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에 분노한 독일 여대생 '기차 객실살이'

양홍주 2015. 8. 24.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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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니 뮐러(23)

기차가 종착역에 도착해 학생들이 모두 내린 후에도 레오니 뮐러(23)는 창밖만 물끄러미 바라보며 꼼짝하지 않는다. 마치 집이라도 되는 양, 내리기는커녕 텅 빈 객실에서 밀린 숙제를 펼친다. 독일의 대학생 뮐러는 비싼 자취방 월세를 내는 대신, 이보다 싼 값으로 철도자유이용권을 구입했다. 골치 아프게 월세로 씨름하느니 차라리 기차 객실을 '내 집'으로 선택한 것이다. 24일 워싱턴포스트(WP)는 월세를 내고 방을 얻는 평범함을 포기한 채 기차에서 먹고 자는 유별난 일상을 선택한 뮐러의 삶을 소개했다.

WP에 따르면 뮐러는 지난 봄 한 달 월세로 392유로(약 53만7,000원)를 요구하는 집주인과 한바탕 언쟁을 벌인 후 주방에서 밥을 짓고, 책상에서 숙제를 하는 삶을 버렸다. "어느날 갑자기 아무 곳에서도 살지 않고,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삶을 원하게 됐다"는 게 이유였다. 집을 나온 그가 대신 손에 쥔 것은 331유로(45만4,000원)를 주고 구입한 한 달 유효기간의 철도자유이용권이었다. 이때부터 뮐러는 시속 300㎞로 달리는 고속열차의 좁은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옆 자리 승객과 팔이 닿는 좌석에서 책을 읽으며 단골 피자 집에서 피자와 파스타를 주문해 객실에서 받아 먹는다. 비록 하루의 대부분을 기차에서 보내지만 소음 때문에 항상 머리에 얹어져 있는 두툼한 헤드폰을 제외하고는 통학을 위해 기차에 오르는 평범한 대학생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모습이다. 뮐러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만나고 싶었던 친구에게 언제라도 데려다주는 기차야말로 집과 다름없이 편안하다"라며 "하루하루가 휴가와 같다"고 말했다.

뮐러는 되도록 기차에서 밤을 보내려 한다. 다만 가족과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가끔 행선지를 정해놓고 기차에 오르기도 한다. 그의 여행가방에는 기차에서 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충분한 물품이 담겨 있다. 태블릿 컴퓨터, 옷가지, 세면도구, 학습자료들이 빼곡하다.

뮐러는 일찌감치 독일 SWR 방송사 프로그램에 소개되어 부당한 월세에 분노하는 비슷한 처지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명인으로 떠올랐다. 그는 "쉽게 마음먹을 수 없는 모험의 일종이지만 대다수 친구들이 기차에서의 생활을 괜찮은 아이디어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뮐러는 현재 '기차 유목민으로 사는 현대인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졸업논문을 준비 중이다. 집을 나온 후 꾸준히 써온 블로그와 친구들의 조언을 토대로 마무리를 짓고 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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