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공습 살상자 90%는 민간인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2015. 11. 4.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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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통수권자로 취임한 날부터 드론(무인기)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선택한 무기였다. 군과 중앙정보국(CIA)은 이 무기를 아무런 기소나 재판 없이, 오바마 행정부가 처단 대상으로 간주한 사람들을 추적하고 살해하는 데 활용했다.' 미국의 탐사 전문 온라인 매체 <더 인터셉트>가 폭로한 ‘드론 페이퍼(Drone Papers)’ 1회 서두에 나오는 말이다. 문제의 ‘드론 페이퍼’는 미국이 알카에다와 탈레반 반군을 공습하기 위해 운용해온 드론 프로그램의 내막이 담긴 비밀 문건이다.

한 익명의 정보 당국 인사가 문건을 <더 인터셉트>에 제보하면서 10월15일부터 8회에 걸쳐 ‘드론 페이퍼’라는 이름으로 내용이 폭로되었다. 제보자는 '미국 정부 최고위층의 명령에 따라 특정인이 어떻게 드론의 살해 명단에 오르고 암살되는지 대중이 알 권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2013년 6월 미국 국가안보국(NSA)에 의한 무차별 비밀감청 실태를 폭로해 세계적으로 충격을 던진 에드워드 스노든은 <가디언>을 통해 '한 미국인이 용감한 행위를 통해 거짓을 깨부수었다'라고 제보자를 높이 평가했다.

드론이 구체적으로 어떤 지휘체계를 통해 운용돼왔고, 어떤 효과를 거뒀는지는 군사기밀에 속하기 때문에 일반인은 정확한 실상을 알기 어려웠다. 이번 ‘드론 페이퍼’는 10년 이상 베일에 가려졌던 드론의 운용 실태를 최초로 적나라하게 고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EPA : 한 남성이 예멘 수도 사나의 벽에 붙은 미군 드론 비판 벽화를 바라보고 있다.

현재 미국의 드론 프로그램은 중앙정보국과 국방부 산하 합동특전사령부(JSOC)가 각각 운용한다. 이 가운데 ‘드론 페이퍼’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JSOC가 운용한 드론 프로그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드론은 첨단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고화질 영상을 바탕으로 적의 목표물을 정확히 공습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각광받는다.

미국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대테러 작전의 일환으로 드론을 지속적으로 운용해왔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실제로 미군이 2012년 5월 예멘과 파키스탄에서 알카에다 지도급 인사 10여 명을 살해하고, 그해 6월 아프간 국경 지역에 은신하던 알카에다 2인자 아부 야히아 알리비를 살해한 것도 드론 ‘덕’이었다. 특히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이라크와 아프간에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하면서 피로감에 시달렸던 오바마 행정부는 드론을 일종의 지상군 대체용으로 간주해 의존도를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오바마 재임 5년 동안 중앙정보국이 파키스탄에서 감행한 드론 공습은 330회 이상이었다. 부시 행정부 2기의 51회보다 6배나 많은 수치다.

특히 이번 문건에서 눈에 띄는 건 드론 프로그램이 단순히 군 차원의 단독 결정이 아니라 대통령을 포함한 백악관 수뇌진이 개입한 지휘 라인을 통해 운용돼왔다는 점이다. 문건에 따르면 합동특수작전사령부가 각종 정보를 취합해 드론의 공습 대상을 선정해서 합참본부로 전달하면, 이는 국방장관을 거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로 넘어간다. 그 뒤 국방장관·국무장관·중앙정보국장을 비롯한 유관 부처의 핵심 수장들이 참석한 NSC 수석회의를 거치면 최종적으로 대통령의 재가가 남는다. 공습 대상자의 목숨을 대통령이 쥐고 있는 셈이다. 일단 대통령의 재가가 떨어지면 미군 당국은 60일 안에 드론 공습을 단행할 수 있다.

