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일본 등진 '노예 과학자', 일본에 노벨상 안겼다

김승필 기자 2014. 10. 9. 12:3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올해 일본출신 과학자 3명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청색 LED를 개발하고 상용화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일본 언론은 해외를 직접 연결하며 대서특필하고 있고, 아베 총리 등 정치인도 일본 과학기술의 쾌거라며 숟가락을 들이댔다. 그런데 수상자 가운데 유난히 얘깃거리가 많은 인물이 나카무라 슈지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다. 일본 언론은 나카무라 교수의 국적이 미국이란 사실은 굳이 밝히지 않고 있다. 사실 나카무라 교수는 일본을 등진 과학자이다. 지난 2000년 일본 시스템에 좌절을 느끼고 미국으로 떠났다. "일본 시스템에 실망했다, 기술자들이여 일본을 떠나라"라고 공개적으로 외친 사람이다. 나카무라 교수는 노벨상 수상 소감을 밝히면서도, 자신의 연구 동력은 '분노'라고 말했다. 철저한 '싸움닭'이자, 조직에 순응하지 않는 '일본인답지 않은 일본인'이 나카무라 교수이다.

나카무라는 1954년 일본 에히메현에서 태어났다. 명문대학이라고 할 수 없는 지방대인 도쿠시마 대학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자녀 교육을 고려해 고향의 중소기업이었던 니치아 화학공업에 지난 1979년 입사했다. 니치아 화학은 당시 전 직원 200명에 개발직 직원이 다섯 명도 안되는 조그만 기업이었다. 입사 후 20년간 일하며 300건의 특허를 출원했지만, 시장에서 성공한 제품은 없었다. 형광등 회사에서 돈이 되지 않는 반도체 관련 연구를 하는 나카무라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1988년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결심하고, 회사 창업자의 허락을 받아 1년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국내로 돌아온 뒤 청색 LED 개발에 매진했다. 신임 사장의 박대를 받으며 용접봉을 들고 연구를 이어갔다. 장비를 대부분 직접 만들며 단 5억여 엔의 개발비만 들여 5년 만에 청색 LED 개발에 성공했다. 회사는 청색 LED 관련 기술을 영업비밀로만 보호하려 하고 특허를 신청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카무라는 특허 출원을 강력히 주장했고, 니치아는 원천 특허를 보유하게 됐다. 이후 회사는 청색 LED에 힘입어 연간 매출 1조 원을 올리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나카무라에게 돌아온 건 보상금 2만 엔과 과장 승진의 혜택뿐이었다. 아이디어, 개발, 특허 출원, 상품화, 기업 성장 - 이 모든 것을 혼자 이뤄냈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쥐꼬리만 한 보너스뿐이었다.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일본인으로 평가받았지만 보상은 형편없었고, '슬레이브(노예) 나카무라'가 미국 과학자들이 붙여 준 별명이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교수직을 제안하자, 나카무라는 '일본을 사랑했지만, 일본 시스템에 실망했다.'라며 조국을 등졌다. 당시 이 사건은 고급 인재 유출 사건으로 일본에서 크게 회자됐다.

회사는 나카무라가 미국으로 떠나자 영업비밀 유출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분노한 나카무라는 회사를 상대로 200억 엔의 특허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으로 대응했다. 2004년 1심 법원은 200억 엔 전부를 나카무라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려 일대 파문을 일으켰지만, 2005년 2심에서 8억 5천만 엔의 금액으로 회사와 합의했다. 이때 나카무라 교수는 '일본의 사법제도는 썩어 있다'고 말했다.

나카무라 교수는 노벨상 수상 소감 기자회견에서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분노'를 얘기했다. "자신의 연구동력은 분노이다. 분노를 연구개발로 돌렸다. 분노가 없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분노의 대상은 학벌이었고, 조직이었고, 사회시스템이었다. 지인들은 한결같이 나카무라 교수의 성격이 '정열적이고 지기 싫어한다.'라고 말을 한다.

결국, 승부욕이 분노를 만들어 냈고, 그 분노는 연구의욕으로 승화됐다. 그리고 나카무라 교수의 분노는 연구자에 대한 기업의 보상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도 만들어 냈다. 나카무라 교수는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었지만, 옳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를 바탕으로 인간사회에 여러 공헌을 했다.- 나카무라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단 5분간의 얘기만 듣고 5억 엔의 연구비 지원 결정을 내린 니치아화학 창업주에 대해 각별한 감사의 마음도 전했다.김승필 기자 kimsp@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