 서울대병원이 모를 리 없다. 서울대병원의 고심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건 역사에 기록될 일이 아닌가?

● 부검은 법적 행위이다
 
30년 동안 뇌출혈 환자를 봐왔던 신경외과 교수님께 질문을 던졌다. “백남기 씨 부검하는 게 맞습니까?” 한참 후에야 답변이 돌아왔다. "선행 사인이 분명하고 계속 병원에 있다가 사망한 경우라 부검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사망에 이르게 한 과정에서 확인이 더 필요한 사안이 있어야 부검을 의뢰하는데, 백남기 씨의 경우에는 뇌출혈을 전공하는 신경외과 의사가 보기에도 더 확인해보고 싶은 무엇이 없다는 것이다. 유가족이 부검을 반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검은 유가족의 뜻과 다르게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이윤성 교수는 전망했다.

“부검은 법적인 행위입니다. 변사사건(질병으로 사망한 게 아닌)에서 부검 결정은 검사가 내린다고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가족이 동의하면 영장 없이 할 수 있고, 반대하더라도 영장을 청구해 할 수 있습니다. 검사의 행위가 정당한지를 판단하는 건 법원의 몫입니다.”

유가족은 물론 의사가 보기에도 부검을 통해 더 밝혀낼 것은 없어 보이는데 검찰은 계속 부검을 주장하고 있다. 일단은 법원이 기각했지만, 다시 영장이 청구된 만큼 법원 판단에 따라서는 검찰의 뜻대로 강행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법의학에서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변사사건은 의문과 궁금증을 없애기 위해 부검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부검은 CT나 MRI로 암이 강력하게 의심되는 환자에게 확실한 진단을 위해 시행하는 조직검사와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좀 더 명확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 유가족이 요구해야 할 만한 일인데, 오히려 반대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물 대포라는 외상을 가한 주체가 외상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였다는 선행 역설이 불러온 여진이다.

유가족이 우려하는 바가 무언지는 충분히 짐작함에도 불구하고 ‘부검은 의학’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전두환 정권 시절, 물 고문을 받다가 목숨을 잃었던 서울대학생 고 박종철 사건에서도, 당시 경찰은 쇼크사로 몰아가려 했었다. 이 시도가 좌절됐던 것은 부검의사의 “물고문으로 질식사한 것으로 보인다”는 부검 소견이 결정적이었다. 물 대포로 국민을 쓰러트린 정부일지라도 부검에는 과학적 근거 없이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할 수 없는 나름의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다.
 
이윤성 교수에게 익명으로 처리할 것인지 물었다. 대답은 간명했다. “나도 정치적인 성향이 있어. 하지만, 일은 전문성으로만 해야 해. 조 기자에게 한 말은 정치적인 성향을 배제하고 전문성으로만 말한 거야. 알아서 해.” 

조동찬 기자dongchar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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