ⓒAP Photo : 드론 프로그램은 백악관 수뇌진이 개입한 지휘 라인을 통해 운용돼왔다. 2014년 NSC를 주재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

드론 저지 캠페인에 회의적인 미국 내 여론

문제는 공습 피해자 가운데 알카에다 혹은 탈레반과 무관한 민간인이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2011년에서 2013년 사이, 5개월 동안 진행된 드론 공습으로 살상된 사람 가운데 약 90%는 실제 목표가 아니었다. 특히 2012년 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아프간 동북부 지역에서 감행된 드론 공습으로 200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이 가운데 당초 목표는 고작 35명뿐이었다. ‘드론 페이퍼’는 정확한 정보 입수가 힘든 소말리아와 예멘에서 민간인 오폭 희생자 수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실례로 예멘에서는 2013년 12월 미군이 결혼식 하객 차량을 알카에다 차량으로 오인해 드론 공습을 하는 바람에 무고한 민간인 10여 명이 희생된 일도 있다.

충격적인 사실은,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사람은 유가족이 증빙서류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작전 중 살해된 적군’으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증빙서류가 없는 민간인은 오폭으로 희생돼도 적군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민간인 오폭 피해자 수는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제보자는 '누구든 드론 공습 대상의 주변에 있는 사람은 공범으로 몰린다'라고 말했다. 중앙정보국이 2013년 의회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드론 공습의 민간인 오폭 희생자는 매년 한 자리 숫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영국의 비영리 독립 언론 <탐사보도국(BIJ)>에 따르면 파키스탄·소말리아·예멘에서 646회 드론 공습이 벌어진 수년 동안 오폭으로 사망한 민간인은 어린이 225명을 포함해 1128명에 달한다.

민간인 오폭 피해자가 급증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공개 사과했다. 그는 2013년 5월 국방대학 연설에서 '민간인이 살상되는 일이 없다는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만 드론 공격을 승인하겠다'라고 처음으로 밝혔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이런 지침은 실제 공습 현장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문건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의 지침은 무시된 채 ‘부수적인 피해 범위가 낮을 때’로만 언급됐기 때문이다.

민간인 오폭에 따른 국제적 비난이 거세지만 미국의 드론 활용 빈도는 점점 더 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9월 중앙정보국과 미군 당국은 시리아 내 이슬람국가(IS) 고위 대원을 살해하기 위해 드론 공습을 감행했다. 드론 전선이 아프간·파키스탄·소말리아·예멘에서 시리아로 확대된 셈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공습 또는 정찰을 위한 드론의 하루 출격 횟수를 현재 61회에서 2019년엔 90회로 최대 50%까지 늘릴 계획이다. 제보자는 '미군이 드론이라는 기계에 너무 중독돼 이런 식으로 가다간 드론 공습에서 발을 빼기가 힘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드론 오폭에 따른 민간인 피해가 심각한 상황에서 미국 의회가 진상조사를 요구할 만도 하지만 현재로서는 조용하다. 소관 상임위인 의회 정보위 소속 의원들은 민간인 오폭 희생에도 불구하고 드론 ‘덕분’에 알카에다 및 탈레반 요원들이 제거됐다는 사실에 더 만족하는 듯하다. 해외 파병 반대론자인 오바마 대통령은 드론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또 지난 5월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0%는 민간인 오폭에도 불구하고 IS 등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대한 무인기 공습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기류에 맞서 국제앰네스티와 미국민권연맹(ACLU) 등 인권기관들은 미국 정부의 드론 공습에 의한 인권침해 실태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나섰다. ACLU는 10월19일 중앙정보국에 드론 오폭에 의한 희생자 신원을 포함해 드론 프로그램 전반에 관한 자료를 넘길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또 일부 인권운동가들은 유엔이 직접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고, 아모스 기오라 유타 대학 교수(법학)는 드론 문제를 전담하는 법원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행정부와 의회는 물론이고 일반 국민까지 드론 프로그램 지지가 우세한 상황이라 이들의 드론 저지 캠페인이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회의적인 전망이 많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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