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월급 200만원 男.. "난 결혼자격 미달"

노지현기자 2015. 7. 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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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획: 결혼 못하는 청춘들
한국 사회에 ‘매리지 디바이드(Marriage Divide·경제적 사회적 여건에 따라 결혼할 수 있는지가 결정되고 계층 간 격차가 생기는 것)’ 현상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 탐사보도팀은 동아닷컴이 개발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설문 툴을 활용해 미혼 남녀 1917명(남자 936명, 여자 981명)을 조사했다. 그 결과 ‘결혼하고 싶다’고 응답한 남녀는 각각 53.0%, 55.6%에 그쳤다.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아예 결혼하지 않겠다고 답한 남녀가 각각 47.0%, 44.4%나 됐다는 얘기다.

왜 결혼하지 않는 걸까.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4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건수는 30만5500건으로 전년 대비 5.4% 감소했다. 인구 1000명당 혼인건수인 ‘조(粗)혼인율’ 또한 1970년 이후 가장 낮았다.

변수는 남자였다. 남자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결혼 의지’가 춤을 췄다. 정규직 남성의 57.9%는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 반면에 비정규직 남성은 35.7%만이 ‘결혼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경제적으로 심리적 결혼한계선은 ‘월급 200만 원’이었다. 월급이 200만 원 이하일 때는 결혼의 꿈을 꾸지 않았지만, 이 선만 넘어가면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었다. 100만∼200만 원을 받는 남성 중 ‘결혼하기 싫다’고 대답한 비율은 61.3%인 반면에 월 200만∼300만 원을 받는 남성에게선 ‘결혼하고 싶다’(57%)는 응답이 ‘하기 싫다’(43%)를 앞질렀다.  

▼ “안정적 직장에 성격 무난… 결혼 1차서류 겨우 통과” ▼
‘오늘날의 청년들은 자아의식이 강하고 이해타산이 밝으므로 옛날과 같이 뜻만 맞으면 무조건 결합되는 푸근한 사랑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제대로 교육받고 제대로 생각할 줄 아는 남녀일수록 상대방 선택에 신중하게 되므로 올드미쓰와 노총각이 인텔리층에 많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1969. 6. 2. 동아일보 4면 ‘남녀 관계의 새로운 모랄’ 중) 적령기가 지나도 결혼을 미루는 젊은 세대는 어느 시대에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46년 전 동아일보 기사를 봐도 그렇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요즘은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하는 ‘결못남녀’가 더 흔한 현상이 됐다. 이제 결혼은 ‘정상’, 미혼·비혼은 ‘비정상’이라고 구분 짓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시대다. 서로 다른 처지의 ‘결못남녀’들이 말하는 2015년 ‘남녀 관계의 새로운 모랄’을 들어봤다. “결혼 자소서(자기소개서) 쓰기가 두렵다” 대학 교직원 오승훈(가명·33) 씨는 지난해 가을 ‘결혼고시’에서 낙방했다. 평생 단짝이 될 거라 믿었던 여자친구는 사귄 지 6개월 만에 갑작스레 이별을 통보했다. 양가 부모님께 인사까지 한 터라 충격은 더 컸다. 지난봄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왜 결혼에 실패했을까’ 석 달간 오 씨는 오답노트를 써 내려갔다. “저는 1차 서류만 겨우 통과한 거였어요. 안정적인 직장에 성격도 그럭저럭…. 하지만 결혼 상대로는 부족했던 거죠.” 오 씨 말처럼 결혼은 취업과 닮았다. 일단 서류 통과부터 녹록지 않다. 화려하게 포장된 ‘자소설(자기소개서+소설)’을 쓰고 이력서에는 남들과 차별화된 스펙을 꾹꾹 눌러 담아야 겨우 1차 서류를 통과한다. 문제는 2차부터다. ‘결혼해도 괜찮은 상대’라는 확신을 주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오 씨는 자신이 여기서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결혼 시장에서 남자는 여자를 태울 꽃마차나 최소한 말 한 필이라도 있어야 돼요. ‘같이 걷자’는 말은 안 먹혀요. 연애는 결국 은근슬쩍 상대의 경제력, 집안 배경을 파악하는 기간이더라고요.” 4년차 교직원 월급은 혼자 살기엔 충분했지만 신혼집을 구하거나 결혼 자금으로 쓰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올해 초 웨딩컨설팅업체 듀오웨드에서 발표한 ‘2015 결혼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은 결혼비용으로 평균 1억5231만 원을 썼다. 