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35m 크레인 고공농성 돌입

2011. 1. 6. 08:2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인 김진숙(51)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영도조선소 35m 높이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에 돌입했다. 한진중공업 사측이 생산직 400여 명의 구조조정 방침을 밝힌 가운데, 김 지도위원이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고공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산양산지부 한진중공업지회에 따르면, 김 지도위원은 6일 오전 6시경 크레인에 올라갔다. 김 지도위원은 간단한 먹을거리와 잠을 잘 수 있는 도구를 갖고 올라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진중공업 해고자인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6일 새벽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 원안에 보이는 사람이 김진숙 지도위원.

ⓒ 윤성효

35호 크레인은 평소에 작업에 사용하고 있고, 작업이 없을 때는 열쇠로 채워놓는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관계자는 "열쇠를 어떻게 풀고 올라갔는지 모르겠다"면서 "조금 전 채길용 지회장과 전화통화를 했다, 김 지도위원은 조합원들이 열심히 싸워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전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시절 한국 최초의 조선소 '처녀 용접공'으로 입사했으며, 1987년 당시 어용노조를 규탄하는 유인물을 뿌리다 해고됐다. 당시 같이 활동했던 17명의 동료들은 2003년 고 김주익?곽재규 열사 투쟁 당시 모두 복직했지만 김 지도위원은 복직하지 못했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보상심의위원회는 2009년 11월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정했지만, 한진중공업 사측은 복직시키지 않았다. 한진중공업 사측이 2009년 말 정리해고 방침을 밝히자 김 지도위원은 2010년 2월 5일까지 24일간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김 지도위원은 노동 현장의 투쟁을 담은 칼럼집 < 소금꽃 나무 > 를 펴내기도 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 윤성효

김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에 들어간 85호 크레인은 2003년 9월 9일 고 김주익 열사가 자살했던 현장이다.

생산직 400명 구조조정 방침을 밝힌 한진중공업은 49명으로부터 희망퇴직을 받았으며, 나머지 351명에 대해 정리해고를 단행할 예정이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당초 5일 정리해고 명단을 통보할 예정이었는데, 4일 오후부터 노-사가 협상을 벌이면서 미루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6일 오전 8시20분경 < 오마이뉴스 > 와 전화통화에서 "침낭과 옷 등 간단한 물품만 갖고 올라왔다. 무기력하게 당할 수 없지 않느냐. 휴대전화 배터리가 얼마 없어 통화를 오래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크레인에 오르며

1월 3일 아침, 침낭도 아니고 이불을 들고 출근하는 아저씨를 봤습니다. 새해 첫 출근날 노숙농성을 해야 하는 아저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 겨울 시청광장 찬 바닥에서 밤을 지새운다는 가장에게 이불 보따리를 싸줬던 마누라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살고 싶은 겁니다. 다들 어떻게든 버텨서 살아남고 싶은 겁니다. 지난 해 2월 26일, 구조조정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이후 한진에선 3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짤렸고, 설계실이 폐쇄됐고, 울산공장이 폐쇄됐고, 다대포도 곧 그럴 것이고, 3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강제휴직 당했습니다. 명퇴 압박에 시달리던 박범수, 손규열 두 분이 같은 사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400명을 또 짜르겠답니다. 하청까지 천명이 넘게 짤리겠지요. 흑자기업 한진중공업에서 채 1년도 안된 시간 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그 파리 목숨들을 안주삼아 회장님과 아드님은 배당금 176억으로 질펀한 잔치를 벌이셨습니다. 정리해고 발표 다음 날, 2003년에도 사측이 노사합의를 어기는 바람에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여기 또 한 마리의 파리 목숨이 불나방처럼 크레인 위로 기어오릅니다.

스무한살에 입사한 이후 한진과 참 질긴 악연을 이어왔습니다. 스물여섯에 해고되고 대공분실 세 번 끌려갔다 오고, 징역 두 번 갔다 오고, 수배생활 5년하고, 부산시내 경찰서 다 다녀보고, 청춘이 그렇게 흘러가고 쉰 두 살이 됐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생각했는데, 가장 큰 고비가 남았네요.

평범치 못한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결단을 앞두고 가장 많이 번민했습니다. 85호 크레인의 의미를 알기에…. 지난 1년, 앉아도 바늘방석이었고 누워도 가시이불이었습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아야 했던 불멸의 날들. 우리 조합원들 운명이 뻔한테 앉아서 당할 순 없는 거 아닙니까.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정면으로 붙어야 하는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한진 조합원들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해서 우리 조합원들 지킬 겁니다. 쌍용차는 옥쇄파업 때문에 분열된 게 아니라 명단이 발표되고 난 이후 산 자 죽은 자로 갈라져 투쟁이 힘들어진 겁니다.

지난 일요일. 2003년 이후 처음으로 보일러를 켰습니다. 양말을 신도고 발이 시려웠는데 바닥이 참 따뜻했습니다. 따뜻한 방바닥을 두고 나서는 일도 이리 막막하고 아까운데, 주익(고 김주익)씨는…. 재규(고 곽재규)형은 얼마나 밟히는 것도 많고 아까운 것도 많았을까요. 목이 메이게 부르고 또 불러보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

김진숙 올림.

[☞ 오마이 블로그]

[☞ 오마이뉴스E 바로가기]

- Copyrights ⓒ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