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굽고 마시고 비교하고.. '스트레스 캠핑'

이성원 입력 2015. 8. 26. 20:39 수정 2015. 8. 27.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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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적한 숲 속 하룻밤? 술취해 밤새 잡담 날 밝히기 예사

도시 생활 습관 그대로 옮겨와… 장비 경쟁 등 어른 놀이터로 변질

난민촌 수준 캠핑장, 그늘 없는 파쇄석 바닥에 다닥다닥

테이블·화로 등 기본 시설도 없어 휴식 찾아 왔다 짜증 싣고 돌아가

캠핑장비가 고급화하고 대형화하면서 자연을 즐기러 캠핑을 가는 건지 아니면 집을 숲에 옮겨 놓으려 하는 건지 모를 때가 있다. 숲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장비로 즐기는 친환경 캠핑 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 도서출판 꿈의 지도 제공

회사원 신동훈(43)씨는 이달 초 친구 가족과 함께 떠났던 끔찍했던 캠핑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신씨는 미국 뉴욕에서 3년간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올해 초 돌아왔다. 주재원 시절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캠핑을 즐겼던 그였기에 친구의 캠핑휴가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친구가 예약한 경북의 사설 캠핑장에 도착한 순간 신씨의 얼굴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가릴 나무도 없는데다 바닥엔 아스팔트 느낌의 파쇄석이 깔려있었고 사이트의 간격이 조밀해 다른 텐트와 타프 등이 서로 뒤엉켜 있었다. 이웃 텐트에선 35도까지 치솟는 폭염인데도 불을 지펴 고기를 구웠고, 집에서 들고 온 선풍기를 틀어대고 있었다. 쾌적한 숲 속의 캠핑을 기대했던 그는 이런 난민촌 같이 어수선한 곳에서 휴가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기가 막혔다.

신씨의 짜증은 열대야의 끈적거림에 이웃 텐트의 소음이 더해지며 증폭됐다. 술에 취한 그들의 대화는 밤새 이어졌고, 신씨는 꼬박 밤을 새야 했다. 결국 날이 밝자마자 짐을 챙긴 신씨는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가족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갔다.

전국적으로 캠핑의 바람이 거세다. 수도권 근교의 캠핑장은 주말이면 캠퍼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2011년 60만명이던 캠핑 인구는 2014년 300만명으로 5배 넘게 증가했고, 캠핑용품 시장은 2009년 700억원대에서 2014년 6,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캠핑 인구나 시장 등의 성장에 비해 올바른 캠핑 문화의 정착은 아직 요원하다. 자연과 하나가 되려는 서구의 캠핑 문화와 우리의 캠핑장 풍경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캠핑 전문가들은 우리 캠핑장이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통한 휴식이라는 캠핑의 기본 목적을 상실한 채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도심에서 먹고 마시고 놀던 것을 그대로 캠핑장으로 장소만 옮겨와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난민촌 마냥 다닥다닥 붙어있는 우리의 캠핑장과 달리 띄엄띄엄 널찍하게 캠핑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 코네티컷 주립공원의 캠핑장 모습. 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열악한 캠핑장 시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달 초까지 집계한 전국의 캠핑장은 1,975개다. 수년 사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캠핑장의 수준은 여전히 열악하다. 캠핑 문화가 정착된 북미나 유럽, 일본의 캠핑장들과 비교할 땐 그야말로 난민촌 수준이다. 미국의 주립공원 캠핑장을 주로 이용했던 신씨는 "미국에선 1개의 캠핑 사이트가 배정되는 크기의 공간을 한국에선 5,6개의 사이트로 쪼개 팔아 캠퍼들을 비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있다"며 "나무 그늘도 없는데다 흙바닥도 아닌 주차장 같은 곳에 텐트를 치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사설 캠핑장 상당수가 물빠짐 때문에 파쇄석을 깔고 있다는 이야기에 "맥반석 오징어가 된 느낌이었다"며 불쾌해했다.

북미나 일본 등의 캠핑장은 테이블과 화로를 기본으로 갖추고 있는 반면 우리 캠핑장은 그렇지 못하다. 결국 캠퍼들은 나무그늘 대신 하늘을 가릴 타프에다 화로와 테이블까지 무거운 짐들을 싸들고 다니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캠핑에 대한 인식이 달라

'당신에게, 캠핑' '캐나다 로키 홀리데이' 저자인 캠핑 전문가 김산환(46)씨는 "북미 등 캠핑이 보편화된 나라와 비교해 볼 때 캠핑에 대한 인식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 캠핑은 트레킹이나 카누 등 다른 아웃도어를 하기 위한 베이스캠프 역할에 머물고 있는 반면, 우리는 캠핑 자체를 새로운 아웃도어로 여기며 장비경쟁을 펼치는 놀이의 장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건 음식 문화다. 샌드위치 등 간단한 음식에 만족하는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에선 캠핑장에 도착하자 마자 굽고 지지기 시작해선 텐트를 접을 때까지 끊임없이 요리해 먹는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데 모든 시간을 소비할 때 외국의 캠퍼들은 가벼운 식사 이후 남는 시간을 조용히 자연을 호흡하는데 사용한다. 김씨는 "기본적으로 음식문화에 차이가 있다고 해도 우린 도시에서 눌려있던 욕망을 너무 급하게 표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각박한 일상의 스트레스를 캠핑 공간에 다 풀어놓고 위로를 받으려는 것 같다는 분석이다. 그러다 보니 과시적이고 소비중심적인 캠핑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

김씨는 알래스카와 캐나다 로키 등의 여행길에 무인 캠핑장을 자주 이용했다. 캠퍼들이 알아서 사이트와 장작 등을 이용하고 그 비용을 지불하고 가는 곳으로 관리인은 하루 한번 꼴로 찾아와 돈통의 돈을 수거하고 화장실 등을 관리한다. 김씨는 "무인 캠핑장이 한국에 있어도 그렇게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위험한 동계캠핑

한국만의 독특하면서 또 위험한 캠핑문화가 동계캠핑이다. 북미 등의 경우 낙엽이 떨어질 무렵 캠핑장들은 다 문을 닫아건다. 캠핑은 날 좋은 날 하는 것이란 게 그들의 기본 인식이다. 전문가들은 동계캠핑은 익스트림 레저에 가까운 것으로 장비와 활용 등에서 아마추어가 하는 범위를 넘어선다고 지적한다. 해외에서 동계캠핑을 즐기는 이들은 소수의 마니아층에 불과하다. 히말라야 등 고산 등반의 경우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동계캠핑이 유독 한국에선 일반화하고 있고, 많은 캠퍼들이 동계캠핑을 해야 진정한 캠퍼로 인정받는다고 여기고 있다.

동계캠핑엔 장비도 많이 필요한데다 난로와 전기장판 등이 동원돼 위험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어린 아이와 여성들에게 위험이 노출되는 동계캠핑이 꼭 필요한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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