총 결혼비용(집값 포함) 2억3798만 원 가운데 64%를 부담한 셈이다. 오 씨는 그 정도 돈을 모으지 못했다. 은퇴한 아버지에게 손을 벌릴 형편도 아니었다. 여자친구도 오 씨의 상황을 알고선 실망하는 눈치였다. ‘백마’는커녕 평균치에도 못 미치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자 오 씨는 자신감을 잃고 그녀 앞에서 점차 움츠러들었다. 4년의 솔로 생활 끝에 찾아온 연애에 실패한 오 씨는 다시 ‘결혼 자소서’를 쓰기가 두렵다. 누군가를 또 만나도 같은 고비에서 탈락의 쓴맛을 볼까 봐 겁이 나서다. “20대에는 취업하려고 아등바등 전력질주를 했는데, 30대에 결혼을 하려면 또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 돼요. 헤어지기 전 여자친구가 ‘왜 나한테 전력질주를 하지 않느냐’고 묻는데 할 말이 없었죠.” “다시 호주로 가고 싶어요” 오 씨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경기도의 한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박상인(가명·30) 씨는 7년째 연애 중인 여자친구를 두고도 “결혼하자”는 말을 선뜻 꺼내지 못한다. 박 씨보다 두 살 어린 그녀는 서른이 되기 전 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럴 때마다 박 씨는 곤혹스럽다. “지금 월급이 200만 원 정도예요. 결혼은 부모님 도움을 받아 한다고 해도, 제 수입으로 애 낳고 기르는 건 무리 아닐까요?” 두 사람은 2008년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만났다. 박 씨는 하루 8시간씩 주 4일만 일하고도 한 달에 200만 원 이상 벌었다. 지금 받는 월급과 맞먹는다. 식당 주방에서 일하며 시간당 1만5000원가량을 받았는데 당시 한국의 시급 3770원의 4배였다. “한국에 가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자리만 잡으면 결혼도 하고 싶었고요.”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냉혹했다. 고졸인 박 씨에게 허락된 일자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택배, 고깃집 등 아르바이트를 전전한 끝에 지금의 직장을 구했다. 시간제 아르바이트만 해도 생계에 지장이 없는 호주와 달리 한국에선 한 달 한 달이 빠듯했다. 결혼 자금을 모으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1000만 원이 채 안 되는 통장 잔액을 들고 서른을 맞았다. “가끔 호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거기 있었으면 벌써 결혼도 하고 자리를 잡지 않았을까요?” 박 씨의 여자친구는 지난해부터 공무원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박 씨는 주말에도 근무하느라 일주일에 한 번 데이트하기도 힘들다. 박 씨는 “두 사람이 열심히 모아서 2년 후에는 꼭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男, 월급에 따라 결혼 안 하는 이유 달라 오 씨와 박 씨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결못남’이다. 탐사보도팀이 설문을 통해 들어본 미혼 남성들의 목소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혼하기 싫다거나 지금 상황에서는 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47%의 남성에게 이유를 물었다. 30대에선 ‘혼자서 즐기며 사는 것이 편해서’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지만 월급 차이에 따라 흥미로운 결과를 보였다. 월 100만∼200만 원을 버는 남성은 ▽월수입이 가족 부양할 만큼 되지 않아서(24.3%) ▽집 마련이 부담스러워서(12.2%) ▽자식 키우는 기혼자들 모습이 힘들어 보여서(10.1%)를 선택했으며, 200만∼300만 원을 버는 남성은 ▽월수입이 가족 부양할 만큼 되지 않아서(19.6%) ▽혼자서 즐기며 사는 것이 편해서(14.1%) ▽집 마련이 부담스러워서(11.6%)를 꼽았다. 가족 부양에 대한 부담감이나 높은 집값에 대한 걱정이 결혼하기 싫은 마음에 영향을 준 것이다. 반면 수입이 월 400만 원이 넘는 경우는 달랐다. ▽혼자서 즐기며 사는 것이 편해서(21.8%) ▽사랑에 푹 빠질, 맘에 드는 이성 찾기가 어려워서(16.6%) ▽자식 키우는 기혼자들 모습이 힘들어 보여서(12%) 순이었다. 누군가와 맞춰서 살거나 ‘나’를 접고 배우자에게 헌신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깔려 있다. 경제적인 부담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돈 걱정이 앞서진 않았다. 결혼하기 싫은 이유도 월급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안정된 남성일수록 결혼을 통해 얻는 장점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 “자식 대신 조카… 섹스는 애인과… 반지 낄 필요 있나” ▼“힘을 내요. 미스터 김!”
