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전국 장인들의 매니저

2012. 9. 19. 18: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매거진 esc] 인간 반전

펀드매니저에서 전통식품 장인들의 브랜드 컨설턴트로 변신한 다리컨설팅 정두철 대표

목소리에는 사람에 관한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똑 부러지는 말투를 구사하는 사람은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일 확률이 높고, 부드러운 말투를 구사하는 사람은 되도록 싸우지 않고 세상을 살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 다리컨설팅 정두철(46) 대표의 목소리에는 한마디로 매듭이 없다. 역행하지 않고 순리대로 살고 싶은 사람의 온화함이 묻어 있다. 탁자 앞에 마주 앉아 있는 사람을 순식간에 무장해제시키는 그 목소리. 덕분에 그는 뭐든지 참 잘 판다. "된장 판매하는 걸로 기네스북에 오를지도 몰라요. 한창때는 하루에 4000만~5000만원어치씩 팔았거든요. 내가 그렇게 영업을 잘하는지 나도 몰랐어요."

그의 첫번째 직업은 펀드매니저였다. 서울대 농경제학과를 나온 정두철 대표는 졸업 후 바로 한화투신운용 채권팀에 입사해 당시로선 조금 생소한 펀드매니저로 활약했다. 일단 급여가 높았고, 일도 귀족적이었다. "출근하면 각종 연구소 자료나 해외 신문·잡지 등을 읽으며 자금 흐름 동향에 관한 보고서를 쓰고 자금 운용 방법을 모색하죠. 그때 든 생각이 펀드매니저는 '가치를 판단하는 안목'이 정말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는 여전히 가치 판단이 중요한 업무를 하고 있다. 전국의 숨겨진 장인들을 발굴해 '명인명촌'이라는 브랜드 안에서 편안하게 판매를 하고 일상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른바 '장인들의 매니저' 노릇이다. 남들이 보면 맥락이 닿지 않는 반전 인생이라 할지 모르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어찌 보면 두 가지 모두 '가치'를 찾아내는 일이죠."

profile

정두철

1995년부터 한화투신운용에서 펀드매니저로 활동. 벤처 회사로 자리를 옮겨 활동하던 중 '메주와 첼리스트' 사장으로 이직. 안그라픽스 디자인 사업부 기획이사로 활동. 현재 다리컨설팅 대표로 재직.

급여 높고 귀족적인펀드매니저 일 하다가직접 된장 판매 뛰어들어

펀드매니저로 잘나가던 남자가 안락한 온실에서 벗어난 건 다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사태 때문이다. 자금 흐름의 최전방에서 구제금융 사태를 맞은 정두철 대표는 이러다가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세상이 엄청나게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세상에선 뭐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죠." 마침 벤처붐이 일었고, 선배가 만든 투자자문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바로 거기서 인생의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된장 담그는 학승과 서울대 음대를 나온 첼리스트가 결혼해 만든 '메주와 첼리스트' 법인 전환 업무를 돕던 중 흥미로운 제안을 받았다. "이참에 회사 운영을 맡아주면 어떨까?"

당시 그의 나이 33살. 책임감을 느끼기보다 사장이 된다는 것이 마냥 기뻤던 시절이다. '메주와 첼리스트'는 신문이나 잡지에 많이 소개되어 꽤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학승이 강원도 정선에서 된장을 담그고,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아내가 첼로 연주를 하며 지낸다니까 얼마나 근사해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죠." 친구나 선후배들의 격려도 대단했다. "네가 드디어 전공을 살리는구나!"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흥분도 잠시. 몇 달 후부터 사장이라는 자리의 압박이 거세졌다. '메주와 첼리스트'는 자금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남들은 묵은 콩이나 수입콩을 사다 된장을 담그는데, 비싼 해콩을 사다 제대로 된장을 담그다 보니 들어갈 돈은 많고 들어오는 돈은 많지 않았다. 1년을 정성껏 만들어야 겨우 자금 회전이 되는 형국. 직원 월급도 주지 못하는 사장의 비애를 통감한 그는 직접 된장을 들고 팔러 다녔다. 금융사 선배들을 찾아가 된장을 팔 때는 무시를 당할까봐 평소 입지 않던 양복을 꼬박꼬박 입기도 했다.

된장을 팔면서 그가 배운 것은 생의 치열함만이 아니었다. 브랜드를 어떻게 포장해서 시장에 내놔야 하는지, 기획과 전략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모 회사에서 브랜드 매니저로 일하는 선배를 찾아가 된장을 선물했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화를 내는 거예요. 어떻게 새우젓 통 같은 데 담아 된장을 팔려 하냐고. 그때 화가 나면서도 일단 브랜드 마케팅이 뭔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메주와 첼리스트'에서 만든 된장을 '작품'이라는 콘셉트로 팔기 시작했다. 패키지도 예술작품처럼 만들고, 팸플릿도 갤러리 초대장처럼 꾸몄다. 고급 된장의 품질에 걸맞은 고급 이미지를 갖췄다. "그때 비로소 확신을 갖게 됐죠. 내용의 실체가 있으면 브랜드와 디자인이 더해졌을 때 파급력이 엄청나구나!"

'명인명촌' 사업 맡아전국 숨겨진 장인들 발굴상품으로 소비자에게 연결

이후 디자인전문회사 안그라픽스에서 기획이사로 일한 경력까지 더해지면서 그는 브랜드 마케팅 전략의 고수가 됐다. 지금도 그는 지식경제부가 지원하는 '명인명촌' 사업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고 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전국의 숨겨진 장인들과 지역 특산품을 발굴해 브랜드 전략을 만들고 소비자와 이어주는 일을 한다. 그가 발품 팔아 찾아낸 지역 명인들은 조금 남다른 구석이 있다. 대를 이어 한 업에 종사한 사람보다 어떤 철학으로 만들고 있는지 철학과 자세를 더 중요하게 바라본다. 그가 생각하는 진정성은 단순명료하다. 농업은 생물이니까 매해 날씨나 상황에 따라 맛이 변한다. 어느 해 키우던 석류의 당도가 낮아졌다고 해서 고른 당도를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설탕을 넣지 않는 것. 그런 진정성이 생각보다 큰 울림을 갖는다는 것을 그는 현장에서 매 순간 느끼고 있다.

"명인명촌에 소속된 장인들 중 제2의 인생을 사시는 분들이 참 많아요. 기자 출신도 있고,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했던 분도 있고. 오래 농사를 짓고 상품을 생산하진 않았지만 제대로 만드니까, 또 브랜드 전략과 그에 걸맞은 디자인이 더해지니까 파급력이 생겨요. 다들 행복하게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죠." 언젠가 전통 식초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그가, 앞에 앉은 사람에게도 강력하게 식초 장인을 권한다. "전통 식초 한번 만들어보세요! 이건 21세기 최고 유망사업이에요." 귀가 솔깃해지는 진정성 있는 권유다.

<한겨레 인기기사>■ '무늬만 검찰'…서면조사로 귀막고 현금 6억 출처 눈감고학생 잇단 자살 책임 묻는다더니, 대구교육청 국감 안했다'트러블메이커' 김성주, "박근혜는 화이트골드미스"[권태선 칼럼] 박근혜 시대가 두렵다[기고] 나로호 3차 시험발사 유감 / 정선종삶의 작은 쉼표 하나, 템플스테이 10년[화보] 내가 바로 '아이패드 미니'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