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 기증한 우물,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박정연 2016. 1. 3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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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리포트] NGO 단체들의 '우물파주기', 우리가 몰랐던 불편한 진실

[오마이뉴스 글:박정연, 편집:홍현진]

[기사수정 : 30일 오후 4시 25분]

캄보디아는 물의 나라다. 연중 절반인 우기가 되면 국토의 상당수가 물에 잠길 정도다. 비행기를 타고 캄보디아 땅을 내려다보면 거대한 메콩강 지류가 무려 400km를 휘돌아 캄보디아 전국토를 감싼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리고 이 메콩강과 연결된 '톤레삽'이라 불리는 호수는 동남아에서 가장 큰 담수호로 우리나라 경상북도만큼이나 크다. 호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렇듯 캄보디아는 수자원이 풍부한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사실상 '물부족 국가'나 다름 없다. 농사에 필요한 농업용수는 풍부하지만, 정작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물은 턱없이 부족하다. 주변에 흐르는 개천이나 연못물에 마시기에 부적합한 석회질 성분이 많은 탓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식수를 제공해줄 우물 수가 전국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골에 가보면 수십여 가구가 사는데도 우물이 달랑 1~2개 정도만 있는 마을도 적지 않다. 1월 중순 가본 깜퐁톰주 훈센 따잉콕 고등학교는 학생수가 1063명이 되는데도 우물은 단 한 개밖에 없었다. 그나마 수도 프놈펜을 비롯한 대도시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시골로 들어갈수록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캄보디아 아이들의 모습
ⓒ 박정연
캄보디아 교육부가 지난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이 나라 전국 1만1370개에 달하는 공립초중고학교 중 놀랍게도 41%에 달하는 학교가 우물이나 수도 등 기본 식수공급시설이 없다고 한다.

마실 물이 없어 학교를 결석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영국에 근거지를 둔 한 의학전문학교가 지난 2014년 씨엠립, 바탐방, 반테이민체이 주에 있는 8개 학교 초등학생 32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식수시설을 갖춘 초등학교의 출석률이 그렇지 못한 학교에 비해 무려 2.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물이 완전히 말라버리는 건기에는 출석률 차이가 현격히 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교에 마실 물을 따로 물병에 담아 오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30년 넘게 지속된 '우물 파주기 캠페인'

 캄보디아 전역에서 흔히 목격되는 말라버린 우물의 모습
ⓒ 박정연
이러한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국제구호재단들과 NGO 단체들이 지난 1990년대초 내전이 종식된 후부터 지금까지 30년 넘게 캄보디아 전역에 걸쳐 우물 파주기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왔다. 거기에는 우리나라의 여러 사회복지단체나 기업들도 포함되어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캄보디아 우물'이라고 치면, 한달에 최소 2~3번 꼴로 우리나라 봉사단체나 후원기업 등이 이 나라 시골마을에 우물을 파주었다는 미담기사가 올라와 있을 정도다.
심지어 요즘에는 우물을 파러 캄보디아를 방문하는 우리나라 연예인들도 많다. 일부 연예인의 경우 팬클럽 회원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으로 우물을 기증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유명한 모 정수기 판매회사도 지낸 2006년부터 10년째 해마다 100개 이상의 우물을 파는 사업을 전개해왔다. 지난해 말 1000번째 우물을 파주었다는 소식이다. 우리나라 무상원조기관인 코이카(KOICA) 역시 그동안 시골 마을에 수백여 개의 우물을 파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캄보디아 정부에서 발표한 정확한 통계수치는 없지만, 전국에는 이렇게 해서 생겨난 우물 수가 적어도 수만 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해마다 국제 NGO를 비롯해 각종 사회복지 후원단체들의 우물 파기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는 아직도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시골에 가보면 마을마다 국제 NGO나 각종 후원단체들이 파주고 간 우물들이 도처에 눈에 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많은 우물들 중 실제로 사용되지 못한 채 버려진 우물들이 상당수다. 우물 주변은 온갖 지저분한 쓰레기로 덮여있고, 펌프 손잡이는 녹슬어 있다. 만든 지 불과 수년도 채 되지 않은 우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특히 4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지는 건기에는 이렇게 방치된 우물들을 전국 어디에 가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비단 시골마을뿐만 아니다. 일반 초중고 공립학교에 설치된 우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부족한 학교예산 탓에 우물 관리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학교들이 대부분이다. 물이 부족한 건기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매일 비가 오다시피 하는 우기철에도 쓸 수 없는 우물이 지천에 깔려 있다.

'무용지물' 우물 많은 이유

 얕게 판 우물은 오염된 지표수가 지하수로 침수되어 건강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 박정연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현지에서 선교사역을 하며 기업 등 후원단체의 지원을 받아 우물 파기 캠페인을 여러 차례 진행해온 김한주 목사에게 그 원인을 물어봤다. 그의 대답이 놀랍다. 