오늘도 외로운 청춘 남녀들은 사랑을 찾아 길을 헤맨다. 하지만 그 종착역이 반드시 ‘결혼’은 아니다. 취재팀이 만난 한 ‘결못남’은 “결혼은 혼자 늙는 게 두려워 가입하는 ‘심리적 보험’일 뿐이다. 그 보험을 깨면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여자들은 어떨까. 아동복 디자이너 박정은(가명·34·여) 씨는 ‘요즘 남자’들이 부쩍 안타깝게 느껴진다고 했다. “남자들만 허리띠 졸라매 집을 사고, 결혼 비용을 부담하라는 건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죠.” 박 씨는 왕자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공주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는 “꽃마차는 안 타도 된다. 믿음만 있다면 가시밭길이라도 같이 걸을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남자들은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결혼을 망설이지만 여자들 생각은 다르다는 얘기다. 박 씨는 “조건만 좇는 여자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남자들이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라’는 주문처럼 들렸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결혼 의지’는 여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은 연령별·고용상태·월급에 상관없이 전 계층에서 ‘결혼하고 싶다’는 비율이 ‘하고 싶지 않다’는 비율을 상회했다. 26∼30세 여성(64.1%), 31∼35세 여성(60.8%), 36∼40세(53.8%) 모두 ‘결혼하고 싶다’는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그럼에도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했다. 박 씨는 “기혼 친구들을 볼 때면 결혼 생각이 싹 달아난다”고 했다. 얼마 전 박 씨가 졸업한 여대 동기 단체대화방에서는 ‘섹스리스 부부’가 화제가 됐다. 누군가 “출산 뒤 (섹스를) 안 하고 산다”고 물꼬를 트자 “나도 그렇다” “관계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공감글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 순간 박 씨는 머리를 한 대 크게 맞은 기분이었다. “연애만 해도 섹스를 하는데, 오히려 결혼한 부부가 ‘섹스리스’로 산다는 게 이해가 안 됐어요.” 섹스는 단면에 불과하다. 부모 세대는 성(性), 육아, 교육 등 결혼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과 충족시킬 욕구가 있었다. 그러나 자식들이 사는 세상은 다르다. 애인과 마음껏 섹스할 수 있다. 아이는 없어도 조카를 돌보고, ‘삼둥이’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육아의 기쁨을 느낀다.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지 않아도 전통적 ‘결혼의 맛’을 체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시월드 때문에 결혼 꺼려” 남자들이 ‘돈’이라는 진입 장벽을 넘지 못한다면 여자들은 ‘결혼’이라는 문 뒤에 펼쳐질 미래를 두려워했다. 취재진이 만난 미혼 여성들은 “아줌마가 아저씨보다 불행하다”고 입을 모았다. ‘경단녀(경력단절여성)’ ‘시월드(시댁을 뜻하는 신조어)’ 등의 유행어에서 보듯 결혼이 여성에게 ‘족쇄’로 인식되곤 했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이진아(가명·40·여) 씨는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기 전까진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결혼 뒤 이름도 잃어버린 채 ‘○○ 엄마’로 나이 들어가는 친구들을 보며 마음을 굳혔다. 설문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30대 여성은 ‘시댁 리스크(위험요인)’를 가장 크게 받아들였다. 31∼35세 여성(23.8%)과 36∼40세 여성(20.8%) 모두 ‘시댁이라는 새로운 환경이 부담스러워서’를 결혼하기 싫은 이유 1위로 뽑았다. 그 뒤를 이어 △혼자서 즐기며 사는 것이 편해서 △사랑에 푹 빠질 맘에 드는 이성을 찾기 어려워서 △자식 키우는 기혼자들 모습이 힘들어 보여서였다. 여성 전체에서는 ‘혼자 즐기며 사는 것이 편해서’가 1위로 꼽혔다. ‘여자 나이’에 유달리 가혹한 결혼 시장의 편견에도 여성들은 초연해지고 있었다. 30대 중반이 고비였다. 이 씨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김정민(가명·38·여) 씨는 “앞으로는 ‘100세 시대’잖아요. 쫓기듯 결혼해서 정(情) 때문에 한 사람과 60, 70년을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김 씨는 소개팅이란 말만 들어도 질색한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집은 얼마짜리냐, 대출은 없느냐’고 묻는 남자들에게 지쳤기 때문이다. “회사 미혼 언니들은 우스갯소리로 ‘그냥 내 돈 탐내는 남자만 아니면 된다’고도 해요. 그런 걱정 하느니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죠.” 그는 “사람만 괜찮으면 ‘돌싱’도 상관없다”고 했다. 누구와 어떤 사랑을 하는지가 중요하지 돈과 배경은 그녀의 관심 밖이었다. “결혼은 꼭 해야 하나요?” 이번 설문에서 응답자 5명 중 1명(18.6%)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회사원 구현철(가명·32) 씨도 그중 하나다. 