"우물을 너무 얕게 파기 때문에 쓸 수 없는 우물이 너무 많다. 건기에도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되도록 (우물을) 깊이 파야하는데 후원단체의 예산은 정해져 있고, 예산안에서 목표한 우물 수를 맞추려다 보니, 결국 적당히 얕게 팔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후관리까지 안 돼 버려지는 우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실제 조사해본 결과, 통상 우물 한 개를 파는 데 드는 비용은 800~1200불(한화로 96만~144만 원) 수준이었다. 굴착기로 파내는 우물의 깊이는 대략 30~40m 수준. 깊이 파는 곳도 50~60m를 넘기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현지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니, 우물을 너무 얕게 파면 지하수에 석회질 성분이 많아 식수로 부적합하다고 했다. 또한 상당수 지역은 지하 암반 탓에, 제대로 마실 수 있는 깨끗한 지하수를 공급받기 위해서는 때론 100m 깊이까지 우물을 파야한다고 말했다.

이 정도 깊이를 파려면 평균 비용의 최소 3~4배가 든다. 우물 하나를 제대로 파기 위해선 최소 4000불. 우리 돈으로 환산해 480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대부분 사회복지단체나 후원기관들의 우물 파기 예산은 한 우물당 대략 100만 원 안팎으로 거의 고정되다시피 한 게 현실이다. 주어진 예산으로 목표한 우물 수를 맞추기 위해서는 수질과 상관없이 적당히 지하수가 나오는 정도만 팔 수밖에 없다.

현지에서 일하는 NGO 단체들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최소 1000개 이상의 우물 파기 행사를 진행해왔다는 한 NGO 책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물을) 100m 이상 파기 위해서는 기존 장비로는 불가능하며 몸체가 큰 대형장비가 투입되어야 하는데, 캄보디아 대부분 시골 마을은 도로 사정이 나빠, 차량 진입이 힘들다. 현실적으로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캄보디아 전역에는 너무 얕게 파 무용지물이 된 우물들이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건기에는 전혀 쓸모가 없고, 그나마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만 간신히 쓸 수 있는 반쪽짜리(?) 우물도 많다. 이런 우물물은 사실상 지하수라고 하기보다는 '빗물' 또는 '지표수'라고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하나라도 제대로 된 우물을 파는 게 중요"

그런데 이런 빗물 섞인 우물물을 무심결에 마시게 되면 더 큰 심각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바로 수질오염 문제이다. 우기철 빗물과 함께 땅 표면의 오염 물질이 땅속으로 스며들게 되면 얕게 판 대부분의 지하수는 쉽게 오염되기 마련이다. 이런 더러운 우물물을 멋모르고 다셨다간 설사나 피부병 등 각종 수질 관련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 심지어 오염된 물을 마시고 설사병에 결려 목숨을 잃는 경우도 이 나라에서는 적지 않다.

유네스코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 같은 오염된 우물물을 마시고 설사로 사망하는 5세 이하 캄보디아 어린이들이 매년 평균 약 2300명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 곳에선 버려지는 우물들이, 또 다른 한곳에는 새로 파는 우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지금 이 순간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 캄보디아 전역에 안심하고 마실 우물물이 턱없이 부족한 이유에 대한 해답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2006년부터 국내 모 정수기 회사를 대행해 우물 파기를 담당해왔다는 한 교민에게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기에 비용이 더 들더라도 우물을 최대한 깊게 파며, 정기적으로 수질검사 등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같은 우물이 전국에 과연 얼마나 될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대부분 우물 파기 행사를 마치면 수질이 위생적으로 적합한지 여부는 관심조차 갖지 않고, 사후관리를 마을주민들에게만 떠맡기는 바람에 버려지는 우물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이는 '우물 파주기 사업'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시골에 가면 사후관리가 전혀 안 된 채 버려진 냄새나는 화장실 건물도 많고, 지금은 창고로만 쓰이는 지역 마을회관도 적지 않다.

그뿐 아니다. 최근 프놈펜에서 차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캄퐁스푸 작은 마을에 버려진 야구장을 찾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 유명 야구해설가 허구연씨가 후원금 1억여 원을 들여 만든 야구장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운동장에는 이름 모를 잡풀만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2010년 지어진 허구연 야구장의 최근 모습
ⓒ 박정연
 2010년 지어진 허구연 야구장의 최근 모습
ⓒ 박정연
해마다 수많은 사회봉사단체나 후원기업들이 캄보디아를 방문한다. 새로 판 우물 덕에 맑은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어 기쁘다는 어느 마을 노인의 기뻐하던 표정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한 NGO관계자는 "우물처럼 사후관리가 필요한 사업은 우선 지하수를 파기에 적당한 토양인지 오염물질이나 석회질 성분은 없는지 사전에 충분한 조사를 마친 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위생관념이 부족한 마을주민들을 대상으로 우물관리 및 위생에 관한 철저한 교육도 해야 하고, 지속적인 사후관리와 수질관리개선을 위한 노력도 해야한다는 점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만난 어느 현지 전문가의 조언은 한번쯤 귀 기울일만하다.

"우물 파주기는 캄보디아를 위해서 정말 좋은 사업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우물을 파게 될 경우 생길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아는 후원자들은 거의 없다. 앞에서 사진을 찍는 데 더 관심을 보일 뿐이다. 앞으로는 몇 개 우물을 더 파느냐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된 우물을 파주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물은 사람의 생명과도 직결된 매우 문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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