구 씨는 ‘결혼 적령기’라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주위에선 “나중에 애들 등록금 대고 시집 장가 보내려면 지금 결혼해도 늦다”고 늘 성화지만 좀처럼 납득이 안 된다. 아이를 안 낳을지도 모르는데 불확실한 ‘미래 지출’을 걱정해 결혼을 강요당하기 싫은 탓이다. 남자들에게도 결혼은 무거운 짐이다. 구 씨는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를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그렇게 살기 싫다’고 고개를 젓는 중이다. 가장이 돼서 희생만 강요당하며 살기 싫은 탓이다. 구 씨의 목소리가 커졌다. “대학, 군대, 취업, 결혼까지 인생을 남들이 정해준 시간표대로 살 필요는 없잖아요.” 그는 소신대로 20대를 보냈다. 삼수 끝에 의대 진학에 실패하자 일찍 취직했다. 남보다 늦게 군대를 제대하고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어릴 적 꿈을 찾아 내년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인 구 씨는 “내 불안을 아내, 아이와 공유하긴 싫다”고 다짐했다. ‘나무꾼’은 없다 결혼 세태의 변화는 젊은층의 연애 방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의 저자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결혼은 필수, 연애는 선택’이었다면 요즘은 ‘결혼은 선택, 연애는 필수’인 시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취재팀이 만난 20, 30대 젊은 세대는 ‘필수과목’이라는 연애마저도 혼란스러워했다.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네꺼인 듯 네꺼 아닌 네꺼 같은 나….” 지난해 초 발매돼 큰 인기를 끈 히트곡 ‘썸’의 노랫말이다. ‘친구도 연인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를 가리키는 ‘썸’은 대중문화를 넘어 남녀관계의 대세가 됐다. ‘밀당’의 수준은 관심만 갖는 수준인 ‘심(心)남’, 이성이지만 친구 사이로 선을 긋는 ‘남자 사람 친구’으로 세분화됐다. 여기엔 “시간과 돈을 올인 해야 하는 연애보다 ‘썸’이 편하다”는 항변과 “여자가 넘어올 때까지 찍어보는 나무꾼이 멸종한 시대”라는 한탄이 교차했다. 그 많던 돌쇠와 나무꾼은 왜 사라졌을까. 전문가들은 취업을 위해 연애, 결혼, 출산까지 포기하는 ‘삼포세대’의 씁쓸한 자화상이라고 분석한다. 지난달 여성 듀오 ‘옥상달빛’이 발표한 신곡 ‘희한한 시대’에는 그런 애환이 담겼다. “사랑에 정복당할 시간도 없는 희한한 시대에서 열심히 사는구나/마지막 저금통장에 들어있는 19만 원을 들고서 나는 어디로 갈까….” 정지은 문화평론가는 “언제부터인지 연애가 ‘한정된 자원을 합리적으로 쓰는’ 경제활동을 닮아버렸다”고 설명했다. ‘썸’이 꼭 삼포세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선택과 결정을 미루는 데 익숙한 젊은 세대의 특징이라는 분석도 있다. 독일 저널리스트 올리버 예게스는 이를 ‘메이비(maybe) 세대’라고 정의했다. 그는 저서 ‘결정장애 세대’에서 “우리는 그 어떤 시대보다 많은 선택지 앞에서 사상 최대의 과잉 기회와 씨름하고 있다. 굳이 결정을 내리고 싶지도 않고 병적으로 결정을 미룬다”고 설명했다. 노명우 교수는 “서로에게 확신이 없으면서도 ‘연애는 필수’라는 압박에 시달리다 보니 주위만 맴도는 ‘썸’을 즐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결혼 미스매칭 왜 계속되나 2010년 이상호 한국은행 경제학 박사와 이상헌 성균관대 경제학과 연구교수가 발표한 ‘저출산·인구고령화의 원인에 관한 연구’는 특단의 대책이 없는 이상 ‘결못남녀(결혼을 못하는 사람들)’가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예측했다. 실업률을 낮추고 고용안정성을 높이고, 전세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젊은이들이 결혼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 경제학자들은 ‘청혼모형’에서 여성은 남성이 청혼해 오기를 기다린다고 가정한다. 남성은 결혼시장 참가자 가운데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청혼을 하고, 청혼받은 여성은 남성의 ‘수준’을 관찰한 후, 그 수준이 자신이 생각한 유보가치(자신이 허용할 수 있는 마지노선)보다 낮으면 거절하고 다음 청혼자를 기다린다. 요즘처럼 젊은 남자들이 구직도 어렵고, 사회생활에 뛰어드는 시기도 점점 늦어지면 여성의 ‘기준’에 맞는 남자는 갈수록 찾기 힘들게 되는 구조다. 이상헌 교수는 “여자는 청혼을 기다리고 있지만 남성은 프러포즈를 못 하게 되는 상황이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2006년부터 저출산 시행계획을 수립한 이후 관련 예산을 매년 늘려왔다. 무상보육 비용을 포함해 지금까지 66조5367억 원을 출산율 높이는 데 썼다. 그러나 지난해 신생아는 43만6500명으로 2006년 44만8200명에 비해 오히려 1만1700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목표를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면 정부의 전면적인 정책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프랑스처럼 동거가 일반화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결못남녀’의 증가는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박성민 min@donga.com·노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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